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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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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교사회의 ‘중국집 접시닦이’ _ 주희풍

‘집’은 명사 뒤에 붙어서 물건을 팔거나 영업을 하는 가게를 나타내는 순수 한국말이다. ‘갈빗집’이라든지 ‘고깃집’이라든지 ‘꽃집’이라든지 이러한 단어처럼 중화요리를 파는 식당을 우리는 ‘중국집’이라고 불러왔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한 결과 ‘중국집’이라는 말은 이미 1920년대부터 사용되어 왔다. ‘갈빗집’을 이제는 ‘가든’으로 부르는 것처럼 1920년대 ‘중국집’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지금 ‘중국집’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매우 다를 것이다. 한국의 화교들은 이 ‘중국집’이라는 말을 그들만의 말로 ‘中國家兒(중궈지알)’나 ‘中國館兒(중궈괄)’로 번역하여 써 왔다. 사실 이 말은 국적 없는 말로 한국 화교사회에서만 쓰는 말이다. 한국의 화교라면 ‘중국집’이라든지 ‘中國家兒’라든지 ‘中國館兒’이라든지 이 말들을 지긋지긋하게 들었을 것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공부 안 하고 중국집 할래?”, “나중에 커서 짜장면 팔래?”, “공부 안 하고 중국집에서 접시 닦을래?” 등이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레퍼토리니까. 교육에 있어 ‘직업폄하적인 채찍질’이 아닐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각 지역의 화교협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화교의 직업 중 요식업을 운영하거나 요식업에 종사하는 화교가 가장 많다. 
 

사실 ‘중국집 접시닦이’는 중국집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집 주방의 한 직급을 말한다. 이 직급을 화교사회에서는 ‘솨궈(刷鍋)’라고 한다. 중식 주방에서 가장 말단에 직급이다. 요즘 TV 프로그램에서 뜨는 이른바 화교 출신 ‘차이니즈레스토랑’ 셰프들 모두 ‘솨궈’ 즉 ‘중국집 접시닦이’에서부터 출발했다. 규모가 ‘큰 중국집’의 주방은 규모가 ‘작은 중국집’, 소위 말하는 ‘배달하는 중국집’과 상당히 다르다. 규모만큼 종업원 수도 많고 직급에 따른 직책을 정확히 나누고 매우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중국집 접시닦이인 ‘솨궈’가 있는 ‘중국집’은 규모가 큰 ‘중국집’이다.
 

‘솨궈’는 1980년대 초까지 존재했던 중식 주방의 직급이다. 먹여주고 재워만 주면 기꺼이 한 푼 안 받고 기술을 배웠던 시절에나 존재했다. ‘솨궈’의 주요 직책은 요리를 담아 낼 접시를 물기 없이 깨끗이 닦아내거나 스푸(師傅: 중국식 셰프)들이 요리를 마친 프라이팬을 닦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중국집 접시닦이’이다.


사진 1  중화팬 솔

사진1 중화팬 솔.jpg


사진 2  중화팬을 닦는 모습

사진2 중화팬을 닦는 모습.jpg


사진 3  중식 국자

사진3 중식 국자.jpg


위 사진과 같은 솔로 스푸들이 요리 하나를 마칠 때마다 프라이팬과 국자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만약 실수를 하거나 동작이 민첩하지 못하면 커다란 국자로 맞는 것이 다반사다. “국자로 맞아가며 몰래 눈물을 훔쳤던 그 시절”이라는 드라마틱한 말이 여기서 나온다.
 

‘중국집’ 주방에는 ‘면장보조’라는 직급이 있다. 화교사회에서는 ‘칸궈(看鍋)’라고 한다. 말처럼 면장의 보조역할을 한다. ‘면장’은 면(麪), 그러니까 밀가루에 관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직급을 말한다. ‘칸궈’는 바로 이 직급의 보조로 찌는 것과 삼는 것을 도맡아하는 직급이다. ‘면장’이 면을 뽑으면 면을 삼고, 면장이 만두나 꽃빵을 만들면 그것을 맡아 찐다.


사진 4  ‘면장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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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궈’가 없어진 현재 ‘칸궈’가 중국집 주방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직급이다. ‘칸궈’ 바로 위에 ‘점표’라고 하는 직급이 있는데 화교사회에서는 ‘칸달(看單兒)’이라고 한다. ‘점표’란 손님이 주문한 메뉴를 적는 표를 말하는데, ‘칸달’은 이 점표를 보는 역할을 한다.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받아온 주문을 ‘칸달’이 큰 소리로 주방 모두가 들리게 외친다. 이를테면 “탕수육 하나 짬뽕 두 개 짜장 세 개요!” 물론 이것을 중국어로 한다. 요즘에는 전부 기계화가 되어 점표가 따로 있지 않지만 기계화되기 이전까지 점표는 모두 아래와 같이 한자로 썼다. 요리가 나오면 ‘칸달’은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에게 신호를 보내고 한국어로 메뉴와 테이블 번호를 외친다. 이를테면 “탕수육 3번! 짜장면, 볶음밥 5번!”과 같이 말한다. 간혹 ‘중국집’에서 중국어를 배웠다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5  중국집 점표 1

사진5 중국집 점표 1.jpg


사진 6  중국집 점표 2

사진6 중국집 점표 2.jpg



‘중국집’ 주방은 세 개의 부문으로 나뉜다. 불을 가리키는 ‘훠얼(火兒)’과 칼을 가리키는 ‘둔얼(燉兒)’ 그리고 면(麪)을 가리키는 ‘몐알(麪案兒)’이다. 이것을 각각 한국어로 ‘프라이팬’, ‘칼판’, ‘면장’이라 부른다. 스푸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과정으로 솨궈’, ‘칸궈’, ‘칸달’을 거쳤다면 이제 ‘면장’인 ‘몐알(麪案兒)’로 승진한다. 앞서 말했듯이 ‘몐알’은 밀가루에 관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는다. 면을 뽑거나 만두나 꽃빵을 빚는다.


사진 7  ‘몐알(麪案兒)’

사진7 ‘몐알(_案兒)’.jpg


사진 8  '중국집'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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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중국집' 꽃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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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몐알’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보면 세 갈레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딤섬이나 중식 디저트 만드는 기술을 더 배울 수도 있고 ‘둔얼’ 쪽으로 가거나 ‘훠얼’ 쪽으로 갈 수도 있다. 딤섬과 중식 디저트는 또 다른 영역이라서 보통은 ‘둔얼’ 아니면 ‘훠얼’ 쪽으로 간다.   
 

‘중국집’ 주방의 ‘둔얼’에서는 요리가 되는 모든 재료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식재료의 주문에서부터 신선도의 관리까지 주방 살림을 도맡아 한다. 요리 주문이 들어오면 요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준비하여 ‘훨얼’ 쪽으로 넘긴다.


사진 10  '중국집' ‘둔얼(燉兒)’

사진10


‘둔얼’에는 ‘셋째 칼판’이라고 불리는 싼둔얼(三燉兒)과 ‘둘째 칼판’이라고 불리는 ‘얼둔얼(二燉兒)’ 그리고 ‘첫째 칼판’이라고 불리는 ‘터우둔얼(頭燉兒)’이 있다. 기술과 연륜에 따라 점차 승진하면서 ‘터우둔얼’일 경우 부주방장을 겸임할 수도 있으며 기술과 연륜이 더 쌓이면 주방장으로 추대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식 냉채, 중식 조각, 중식 데코레이션 등이 모두 ‘둔얼’에서 만들어 진다. 


사진 11  중식 냉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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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중식 냉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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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3  중식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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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4  중식 테코레이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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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5  중식 테코레이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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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주방장이 되기 위해서는 ‘칼판’ 즉 ‘둔얼’쪽 보다는 ‘프라이팬’ 즉 ‘훠얼’쪽으로 가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다. 아무래도 칼보다는 불을 더 잘 다루는 것이 중식 주방장 자질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훠얼’에서는 ‘튀김장’으로 불리는 ‘자훠얼(炸火兒)’이 있고 ‘둘째 프라이팬’이라고 불리는 ‘얼훠얼(二火兒)’이 있고 ‘첫째 프라이팬’이라고 불리는 ‘터우훠얼(頭火兒)’이 있다. ‘자훠얼’은 기름에 튀기는 것만을 담당하고 ‘얼훠얼’은 주로 식사나 간단한 요리를 담당하고 ‘터우훠얼’은 주방장과 함께 고급요리에서부터 최고급요리를 담당한다. ‘터우훠얼’도 ‘터우둔얼’과 같이 부주방장을 겸임할 수도 있고 기술보다는 연륜이 쌓이면 주방장으로 추대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 16  '중국집' ‘훠얼(火兒)’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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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규모가 큰 ‘중국집’ 주방장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화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방장이 되기까지 한 20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앞서 화교사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요식업을 운영하거나 요식업에 종사하는 이가 가장 많다고 언급하였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면학을 채찍질할 목적으로 언급되는 직업이라 생각되지만 여전히 한국의 화교사회에는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시대가 이전보다는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화교사회에서는 이 직업군을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화교들은 고3이 되면 한국 혹은 대만으로 대입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지는데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레퍼토리처럼 “짜장면 팔기 싫어서” 화교사회를 떠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화교학교가 한국 화교사회 형성에 큰 기여를 하는 동시에 한국화교를 떠나보내는 매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화교가 있어 화교학교가 생겨났는데 화교가 없어지면 화교학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지금의 화교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나중에 커서 짜장면 팔래?”라는 채찍을 맞아가면서, 중식 국자로 맞아가면서 몰래 눈물을 훔친 그들이 아닌가싶다.

 

한국중화요리, '()''()' 23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수료 / 인천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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