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로에서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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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 _ 장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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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동북아의 여러 나라는 역사교육과 관련된 논란을 공통으로 겪어왔다. 한국·일본·대만·홍콩·중국 각지에서 또는 서로 간에 벌어진 논란의 내용과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논란들을 관통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지는가, 무엇이 기억되고 망각되는가, 국가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내러티브가 가능하며 그 효과는 무엇인가,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은 국가에 대해 어디까지 다른 상상이 가능한가...

 

홍콩의 한 역사학자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역사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홍콩 중등학교 중국사 교육과정의 공식적인 목적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키워서 민족을 단결시키고 국가를 공동건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홍콩의 교사들은 이런 것을 교육의 목적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역사교육자의 책임은 신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교육하는 게 아니라 신화를 타파하는 것이다. 전통의 부흥, 통일된 민족, 중국 영토와 같은 담론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게 우리 역사학자와 교육자의 임무이다.”

 

최근 홍콩에서는 국가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홍콩 민족(民族)’이라는 이름으로 급격히 등장하고 있다. 이미 홍콩은 독립적 ‘민족’의 기준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대륙인과 홍콩인의 문화나 혈통이 연결되어 있는지 아니면 분리되어 있는지, 홍콩 ‘민족’이 독립적으로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게 가능한지, 홍콩인이 정말 독자적 집단이라면 그 ‘독자성’의 핵심 기반은 무엇인지, 정말 중국인과 절대적 차이가 존재하는지와 관련해서는 많은 입장차이가 존재하여 계속 논쟁중이다.

 

동북아의 국가와 국민 정체성 형성은 식민 그리고 냉전 역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대만·중국·홍콩은 식민 역사로 서로 얽혀있다. 그런데 문제는 식민 이후의 상황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홍콩의 사례는 이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홍콩은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조국의 품에 돌아왔지만, 그 조국으로부터 ‘억압’받는다는 정서가 강해지면서 반작용으로 토착정체성이 생겨나고 있다. 홍콩에 있어서 식민점령자였던 영국보다도 더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타자는 바로 조국인 것이다. 이런 복합적 상황에서 점점 극단적 주장이 나오면서 마침내 천안문사건을 추모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등장하였다. 중국대륙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비장한 믿음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타자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렇게 상대방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배타적·폭력적 타자화에 기반하여 만든 정체성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대만과 홍콩이 중국이라는 국가와 다른 정체성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 핵심 기반은 반공이다. 이 반공은 그들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만들어주고 있지만, 동시에 정체성 상상이 반공 속에 갇혀 버리는 효과도 낳고 있다. 이처럼 국가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상상할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과 고민은 많은 곤경과 아이러니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 곳곳의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점령된 도심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들은, 고정된 하나의 이름으로 수렴되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움직임이 어떤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내는지를 지켜보자. 단, 강력하고 명확해 보이는 대립선이 가지는 위험성에 주의하고, 가장 큰 곤경이 배태(胚胎)하고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자.

 

 

장정아 _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