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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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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이상을 노래한 홍콩 록밴드 Beyond를 기억하며 _ 김주영

얼마 전 출장차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우연히 홍콩 록밴드 Beyond의 노래 해활천공(海阔天空)’을 듣게 되었다.1) 이동을 위해 호출한 택시에서였다. 익숙한 멜로디와 광동어 가사에 기사에게 Beyond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기사는 반색하며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한국에서 온 내가 어떻게 오래전에 활동한 홍콩의 록밴드를 알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싱가포르에서 Beyond를 만나게 될 줄 몰랐던 나는 그들의 인기가 대단했었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홍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Beyond는 대만,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에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록밴드였다. 1990년 개봉한 홍콩영화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삽입곡 회색궤적(灰色軌跡)’을 불러 한국에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홍콩영화의 팬임을 자처하는 한국의 특정 세대에게는 Beyond가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Beyond는 당대의 인기만큼이나 슬픈 사건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낸 그룹이기도 하다. 메인보컬이자 리더인 황가구(黃家駒)1993년 일본에서 방송 촬영 도중 무대에서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망하면서 밴드가 사실상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겨우 31세였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로 Beyond의 이름을 알린 황가구의 부재는 밴드 활동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택시에서 우연히 들었던 해활천공, ‘드넓은 바다와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노래는 사실상 황가구가 함께한 Beyond의 마지막 앨범 수록곡이었다. 타이틀곡도 아닌 수록곡인 이 곡은 오늘날 Beyond를 기억하게 하는 영향력 있는 대표곡으로 남아 있다.

      

이는 황가구의 죽음, 이 곡을 만들었던 당시 그의 사유와 특정한 시대의 조우가 만들어낸 효과이다.2) 홍콩에서 음악계가 음악성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초점을 맞추는 현실에 낙담한 Beyond1992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에서 활동했지만, 일본 활동을 마무리하며 발표한 해활천공의 차디찬 겨울밤에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라는 가사가 암시하듯 녹록하지 않은 현실은 홍콩 너머에도 있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으로 먼 곳을 방황하고 있다면서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드러낸 노래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맞물리면서 어떤 대상에 대한 강한 열망의 표현으로 남았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떨리는 듯하면서도 결연하게 내뱉는 그의 회한, 다짐, 희망이 주는 울림은 훗날 예상치 못한 지점에 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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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해활천공 뮤직비디오

     

사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만난 택시 기사에게 이 노래와 사회운동의 관계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집회와 시위가 자유롭지 않은 싱가포르에서 평생을 속박받지 않고 자유를 사랑해온 저를 용서해주세요라고 외치는 황가구의 가사가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해활천공은 홍콩의 여러 사회운동에서 불렸다. 보통선거를 주장했던 2014년의 우산운동에서 거리에 운집한 시위대는 이 노래를 합창했다. 2019년 범죄인 송환법 개정을 반대했던 사회운동의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이 노래는 그곳에 있었다.

          

2014년 대만에서 양안 간 서비스 무역 협정 채택을 비판한 해바라기 운동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3) 이러한 사회운동에서 청년세대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들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을 담고 있는 Beyond의 노래가 저항의 상징, 끊임없는 투쟁과 자유에 대한 열망의 표현으로 새롭게 재현된 것이다. “당신과 저만 있어도 두렵지 않을 거예요.”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자는 다짐이 이들에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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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Beyond의 멤버들

     

싱가포르에서 만난 택시 기사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홍콩과 대만의 청년세대가 느끼는 어떤 지점에 그 역시 가닿았을 수 있고, 그와 무관하게 멜로디와 가사가 좋아서, 아니면 보컬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젊었을 때의 어떤 추억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홍콩과 대만의 사회운동 맥락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나는 이 노래를 처음 가사를 보지 않고 들었을 때 어떤 강렬함에 이끌렸던 것 같다. 노래에 설명하기 어려운 비극성이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후반부에 이를수록 희망을 노래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사를 몰랐지만 그런 감정이 와닿았다. 그래서 좋았다. 당시 나는 홍콩에서 현지조사를 막 시작했지만, 연구 주제와 대상도 확정하지 못했고 그저 대주제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계획이 없었지만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조사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열망했던 건 현지조사의 무사 완수였다.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당시 나의 꿈이었다.

 

Beyond의 노래는 이념을 초월해 어떤 꿈과 이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명한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이후 홍콩에서 열린 대규모 모금 콘서트의 주제가는 해활천공의 가사를 개사한 것이었다. 모금행사에 참여한 스타들이 함께 개사한 해활천공을 부르는 영상의 배경에는 쓰촨성 대지진의 참담한 피해 상황과 긴박한 구조 현장이 송출됐다.4)우리는 당신을 지지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출연진은 대규모 피해를 복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홍콩의 유명한 배우이자 가수인 유덕화(劉德華)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광동어로 노래한 Beyond의 곡을 캠페인 주제가로 채택했지만 당시 노래는 표준 중국어인 보통화로 불렸다. Beyond의 노래는 특정 집단의 이념을 가로지르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념보다는 보편적인 어떤 것을 향한다.

 

1991년 발매된 광휘세월(光輝歲月)’은 인종차별에 맞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기리는 곡이다.5)바람과 비속에서도 자유를 굳건히 지킨”, “지구상에서 너와 나 사이의 구별을 없애는”, “지친 눈빛에 여전히 희망이 담겨 있는과 같은 가사를 담은 이 노래는 넬슨 만델라의 오랜 투쟁에 대한 헌정곡이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넬슨 만델라가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있다.6) 넬슨 만델라도, Beyond의 주축이었던 황가구도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음악으로 공유되는 이들의 꿈과 이상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올해 5, 황가구의 묘지에서 그를 저주하며 무덤과 주변에 놓인 꽃에 탄산음료를 쏟고 묘비를 훼손하며 해활천공을 부른 영상을 올린 10대 남학생에게 쏟아진 분노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꿈과 이상을 노래한 Beyond의 음악이 앞으로 어떤 시기와 장소에서 또다시 불쑥 등장할지는 모르겠다. 2005년 완전히 해체한 Beyond는 더 이상 활동을 이어가지 않지만, 음악에 남아있는 그들의 정신은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홍콩에 여전히 어떤 꿈과 이상을 그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 그리고 어떤 꿈과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홍콩을 떠나 어디에서 살아가든지 말이다.



지금 여기홍콩 15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칼럼을 읽는 독자들도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검색해 들어보면 좋겠다. 14천만 조회수를 기록한 해활천공의 뮤직비디오 영상과 81만 조회수의 라이브 공연 영상도 있다. 광동어를 모를지라도 보컬의 목소리만으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BBC中文特约记者, “海阔天空25超越时代的黄家驹绝唱.” BBC NEWS 中文. 2018630.

3) Krish Raghav,“‘Forgive me for loving freedom’: The enduring Hong Kong rock anthem.” The China Project. November 9, 2019.

4) https://www.youtube.com/watch?v=SNGv236k3kg

5) 이 노래는 고화질에 가사도 제공되는 다음 영상을 통해 감상하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Mfxqs_5he6w

6) BBC NEWS. “China media: Tributes for Mandela.” December 6, 2013.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해활천공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qu_FSptjRic&list=RDqu_FSptjRic&start_radio=1

그림 2. Beyond의 멤버들 https://lrl.kr/tKq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