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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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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2의 차이나타운, 고베난킹마치 _ 이정희

일본 3대 차이나타운 가운데 고베난킹마치는 차이나타운의 규모면에서나 상점 수의 측면에서 요코하마 중화가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지만 나가사키 신치중화가에 비해서는 훨씬 큰 일본의 제2의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다.
 

1868년 개항된 고베는 나가사키와 요코하마에 비해 늦게 개항되어 화교의 정착도 3개 도시 가운데 가장 늦었다. 그러나 개항 이후 고베의 화교는 급속히 발전했다. 개항장 나가사키의 무역이 요코하마와 타 개항장으로 이동하면서 나가사키 화교의 상당수가 고베로 이주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또한 요코하마가 미국과 유럽의 수출입 중심 항구였다면, 고베는 중국과 동남아 무역의 중심지로서 규모가 큰 화상이 이곳에 정착했던 것도 한몫했다. 
 

화상의 인구 증가는 광동방, 남방 등의 각 지역 동향회관의 설립과 중화회관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화상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성냥, 잡화, 섬유 제품을 수출하여 큰 재부를 축적했다. 당시 일본 상인은 해외에 무역망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화상의 무역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쓰이물산(三井物産)은 이러한 화상의 무역망에 의존하지 않고 일본의 독자적인 무역망을 구축하기 위해 일본 정부 후원으로 설립된 종합상사였다. 미쓰이물산의 성공은 역으로 1900년대 고베 화상의 무역업을 상당 부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미쓰이물산은 근대시기 내내  중국 및 동남아시아 수출입은 고베의 화상의 무역망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고베의 화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근대시기 고베화교의 직업은 무역업, 양복점, 이발소, 중화요리점 등이었다. 고베화교는 각각의 동업공회를 조직하여 큰 세력을 형성했다.


 사진 1  춘절을 앞둔 난킹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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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난킹마치는 원래 외국인거류지가 아니라 잡거지였다. 즉, 일본인이 거주하던 지역에 화교의 거주자가 증가하여 형성된 곳이었다. 난킹마치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화교의 상점은 난킹마치 주변에 산재해 있었다. 요코하마화교의 상점이 중화가에 집중하고 있던 것과 비교된다.
 

고베난킹마치는 1920년대까지 번영하다 1930년대 중일간의 마찰 격화로 화교 인구가 감소하자 점차 쇠퇴했다. 여기에 중일전쟁과 고베대공습으로 고베난킹마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는 미군과 선원을 위한 술집이 많이 생겨 일반인이 근접할 수 없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고베난킹마치의 부흥은 1980년대 들어 고베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상점가진흥조합의 설립으로 구정축제를 매년 개최하면서 이뤄졌다. 1978년 이후 중국에 개혁개방에 따른 일본인의 중국에 대한 이미지 개선, 중화요리의 인기, 고베시의 관광객 유치 등이 난킹마치를 급속히 발전시키게 한 원동력이었다.
 

고베난킹마치 내에는 화교학교도 관제묘도 중화회관도 없다. 상점가진흥조합의 사무실만이 있을 뿐이다. 차오영성(曹英生) 상점가진흥조합의 이사장은 “조합에는 100여개의 상점이 가입되어 있다. 일본인과 화교가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최근 신화교의 상점이 증가하고 있어 상호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고베화교사회는 요코하마와 마찬가지로 대만계와 대륙계의 화교협회가 따로 있을 정도로 아직 대립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요코하마가 대륙계와 대만계의 2개의 화교학교로 분리되어 있지만 고베는 중화동문학교(中華同文學校) 1개밖에 없고 대륙계와 대만계 자녀 모두 이 학교에 다닌다. 단, 교과서는 중국 대륙에서 보내 온 것을 사용한다.



 사진 2  고베 관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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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중화가는 거대한 규모의 관제묘와 마조묘(媽祖廟)가 있지만, 고베에는 관제묘 밖에 없다. 그것도 난킹마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관제묘에는 본당 이외에 입구인 산문(山門), 등용문이라 일컬어지는 중문(中門), 그리고 강당인 예당(禮堂)이 있다. 본당에는 관제상(關帝像) 이외에 불교의 관음상(觀音像), 항행의 안전의 신인 마조를 모신 천후성모상(天后聖母像)도 함께 모셔져 있다.
 

관제묘는 고베화교의 각종 민간의 연중 민속행사의 개최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력 1월 13일 관제묘에서는 ‘관제성도일’(關帝成道日), 2월 2일은 복덕정신성탄(福德正神聖誕), 2월 19일은 관음보살성탄(觀音菩薩聖誕), 5월 5일은 마조탄생일, 5월 13일은 관제 제사일, 6월 19일은 관음 제사일, 7월 14-16일은 조상의 영령들을 위로하는 보도승회(普度勝會)의 행사가 개최된다. 이들 제사 가운데 마조 제사, 관제 제사, 보도승회는 모두 복건동향회가 운영한다.
 

요코하마화교가 고베화교를 부러워하는 것이 2가지 있다. 먼저 고베화교역사박물관이다. 인천대 중국학술원과 공동으로 인천차이나타운 사진전을 개최한 곳으로 일본 유일의 화교역사박물관이다. 고베화교와 일본화교의 역사를 전하는 사진과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또 하나는 고베화교화인연구회와 손문기념관이다. 이 연구회는 화교뿐 아니라 지역의 교수, 대학생, 시민이 참가하여 지역화교 뿐 아니라 각 지역의 화교를 연구하는 단체로 3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또한 이전 고베 화상의 별장을 리모델링한 손문기념관이 개설되어 연구와 전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사진 3  고베화교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된 인천차이나타운 특별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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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난킹마치는 요코하마중화가에 비해 규모나 집중도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뒤떨어져 있지만 고베화교역사박물관, 손문기념관, 고베화교화인연구회와 협력하면서 이러한 불리함을 극복하고 있다. 이것이 고베난킹마치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