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혁개방은 ‘시장’에 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개혁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시장이 곧 자본주의는 아니며, 사회주의에서도 시장을 운용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고, 이는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라는 목표로 공식화되었다.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란 사회주의 조건에서 시장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며,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를 제기했다.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인데,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개혁 이후 중국공산당이 제기해 온 주요 개념들을 아래 그림으로 정리해 보았다.
표 1. 중국공산당이 제기해 온 주요 개념
이 그림에서 보듯이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은 당 대회와 주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중국식 발전의 길을 이론화·체계화해왔다. 이러한 과정의 연속성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란 무엇인지 필자 나름대로 해석해보았다.
첫째,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의 제기는 ‘중국특색사회주의 제도’의 확립 및 체계화 과정과 관련된다. 중국공산당은 2019년 10월 28일에 개최된 19기 4중전회에서 “중국특색사회주의 제도의 견지와 완비”를 강조하며,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를 사회주의 기본경제제도의 하나로 규정했다. 기존 사회주의 기본경제제도에는 소유제(공유제를 주체로 하는 다종소유제 경제)와 분배방식(노동에 따른 분배를 주체로 한 다양한 분배방식의 공존)에 관한 내용만 있었는데, 중국특색사회주의제도를 근본제도, 기본제도, 중요제도로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를 사회주의 기본경제제도 안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19기 4중전회 「결정」에서는 중국특색사회주의 제도의 확립을 통해, 중국공산당 영도와 사회주의 제도라는 대전제 하에서 시장경제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을 명확히했다.1) 시장경제 때문에 자기 제도의 본질적규정성을 바꾼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가 필요로 하는 체제변혁에 대해 적극 호응하면서 사회주의 제도를 확립해왔다는 것이다.
이듬해 2020년 5월 18일에는 중공중앙과 국무원이 「신시대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 개선 가속화에 관한 의견」(이하 「의견」)을 발표하며, 정책결정 및 배치(决策部署)2)를 한층 더 구체화했다. 「의견」에서는 중국사회의 주요 모순이 이미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불충분한 발전 사이의 모순”으로 바뀌었고, 중국경제가 고속성장 단계에서 질적 발전 단계로 전환되면서,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의 완성에 대해 더욱 높은 요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시장화 개혁을 심화하고 높은 수준으로 개방을 확대하며,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의 가속화와 완성을 통해 체제 메커니즘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경제체제 각 영역 개혁 간의 관련성과 각 개혁 조치의 결합성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이른바 개혁의 “시스템 통합(系統集成)”을 강조했다.3)
이어 10월 26일 개최된 19기 5중전회에서는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 구축에 관한 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았고, 이러한 기조는 2022년 20차 당대회, 2024년 20기 3중전회로 이어졌다. 20기 3중전회에서는 “중국식 현대화”의 실현을 보장할 수 있도록 2035년까지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중국공산당이 보다 강조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시장경제’가 아닌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에 있다. 제도는 체제보다 상위 개념이며, 시장경제 체제는 사회주의 제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둘째,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는 자원배치에서 시장의 결정적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정부의 역할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더 높은 수준의 효과적인 시장(有效市場)을 구축하는 한편, 더 높은 수준의 능력있는 정부(有爲政府)를 구축하고, 이 두 가지를 잘 결합한다는 것이다. 20기 3중전회에서는 보다 공정하고 역동적인 시장 환경(“放得活”)의 조성과 함께, 과학적인 거시통제와 효과적인 정부 거버넌스(“管得住”)의 개선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4) 개혁개방 과정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이 과정에서 부패, 정경유착, 양극화 등의 문제가 점차 커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편향을 바로잡고, 능력 있는 정부가 시장감독 역할을 잘 수행하여 시장이 보다 규범적인 수준에서 건전한 운행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관련하여 19기 5중전회에서 발표한 「14.5규획」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높은 기준의 시장체계(高標准市場體系)”를 기본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당 중앙은 2021년 연초에 「높은 기준의 시장체계 건설 행동 방안」을 발표하며, “6개 전면”으로 더욱 공평한 시장경쟁 환경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이 6가지는 재산권 제도, 시장진입의 규범화, 경쟁정책 개선, 요소 시장화배치의 최적화, 신용건설 강화, 통일시장 건설 강화이다.5)
셋째,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 발전의 근본적인 정치 보장은 ‘당의 영도’ 견지이다. 앞에서 말한 정부와 시장의 관계 조정과 관련된 계획과 실행 및 관리·감독 등 모든 과정은 당의 영도 하에 이루어진다. 즉 당이 독립적인 위치를 확보하여, 전체적인 개혁의 방향과 과정을 컨트롤한다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는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정부의 시장에 대한 규제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시장은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의 수단이지만, 공산당이 영도하는 정부는 시장을 규제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즉 당이 영도하는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고 시장의 권력 관계, 특히 자본이 가진 권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2021년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억제”하고, “자본의 야만적인 성장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중국공산당은 오직 당만이 공정한 경쟁의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고, 정부-시장관계를 잘 조정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의견」에서는 “사회 전체의 창의력과 활력 넘치는 시장 환경은 중국공산당의 영도 하에서만 진정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목적 중 하나는 시장 운행의 효율을 보장하는 것과 함께 다른 하나는 일정한 사회적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중국 사회주의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형태로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넷째,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는 달라진 국내외 정세에 맞춰 제기된 목표로, 다분히 미국과의 체제 및 제도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높은 수준’이란 신발전이념에 따라 필요한 질적 발전과 과학기술 자립자강의 실현을 의미한다. 새로운 발전단계에 맞춰 새로운 발전이념을 전면적으로 관철시키며, 새로운 발전구조를 구축하고 질적 발전 추진을 위해 체제기제 보장과 관련 동력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발전’ 개념이 단순히 경제적인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비경제적인 분야에서의 질적 발전도 포함하며, 이는 주요 모순의 재조정과 인민 중심의 정책 조정으로 나타났으며, 이것이 중국식 현대화 추구의 길이라는 것이다. 또한 달라진 정세 변화에 따라 경제안보 영역의 체제기제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와 안보, 국가안보와 사회안정의 결합으로 나타나고 이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상으로 중국공산당이 제기한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란 당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정책 실행을 위해 가용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며, 정부와 시장 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개혁개방 이전 시기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아니고, 정부의 개입과 조정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도 다르다. 또한 당의 영도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논의되었던 시장사회주의나 북유럽에서 추구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와도 다르다. 그렇다고 완전한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인 형태로 사회주의시장경제 단계를 설정한 것도 아니다.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는 중국특색사회주의 제도 속으로 결합되어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방법이자 목표이다.
중국공산당은 18차 당대회에서 낡은 길도, 사악한 길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마오쩌둥의 길과 덩샤오핑의 길을 동시에 계승한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중국은 이미 모순을 안고 가겠다고 결심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행보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중국공산당에게는 모순이 아닐 수 있다. 중국공산당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모두 경험해보았던 것이고, 그 폐해 역시 잘 알고 있다. 계획경제 시스템에서도, 시장 중심의 개혁의 길에서도 모두 문제점이 나타났다.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추구하는 길은 이 두 가지의 폐해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길과 제도를 만들어간다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 구축에 있다.
18차 당대회 이후의 두드러진 특징은 ‘당’이라는 존재의 재발견이다. 당을 국가통치 안에서 밖으로 가져와, 다시 제도를 설계하고 정책을 만드는 주체적 위상을 분명히 하였다. 당은 국가와 사회, 시장, 기업, 그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모든 것을 초월하며 영도하는 존재이다. 중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시장경제나 시장사회가 아니다.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 구축의 최종 목표는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특색사회주의 제도를 구축하고 중국식 현대화를 실현하여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중국식 사회주의를 확립하는 데 있다.
장윤미 _ 동서대 동아시아 연구원 연구교수
1) 「中共中央关于坚持和完善中国特色社会主义制度, 推进国家治理体系和治理能力现代化若干重大问题的决定」, https://lrl.kr/yaqL
2) 정책결정배치(决策部署)란 특정한 목표와 임무에 따라 제정하고 실시하는 행동계획이나 정책을 말한다. 통상 고위층 영도기구(당 중앙과 국무원)가 국가와 지역의 장기적 발표목표에 따라 중대한 정책과 조치를 제정하고, 각급 조직과 기관에서 이를 집행하도록 하여 목표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배치는 다층차적이고 다방면의 과정으로, 정책 제정에서 실행 메커니즘, 실시 감독까지 전체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3) 「中共中央 国务院关于新时代加快完善社会主义市场经济体制的意见」, https://lrl.kr/OW0H
4) 「中共中央关于进一步全面深化改革, 推进中国式现代化的决定」, https://lrl.kr/hnQw
5) 「中共中央办公厅 国务院办公厅印发《建设高标准市场体系行动方案》」, https://lrl.kr/pL8D
** 이 글에서 사용한 표는 필자가 직접 작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