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중국 행업신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여러 업종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숭배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지하듯이 삼황오제는 중국, 중국인, 중국문화의 원류 내지 정체성을 상징하는 ‘신화적인’ 존재이다. 특히, 복희(伏羲), 여와(女媧), 신농(神農), 황제(黃帝), 수인(燧人), 축융(祝融), 요제(堯帝), 순제(舜帝) 등 중국문명의 기원을 밝히는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개별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인류의 문명을 창조한 ‘문명창조 주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창조한’ 문명을 이어받아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자신의 조상신이자 수호신으로 섬겼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어떤 업종이 어떤 맥락에서 신화 속의 주인공들을 숭배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복희(伏羲)
복희는 여와와 함께 창세의 남녀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수렵, 어로, 불, 문자, 음악, 혼인 등 다양한 인류문명을 창조한 주체를 상징한다.
• 사설경호업체(保鏢業)
사회적 혼란으로 도적이 창궐하고 대체로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전통시기부터 재산과 인신을 보호하는 전문 경호업체가 성행하였다. 이를 ‘보표업(保鏢業)’이라 하는데,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무사로서 ‘보표(保鏢)’, ‘표사(鏢師)’, ‘표객(鏢客)’이라 불렀다. 개인이 경호 관련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 경호업체를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경호업체를 ‘표국(鏢局)’ 또는 ‘표점(鏢店)’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개 복희, 달마(達摩), 악비(岳飛)를 조상신이나 수호신으로 섬겼다. 복희는 대개 태극문(太極門)의 무공을 익힌 경호원들이 조상신으로 섬겼는데, 이는 복희가 태극과 관계가 깊은 팔괘(八卦)를 처음으로 그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달마는 소림(少林) 무술 내지 중국 무술 전체를 창시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충성과 보국(報國)을 상징하는 악비는 대개 무덕(武德)을 강조하는 업종에서 수호신으로 추앙되었다.
• 수렵 및 어업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낚시를 상징하는 강태공(姜太公)과 함께 복희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어민이 복희를 숭배한 것은 복희가 처음으로 물고기 잡는 그물을 발명하였고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에서는 복희를 수렵의 신령으로 묘사하곤 했는데, 아주 먼 옛날부터 수렵에 종사했던 일반 사람들에게 조상신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 점복업(占卜業)
팔괘(八卦)를 가지고 점을 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복희와 주문왕(周文王)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복희와 주문왕이 최초의 점복서(占卜書)라고 할 수 있는 『주역(周易)』을 공동 저술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복희가 팔괘를 처음으로 그리고, 주문왕이 이를 풀이해 썼다는 것이다. 이들 점술가들은 괘(卦)를 계산하기 전에 반드시 복희와 주문왕의 신상(神像)에 경배하여 순조로운 점괘를 기원했다.
사진 1 민국시기 『주역』으로 점을 치는 모습
• 종려나무 수공업
종려나무 털(棕毛)을 꼬아 실을 만들고 이것으로 침대커버, 도롱이, 브러시, 카펫 등을 만드는 수공업 종사자들도 복희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종려나무 장인들이 복희를 숭배한 것은 복희가 최초로 그물 만드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다는 전설과 관계가 있다. 이들도 그물을 만들 듯이, 종려나무 털을 꼬아 끈을 만들고 이것을 엮어 침대커버 등을 만들었던 것이다.
▣ 여와(女媧)
여와는 창세신화의 대표적인 여자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창세신화에 걸맞게 황토를 빚어 사람을 만들고, 난세에 하늘이 갈라지자 오색석(五色石)을 녹여 그 틈을 메웠다는 신화로 잘 알려져 있다.
• 추이탕런(吹糖人, 사탕 공예품을 파는 노점상)
물엿으로 만든 ‘추이탕런’이라는 공예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여와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는 여와의 창세신화와 관계가 깊다. 여와는 황토를 빚어 모양을 내고 여기에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전설로 잘 알려져 있다. ‘추이탕런’도 물엿을 끓여 모양을 내고 숨을 불어넣으면서 만든다. 또한 물엿을 끓일 때 쓰는 냄비 같은 국자(馬勺)는 여와가 갈라진 하늘을 메우기 위해 돌을 녹일 때 쓰던 도구에 비유되었다.
사진 2 추이탕런(吹糖人)
사진 3 추이탕런(吹糖人)
• 석탄업(煤業)
일부 지역의 석탄업 종사자들도 여와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예컨대, 산시(山西) 핑딩현(平定縣)에는 인근의 동부산(東浮山)에 여와가 갈라진 하늘을 메우기 위해 오색석(五色石)을 녹였던 부뚜막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 석탄을 연료로 돌을 녹였다는 것이다. 여와는 석탄을 사용한 창시자로 여겨졌고, 해당 지역의 석탄업자들이 여와를 자신의 조상신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 우산 제조업
일부 지역의 우산 제조업자들은 장인(匠人)을 대표하는 노반(魯班)에 덧붙여 여와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것도 여와가 오색석(五色石)을 녹여 하늘의 갈라진 틈을 메웠다는 신화와 관련이 있다. 우산업자들은 비가 내리는 것을 하늘에 틈이 생긴 것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우산을 만드는 것은 하늘의 틈을 메우는 것과 같은 일이 된다. 다만 오색석을 우산살로 치환했을 뿐이다. 따라서 하늘의 틈을 메운 여와를 조상신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 신농(神農)
신농은 처음으로 농업과 상업을 인간들에게 가르쳤고, 의학과 약학에 통달한 존재로 잘 알려져 있다.
• 양식업(糧食業)
양식업은 식량을 팔고 저장하고 가공하는 일을 모두 포함한다. 이는 매우 주요한 사업 중에 하나였으므로 여러 신령들이 조상신이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는데, 신농(神農)도 그 중에 하나였다. 신농은 중국 신화, 전설 중에서 가장 저명한 ‘농사의 신’으로서, 농사를 발명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오곡백과를 풍성하게 한다고 전해졌다. 따라서 농사의 결실인 식량을 다루는 사람들이 신농을 조상신으로 숭배하였던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신농의 탄신일에 성대한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되박이 올바른지를 확인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는 신령의 권위를 빌려 거래의 공정성과 질서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 황제(黃帝)
황제는 통합된 나라의 최초 통치자일 뿐만 아니라, 가옥, 우물, 절구, 활, 수레, 배, 옷, 신발, 달력, 악기 등 인간에게 필요한 많은 물건을 발명하였다.
• 활 및 화살 제조업(弓箭業)
활과 화살을 제조해 판매했던 사람들은 황제를 조상신으로 숭배하고, 역사상의 저명한 신궁(神弓)들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대개 궁전회관(弓箭會館)의 사당에는 황제가 중앙에 모셔져 있고 여러 신궁들이 좌우에 배치되었다. 황제를 조상신으로 숭배한 근거는 황제와 황제의 신하인 휘(楎)라는 인물이 활과 화살을 발명했다는 전설에 있다.
• 모직물 제조업(毛織品業)
모직물 제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부 황제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그 이유는 황제를 관모(冠帽)와 의상(衣裳)을 발명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 치료 무당(巫醫)
무당은 워낙에 사람들을 위해 신령에게 기도하는 직업이므로 매우 다양한 신령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개중에 질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무당은 대개 황제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그 이유는 부적과 주문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주술(祝由之術)을 황제가 만들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전설은 지역에 따라 황제의 신하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요컨대, 황제에게는 기백씨(岐伯氏)와 축유씨(祝由氏)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모두 훌륭한 의사였다. 그 중에 축유씨는 부적을 써서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 안경업(眼鏡業)
안경업자들도 황제를 숭배했다. 이는 황제가 거울을 발명했다는 전설과 관련이 있다. 안경(眼鏡)도 거울(鏡)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 솜틀집(彈花業)
솜을 타는 솜틀집 종사자들도 황제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는 황제가 관모와 의상의 발명자라는 전설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관모 및 의상이 솜(면화)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신발업(靴鞋業)
신발을 만들고 수리하고 판매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신발을 발명한 인물로 여겨지는 손빈(孫臏)을 조상신으로 섬겼지만, 동시에 황제를 숭배하기도 했다. 황제가 손빈에 앞서 신발을 발명했다는 전설과 관련이 있다.
【중국 행업신 이야기 –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9】
박경석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李喬, 『行業神崇拜 : 中國民衆造神史硏究』, 北京出版社, 2013. 8, 437쪽.
http://www.lofter.com/favblog/mjyscc?fpost=acdf0_71c0b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