근래 중국 학계에는 그들의 나라(國)가 구성, 운영 원리 면에서 서구 등 여타 지역의 그것과 다른 특성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부각하는 논의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주지하듯이 국민국가가 아닌 제국으로서의 특성을 주목하는 것은 그 주요 논의 항목의 하나이다. 그런데 나라가 지역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은 우리의 경우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사실 한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나라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국가’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 나라와 가족은 로마법과 그에 기원을 둔 서구의 법체계에서 각기 공법과 사법의 명확한 경계로 구별된다. 또한 양자는 하버마스에 따르자면 system과 life-world로 명확히 경계가 구분된 영역 속에서 운영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국가는 state/nation과 등치된 의미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국’(國)과 ‘가’(家)의 이러한 구별되는 의미를 인지한다면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으며 다른 적절한 번역어가 없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국가=나라 개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 모종의 지역적 특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중국 학계의 관련 논의들이 우리의 나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그들의 ‘국’과 ‘가’ 그리고 ‘국’과 ‘천하’(天下)의 관계에 대한 논의들에 관해 잠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중국에서 ‘국’과 ‘가’라는 두 글자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가? 이에 대해서는 주나라(周)의 봉건제(分封制)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국’은 천자가 제후에게 분봉한 봉국(封國), ‘가’는 제후가 경대부에게 분봉한 식읍(食邑)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종법적 원리를 기반으로 정치 체제를 위계적으로 구성하는 이러한 방식은, 이후 대일통(大一統) 왕조에서도 그 기본 원리로 이어졌다. 이를 생각한다면 국가는 분명 서구의 state/nation과 동등한 개념으로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 개념 속에는 사적 요소가 강한 종법적 예제와 유교 윤리가 공적 요소가 강한 국가의 법률, 정치 영역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는 ‘국’에 대해서 ‘사’(私)의 성격을 강화해주고 있으며 공적 영역을 형성해야 할 법률과 정치가 사적 영역과 분리되는 것을 방해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국가는 곧 왕조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이는 바로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이 국민국가의 수립을 위해서 ‘가’를 ‘국’으로부터의 분리하는 작업 즉 “탈가족화(去家化)”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된 이유였다. 량치차오(梁啟超)는 이런 이유로 중국의 역사를 군주의 사적인 역사인 “군사(君史)”가 아니라 나라의 역사인 “국사(國史)”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가’가 ‘국’에 대해서 사적 요소를 강화한다는 것은 일면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예기 예운편(禮記 禮運篇)』의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에 대한 기술은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는 공적인 것이 된다(大道之行也,天下為公)”. 이는 대동에 대한 설명이다. 반면 “이제 대도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천하는 가족이 되었다(今大道既隱, 天下為家)”. 이는 소강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서 소강은 대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자에 의해 예(禮)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 통치가 행해진 차선의 이상 시기를 말한다. 후자는 구체적으로는 하,상,주 3대의 여섯 군주의 시기, 중국 역사에 세습 왕조가 출현했던 시기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세습왕조가 출현해가는 당시 상황을 묘사하면서 “천하위사(天下為私)”가 아니라 “천하위가(天下為家)”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국가가 본질적으로 권력을 소수자나 일부 계급에 집중한 폭력 장치라고 할 때, 개인들에게 세습왕조의 출현은 권력이 자의적으로 사용될 위험이 커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위의 “가”는 천하가 사적으로 화해가는 상황에 대해서 그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가는 국에 대해서 그 권력이 완전히 사적인 속성으로 화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공적인 속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작용도 했던 것이다.
‘천하’는 ‘천자’가 통치하는 지역 범위를 지칭한다. 이때 천자란 천으로부터 명(命)을 받은 존재로, 인간을 초월하는 권위를 갖는 천으로부터 통치의 정당성을 지지받는 자를 말한다. 천자의 통치가 초월적 권위의 지지를 받는 만큼 천하는 중심-주변의 비대칭(Asymmetry)의 공간 구조를 구성하며, 또한 통치자로서 천자의 역량 즉 덕(德)의 고하에 따라 그 통치 영역이 신축(伸縮)하기 때문에 천하의 공간 범위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무한히 확장되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천하는 중국 국가들이 대외적으로 중심성, 확장성을 발휘하는 근거를 제공해왔다. “천하” 질서를 강조하는 중국 학계의 최근 논의들에 대해 주변 민족과 국가들이 경계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천하가 국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도 양면적이다. 중국의 고대유적 가운데 양저문화(良渚文化)에서 발견된 옥종(玉琮)은 천명을 상징하는 유물로, 하늘과 소통하는 기둥("通天柱")의 형상을 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권력이 그에 종속하는 집단과 지역에 대해 그 권력의 정당성을 설득할 때 하늘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제사는 중요한 통치 행위였고 제사 의례와 관련된 지식은 권력을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한대의 유교 국교화는 천인상관론(天人相關論)에 보이는 것처럼 천의 권위를 통치 이데올로기 속에 이식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후한대 음양설, 참위가 부각되면서 지적인 경색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후 천 개념은 도통(道統) 등과 같이 보다 높은 추상 수준의 지식 체계로 발전해갔다. 권력을 집중한 폭력 장치로서 국가가 출현하는 과정에서, 천하는 국가에 대해 권력의 정당성을 보다 공적인 권위 위에 세우고 그 권력을 폭넓게 승인하도록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玉琮
가, 천하 같은 개념들이 역사적으로 개인을 국가 체제에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편향되게 작동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쉬지린(許紀霖)은 『가국천하(家國天下)』라는 제명의 저서에서 중국인이 오랫동안 이른바 “가국천하연속체(家國天下連續體)”에 종속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Charles Taylor가 말하는 “대분리(great disembedding)” 현상 또는 Max Weber가 말하는 “세계의 탈주술화(Entzauberung der Welt)” 현상이 중국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가국천하연속체”의 해체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청말민초 이래 중국에서는 가와 국의 관계, 국과 천하의 관계가 단절되고, 개인은 이 체제로부터 유리되어 그 자아와 정체성 인식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할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각 개인들은 오히려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근대 이후 ‘유일하게’ 권력을 강화한 국가에 대해 무력한 존재가 되어 국가 중심주의에 종속되거나 개인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그에 대해 이제 개인은 자아의 존재 의미를 확보하기 위해서 해체된 가, 국, 천하와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해서 공동체적 가치를 강화하고 권력이 보편적 기반 위에 서도록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이는 전통 중국에서 가, 천하 등이 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작용해왔던 측면을, 국가 이성의 독존과 개인의 고립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사상적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학계의 가, 천하에 대한 주목은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쉬지린은 위의 저서에서 "가, 천하에 비해서 국 개념이 가장 모호하다"고 말한다. 요컨대 중국에서는 가, 천하가 국보다 훨씬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라는 인식이다. 단조 히로시(檀上寬)는 천하를 협의의 천하와 광의의 천하로 구분하면서, 중국에서 국가는 협의의 천하로서 구체적으로 지배가 관철되는 영역으로 한정해서 설명한다. 그럼에도 “국 개념이 가장 모호하다”고 하는 것은 중국학자들이 그들 역사에 등장했던 다양한 민족, 국가와 지배 영역을 중국이라는 국가의 영역으로 구체적으로 개념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 천하와 같은 개념들은 나라(국가)를 얼마나 공인할 수 있는 권력으로 만들고 개인을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개념적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을 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오늘 “나라다운 나라”를 생각할 때 시사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승욱 _ 충북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
참고문헌
許紀霖, 『家國天下 –現代中國的個人, 國家與世界認同』, 上海人民出版社, 2017.2.
檀上寬, 『天下と天朝の中國史』, 岩波書店, 2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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