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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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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부강(七不講), 중국 지식인의 칠거지악 _ 조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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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이 보수화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저우창(周強) 최고인민법원 원장이 전국 고급법원 원장 회의에서 서방의 '헌정민주', '삼권분립', '사법독립'과 같은 잘못된 사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중국의 사법당국을 대표하는 수장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요건인 사법권의 독립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중국 사법당국은 물론, 관방언론들도 일제히 '사법독립'을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요건으로 보는 것 자체가 서방식 민주주의 개념일 뿐이라며 적극 옹호에 나서고 있다. 아울러 중국이 이미 독립심판권과 독립검찰권을 보장하는 '의법독립(依法獨立)', '독립사법(獨立司法)'의 체제를 갖추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법독립'과 '독립사법'이 대체 '사법독립'과 어떻게 다른 건지 '서방' 민주주의에 젖은 우리로서는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대충 개별 판결이 독립적으로 이뤄진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된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개별 판결이 얼마나 독립적이기 어려운지 우리의 법원과 검찰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중국은 차제에 서방식 민주주의는 절대로 없다는 점을 더욱 확고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전임이었던 후진타오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핵심(核心)'이라는 호칭이 최근 시진핑 주석에게 다시 부여되었다는 점도 개혁·개방 이후 자리 잡던 집단영도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아직은 너무 이르지만, 덩샤오핑을 넘어 마오쩌둥 시대처럼 일인 통치로 귀결될 것이라는 억측도 나돈다. 거기에 인터넷 통제도 심화될 예정이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주요 검색엔진과 SNS는 물론, 중국에 비판적 기사가 자주 실리는 해외 언론도 중국에서 접속이 불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보도나 검색어도 자주 막히며 중요한 행사를 전후해서는 별로 위험하지 않은 해외 사이트도 갑자기 봉쇄되곤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해당 사이트들을 우회하여 접속하는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좀 불편하더라도 이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빠르고 안정된 서비스를 위해서는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는 게 좋지만, 괜찮은 무료 VPN도 많아 중국인들 중에서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것도 이제 단속하겠다는 공업정보화부의 통지가 최근 공표되었다. 기간도 무려 내년 3월 31일까지라니 아예 뿌리를 뽑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이런 보수화 경향 때문인지 최근 몇몇 중국학자들과의 대화에서 철지난 유행어를 다시 듣게 되었다. '칠부강(七不講)'이다. 시진핑 집권 초기인 2013년 5월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청이 「현재의 이데올로기 영역의 상황에 관한 통보(關於當前意識形態領域情況的通報)」라는 비공개 문건을 하달했다. 「통보」의 내용을 상하이에 소재한 화둥정법대학(華東政法大學)의 장쉐중(張雪忠) 교수가 웨이보에 폭로하면서 '칠부강'이 알려지게 되었다. '칠부강'은 말 그대로 일곱 개의 주제에 대해서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곱 개의 주제는 보편적 가치, 언론의 자유, 시민사회, 시민권,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과오, 권력·자산계급, 사법독립 등이다. 이에 앞서 2011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인 우방궈(吳邦國)가 다당제, 다원주의, 삼권분립 및 양원제, 연방제, 사유화 등 다섯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속칭 '오부고(五不搞)'로 부르기도 했다. 즉 중국은 '서방식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 것이며, 대학에서도 관련 내용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다.
 

본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장쉐중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포기, 인민해방군과 공산당의 관계 절연 등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와 제도를 부정하는 다양한 '불법' 활동을 해온데다 '칠부강' 폭로까지 겹쳐 강의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결국 해고되었다. 심지어 장 교수는 소속 학과 여학생에게 보냈다는 러브레터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성실한 학자가 아니라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학생을 쫓아다니던 호색한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본인이 그런 적이 없다고 부정하면서 누군가 꾸며서 러브레터를 올린 게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이미 해고되었는데 좋아하는 사람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일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지위와 명예 모든 면에서 톡톡히 대가를 치른 셈이다.
 

정말 「통보」가 중국의 대학들에 하달되었는지, '칠부강'이 강단의 학자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억압으로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아 끝내 완벽하게 실증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칠부강'이 실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중국 지식인들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는 압축적인 단어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실체적 진실은 아닐지라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지식인들이 느꼈던 압박감을 상징하는 정서적 진실로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다시 '칠부강'이 종종 운위되는 것은 중국공산당이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지식인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지식인들이 '칠부강'으로 상징되는 억압에 대해 저항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날선 비판이나 결연한 투쟁의 표현이기보다는 체념과 냉소의 어투가 섞인 방관자적인 태도에 가깝다. 몇몇 학자가 '지적 전통주의(intellectual traditionalism)'라는 말로 압축하여 서술한 바 있듯이 중국 지식인들 대다수는 시민과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다는 국가의 부강을 더 중요시하며 이를 위해 강력한 '중앙'이 있어야 한다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자유롭게 연구와 강의를 하고 싶고 금기시되는 주제를 다뤄보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선을 넘어설 마음은 없으며, 그냥 요즘 상황이 그러니 참고하라는 태도에 가깝다.
 

이처럼 '칠부강'은 중국 지식인의 '칠거지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유교적 질서 속에서 부인을 쫓아낼 수 있는 일곱 가지 조건을 서술한 '칠거지악'에는 제한 조건이 있었다. 부인이 쫓아내도 돌아갈 곳이 없거나 시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치렀거나 가난했던 집안이 부유하게 일어섰다면 쫓아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삼불거(三不去)'로서 '칠거지악'과 합쳐 '칠출삼불거(七出三不去)'라고 일컬어졌다. 중국 지식인들은 '칠부강'을 어긴다면 돌아갈 곳도 없으며, 건국 이후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등 숱한 고난을 겪어야만 했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부상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삼불거'는 잊혀지고, 쫓아낼 수 있는 항목을 열거한 '칠거지악'만이 남았듯이 중국 지식인들의 무조건적인 지적, 사상적 시집살이는 계속될 듯하다. 중국 지식인들의 발화에서 '칠부강'이 다시 등장하는걸 보면, 이 시집살이는 최소한 향후 몇 년간 더 혹독해질 게 분명하다.


【신조어로 보는 중국문화 5】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twitter.com/thomasycwong/status/333289244099485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