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국립타이완사범대학 박애루(博愛樓) 5층 국어센터(國語中心) 강당에서 개최된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 주최의 국제학술회의장. 이 학회는 타이완 유일의 화교화인 관련 학회로 전통이 깊은 학술단체이다.
사진 1. 10월 26일 국립타이완사범대학에서 개최된 중화민국해외화인국제학술회의의 포스터
오전 세션이 끝나고 점심 식사한 후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의 회원대회를 개최했다. 타이완의 내정부(內政部)에 등록된 학술 단체는 1년에 반드시 1번은 회원대회를 개최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참석한 회원은 리우밍펑(劉名峰)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 이사장을 비롯해 10여 명. 현재의 회원은 38명, 4∼5년 전만 하더라도 회원은 70여 명에 달했다.
필자는 2007년 5월 이 학회 주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는 회원이 10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국제학술회의에 초청을 받아 발표하러 온 필자에게 이 학회의 회원대회를 참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회원대회는 국제학술회의 진행을 위해 몇 분 사이에 종료했다.
사진 2. 중화민국 해외화인국제학술회의의 회원대회 모습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가 탄생한 것은 1987년. 당시 타이완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인 장춘우(張存武) 교수가 창립발기 했으며, 1988년 2월 13일 학회가 내정부에 등록됨으로써 정식 단체로서 성립했다. 따라서 올해는 학회 성립 37년이 되는 해이다.
마침 이번 국제학술회의에 타이완의 대표적인 화교화인 학자 가운데 한 명인 리잉후이(李盈慧) 타이완 국립기남국제대학 명예교수가 “시대변천: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의 학술 맥락(時代變痕: 中華民國海外華人硏究學會的學術脈絡)”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학회의 역사를 학술적 맥락 속에서 명쾌하게 정리한 훌륭한 강연이었다. 리잉후이 교수는 장춘우 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 학회의 정체성은 학회 명칭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타이완이 아니라 ‘중화민국’을 넣은 것은 중국대륙에서 시작된 중화민국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국공내전에서 패배하고 타이완으로 천도한 중국국민당 정부의 교민정책 및 화교정책에 찬동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냉전 시기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치열한 이념대립 하에서 해외 거주 화교화인을 자국의 국민으로 인식하고 그들이 국가에 충성을 바칠 수 있도록 화교화인 연구와 정책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진 3. 리잉후이 교수의 강연 장면
타이완의 화교 연구는 국민당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로 이뤄지게 되는데 연구의 센터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와 민족학연구소였다. 이 학회의 제1기와 제2기의 이사장을 지낸 장춘우 교수와 이사와 감사를 지낸 Li Yih-yuan(李亦園), Wen Chung-I(文崇一), Wu Yuan-Li(吳元黎)는 중앙연구원 민족학연구소 소속의 학자였다. 이들 학자는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을 베이스로 수준 높은 연구를 진행했다.
이 학회가 출범한 시기는 장징궈 총통이 서거하고 리덩후이 총통이 취임하는 타이완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시기로 냉전 말기였다. 이때쯤부터 타이완의 화교화인 연구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화교’ 연구에서 ‘화인’ 연구로 전환하는 시기였으며, 그러한 전환은 학회의 명칭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 학회의 설립 취지는 크게 네 가지. 첫째는 해외 화인과 관련된 자료의 수집과 연구 진행. 둘째는 해외 화인 조직과 유관 학술 단체, 학자 및 전문가와의 연계. 셋째는 학회의 뉴스레터, 학보, 총서, 관련 논문과 저서의 번역 출판. 넷째는 학술회의 주최 및 참가. 이번 국제학술회의 개최는 넷째 취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타이완에서 2000년 정권이 중국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일정 기간 타이완의 화교화인 연구는 활발히 이뤄졌다. 이전의 역사학과 인류학 영역에서 벗어나 사회학, 문학, 건축학, 교육학, 정치학 영역의 학자가 참가하면서 논의가 보다 다양해졌다. 또한 타이완 정부가 1990년대 중반부터 실시한 ‘남향정책(南向政策)’ 및 ‘신남향정책’은 화교화인을 비롯한 동남아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그 영향으로 대학에 동남아 관련 학과가 새로 개설되었으며, 많은 연구성과가 양산되었다.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는 매년 개최하는 국제학술회의의 발표 자료집을 발행했으며 1989년부터 학술지 《海外華人研究》를 발간하고 있다. 이 학술지는 단속적으로 발행되다 2007년경부터 네덜란드의 유명한 출판사인 Brill과 협력하여 영문 학술지 Translocal Chinese: East Asian Perspectives(TCEA)《海外華人研究》로 발행하고 있다. 매년 1권씩 발행하여 2023년까지 총 17권을 발행했다. 현재의 편집위원장은 국립타이완사범대학의 Chiang Bo-wei(江柏煒) 교수가 맡고 있다. 학회는 이외에 총서도 발행하고 있다.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권과 라이칭더 정권이 타이완인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화교화인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국민당 정권 시기보다 훨씬 줄어들면서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의 활동이 위축되었다. 이번 학회의 회원대회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의 발표 주제도 순수한 화교화인학 관련 발표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만주국 시기 대만인의 역사, 홍콩인의 정체성 문제, 싱가포르의 도시정책, 객가(客家)의 언어 문제, 베트남 화인인 응아이 문제, 해외 활동 대만의 상인인 대상(臺商) 등 다양했다.
리잉후이 교수는 강연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이완의 ‘화인연구’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소수의 학자가 묵묵히 연구해 전진해 왔다.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추동 없이도 능력과 품격을 겸비한 학자에 의한 독특한 연구와 능력 발휘 그 자체로 좋지 않은가?” 노학자의 중화민국해외화인연구학회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한탄 그리고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화교·화인의 ‘세계’ 8】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李盈慧, 「時代變痕: 中華民國海外華人硏究學會的學術脈絡」, 『2024 中華民國海外華人硏討會』, 2024.10.26.
華僑華人の事典編輯委員會, 『華僑華人の事典』, 丸善出版, 2017.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2,3. 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