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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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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소설의 거장 ‘타이완계 화인’ 진순신(陳舜臣)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_ 이정희

국내서 중국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진순신(陳舜臣, 1924-2015)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거나 번역된 책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일본명은 친슌신(ちんしゅんしん, Chin Shunshin)이다. 올해는 그가 일본 고베서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인 역사소설의 거장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전후 일본인에게 중국의 역사를 이해시켜준 것은 진순신 이외에 없었다라고 갈파한 것처럼 그가 일본인의 중국 이해에 심대한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문고판으로 다시 출판되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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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진순신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의 장면



진순신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태어나 성장하며 생활한 고베에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됐다. 고베화교역사박물관은 2024131일부터 224일까지 진순신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 고베를 사랑하고 고베에서 산 진순신을 개최했다. 이 전시회는 13장의 패널로 구성하여 진순신과 그의 작품 속의 고베, 진순신과 화교사회와의 관계, 해외서 번역 출판된 번역서와 진순신의 166개 작품, 206책의 전시로 나뉘어 있다. 217일에는 고베의 복건회관(福建會館) 8층 회의실에서 “20명이 말하는 나의 진순신씨’”를 개최, 인간 진순신과 그의 작품과 인연이 있는 22명에게 이야기를 듣는 모임을 가졌다.

 

진순신의 작품은 발표된 일본에서뿐 아니라 중국어와 한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대만, 한국에서도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국내에 번역된 진순신의 작품은 14개 작품, 42책에 달한다(1 참조). 중국과 대만에 번역된 작품 편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진순신은 타이완계 화교타이완계 화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부친은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듬해인 1896년 타이베이 신좡(台北新莊)에서 태어난 타이완인이다. 부친은 장사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고베로 이주하게 되는데, 진순신은 바로 그곳에서 192421810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진순신은 일본화교화인학회장을 지낸 친라이코(陳來幸) 교수의 백부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인 관계로 선택의 여지 없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일본 패전 후 타이완이 중화민국 국민당 정권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면서 진순신은 일본 국적자에서 중화민국국적자로 바뀌게 된다. 1943년 오사카외국어대 인도어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조교로 일하던 진순신은 외국인의 법적 지위를 가지는 중화민국 국적자가 되면서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길이 닫혀버렸다. 그래서 1946년 타이베이현립 신좡초급중학의 영어교사로 취업하여 194910월까지 근무하고 고베로 돌아간다. 타이베이 체류 시 발생한 2·28사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이 일본으로 돌아오게 만든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고베로 돌아와 무역업의 가업을 도와주면서 생활하게 되며 이때 결혼도 한다. 1957년부터 소설 집필을 시작해 1959년부터 전업 작가가 될 결심을 한다. 1961년 발표한 추리소설 枯草(시든 풀뿌리)가 에도가와란포상(江戶川亂步賞)을 수상하면서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阿片戰爭(아편전쟁)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역사소설가로서 화려하게 데뷰했다.

 

1972년 일본과 중국이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일본과 타이완이 단교하자, 진순신은 1973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국적을 바꾸게 된다. 국적 변경의 이유는 중국을 자유롭게 방문하여 역사소설 소재의 현지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타이완 정부는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고베신문에 당국의 무력진압을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하고 199010월에는 국적을 일본으로 바꾸었다. 그해 1241년 만에 타이완을 방문했으며, 이후 타이완의 호적을 부활하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진순신은 타이완인으로 태어나 격동하는 동아시아 근현대 역사의 파고에 휘말려 일본,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다시 일본의 국적을 취득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그의 인생 유전은 도대체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그것이 그의 역사소설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타이완계 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고베 유일의 화교화인학교로 1899년 개교한 고베중화동문학교(神戶中華同文學校) 이사회의 부이사장으로서 오래 근무하면서 화교화인 자제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관계로 고베 화교사회와 일본인 유지는 2019년 가을 고베화교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 공간에 진순신 코너를 마련해 전시하고 있다.

 

필자가 읽은 진순신의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런 필자가 감히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용기 내어 굳이 말한다면, 그의 수필과 역사소설은 독자가 궁금해 하는 내용을 간결한 문체와 해박한 지식으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순신의 글을 읽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작품이 아닐까 한다. 평생 타이완인 화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 고민, 어릴 때 조부로부터 받은 한문 교육, 상하이서 발행되던 申報의 장기구독, 오사카외국어대 인도어과에서 배운 전문 지식 등이 그의 필력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진순신은 오사카외국어대의 1년 후배인 시바 료타로의 영향을 받아 재일한국인·조선인 작가인 김달수와 김시종 등과 친밀한 학문적 교류를 하게 된다. 그러한 교류의 결과로 탄생한 작품이 1981년 출판된 れず小説日清戦争(강은 흐르지 않고-소설 일청전쟁, 2013청일전쟁으로 국내 번역 출판됨)이다.

 

청일전쟁은 진순신에게 경계인의 삶을 살게 한 역사적 계기이자 사건이다. 청국이 시모노세키조약에서 타이완을 할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일전쟁은 조선을 둘러싼 청국과 일본의 쟁탈전으로 동학농민전쟁과 조선에 청국과 일본의 군대 파견, 조선 정부 내 개화파와 수구파 간의 정쟁 과정에서 발발했다. 진순신의 작품 가운데 조선·한국과 관련된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올해는 청일전쟁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필자는 한반도화교 및 베트남화교 연구자로서 이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청일전쟁과 관련된 여러 책을 읽어보았지만, 진순신의 작품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간 책은 없었다. 물론 픽션을 가미한 역사소설인 관계도 있었을 것이지만, 역사학자처럼 각종 1차 자료를 섭렵해 깊이 있게 청일전쟁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일전쟁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기 이전인 1980년대 초에 이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진순신은 이 작품을 출간한 그해 11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으며, 이어 19844월에도 방문했다. 동국대 일본학연구소가 19851130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한 · ·일본의 근대화 개막-아편전쟁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방한 시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한국인이 없다면서 이순신의 순신(舜臣)’과 자신의 이름이 똑같기 때문이라고 유머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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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진순신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에 전시된 한국어 번역본

          

필자는 작년 야스이 산키치(安井三吉) 고베대 명예교수 겸 고베화교역사박물관 명예관장으로부터 진순신 작품의 한국어 번역본 조사를 요청받아 인간 진순신과 그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만났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작품이 의외로 많은 것에 놀랐으며, 야스이 교수와 일본의 진순신 연구자들도 이 사실을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자가 기증한 6권의 한국어 번역본은 고베를 사랑하고 고베에서 산 진순신특별전시회에 전시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진순신이 국내 중국 연구자나 일반인에게 중국을 제대로 알리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진순신 연구가 국내서 활발히 이뤄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화교·화인의 세계’ 6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장리나, 친슌신(陳舜臣) 연구: 강은 흐르지 않는다-소설 청일전쟁(れず-小說日淸戰爭),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22.8.

陳舜臣生誕100年記念實行委員會 編, 生誕100年記念 陳舜臣さんがりかけるもの, 2004.4.18.

安井三吉, 陳舜臣生誕100年記念 生誕100年記念 陳舜臣さんがりかけるものえて, 神戶華僑歷史博物館通信No.41, 2024.3.31.

生誕100年 陳舜臣神戶, 神戶新聞, 2024.1.1.

安井三吉 神戶華僑歷史博物館名譽館長, 生誕100年 陳舜臣神戶, 神戶新聞, 2024.1.1.

陳舜臣, ··日本近代化開幕-阿片戰爭中心として,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주최 강연 원고, 1985.11.30.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사진 2.는 일본 고베화교역사박물관 및 야스이 산기치 동 명예관장이 제공한 것임.


〈 표 1〉 국내에 번역된 진순신의 작품 목록. 각종 자료를 참조해 필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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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2〉 일본서 출판된 진순신의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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