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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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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노동 NGO의 쇠락: 노동권익 수호에서 ‘탈노동’의 무해한 공익단체로 _ 정규식

지난 20236월 그간 차별과 멸시의 상징이었던 농민공’(农民工)이라는 호명을 거부하고, ‘신노동자’(新工人)라는 정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며 문화 활동과 공동체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던 베이징 노동자의 집’(北京工友之家)에서 운영하는 노동자박물관’(打工文化艺术博物馆)동심실험학교’(同心实验学校)가 폐쇄되고 모두 철거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베이징시 정부의 도시개발 및 관리 정책에 의해 강제철거의 위기를 여러 번 겪었지만, 이번 철거는 대략 2014년부터 본격화된 중국 노동운동 관련 조직에 대한 탄압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중국노동추세’(中国劳动趋势)라는 온라인 매체에 중국 노동 NGO의 쇠락 과정을 분석한 글이 실렸는데, 지난 10년간 노동 NGO의 활동 대상, 행동 방식, 목표 등에서 발생한 변화와 이를 추동한 힘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1) 이하에서는 이 글과 추가 자료들을 바탕으로 중국 노동 NGO의 발전과 변화 및 쇠퇴의 과정이 주는 함의를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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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0236북경 노동자의 집철거 현장>

               

중국에서 NGO는 주로 공익조직’(公益组织)이라는 용어로 대체해 사용되는데,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자연의 친구를 비롯한 환경보호 단체가 많았으며, 1995년 제4차 세계여성총회가 베이징에서 개최되면서 1996년 베이징에 설립된 여공의 집’(打工妹之家) 등 다수의 민간 여성 NGO가 연이어 출범했다. 이후 1998년에 첫 공식 노동 NGO다궁족 문서처리서비스부’(打工族文书处理服务部)가 쩡페이양(曾飞洋) 등의 주도로 광저우 판위(番禺) 지역에 설립되었다

       

중국 노동 NGO의 가장 큰 특징은 개혁개방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전체 고용 노동자가 아닌 통상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유기업과 집체기업의 직원(职工)이나 사무직들은 노동 NGO의 활동 대상 범주에 해당하지 않으며, 주로 농민공의 노동권익과 이들과 함께 도시로 이주한 가족이나 농촌에 남겨둔 가족의 복지와 권리에 대한 문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조업 단지가 집중되어 농민공이 많이 밀집한 광둥성과 베이징 지역에서 이들 노동 NGO의 발전이 두드러졌으며, 대부분 중국의 인권 증진을 촉구하는 국제단체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비공식 풀뿌리 조직 형태로 존재했다.

            

이후 노동 NGO는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집권 시기에 집중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이들의 규모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단순히 회사로 등록한 곳도 있고, 아예 정식 등록을 안 한 곳도 있기에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2007년의 한 추산에 따르면 주강삼각주 지역에 있는 노동 NGO의 수는 최대 50개 정도이며, 200명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12년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중국 전체에 30~50개의 노동 NGO가 있으며, 각 단체당 평균 3~4명의 활동가가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 중국 정부와 노동 NGO 사이의 관계는 매우 다양한데, 정부 기관으로부터 전폭적인 자금 지원은 아니더라도 후원을 받고 긴밀히 협력하는 곳도 있고 정부의 감시를 피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곳도 있다. 특히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전념하는 풀뿌리 조직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에 대한 지식을 알리고, 체불 임금 및 산재보상 청구를 지원하며, 집단행동이나 단체교섭을 지원하고, 교육 및 문화 오락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노동 NGO는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동안 노동자들의 권익수호를 목표로 했던 것에서 이제는 다양한 공익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으로 활동 지향과 방식이 크게 변화했다. 2014년 이후에 새로 설립된 노동 NGO들은 정부의 감시와 탄압이 집중되는 노동 관련 의제보다는 비교적 무해한활동으로 인식되는 공공복지와 서비스 제공에 치중하게 되었다. 실제로 2014년을 전후로 한 노동 NGO의 주요 활동 방식을 보면 법률 자문, 권리수호, 연구 조사, 훈련 및 교육 조직 등의 활동이 상당히 감소했으며, 넓은 의미의 서비스 제공 관련 비중은 대폭 증가했다. 그리고 정체성의 측면에서도 노동자를 존엄과 권리의 주체로 보기보다는 광의의 취약계층 중 하나로서 배려와 도움을 받아야 할 집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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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勘探师, “从数据看劳工NGO的十年衰变: 全面服务化, 遭遇与遗憾”, <中国劳动趋势>


중국 노동 NGO의 노동권익 수호에서 탈노동의 무해한 공익단체로의 전환은 이들 조직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을 비롯해 다양한 측면에서 작용한 외부 압력의 결과였다. 특히 2014~2016년이 이러한 노동 NGO 급변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는데, 이 기간에 수많은 노동운동 관련 NGO 단체, 학생, 학자, 변호사 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더욱 거세졌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파업이 가장 활발했던 광둥 지역에서는 201512월 공안 당국에 의해 노동 NGO의 활동가들이 대규모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직접적인 체포나 구금 또는 형사 고발을 당하지 않은 노동 NGO도 다수가 폐쇄되었으며, 노동자 권리수호 활동에 종사하는 노동 NGO와 그 활동가들은 끊임없는 위협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명시적인 탄압 형태 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예컨대 2016년에 4월에 반포되어 2017년부터 시행된 <해외 비정부기구의 경내 활동 관리법>(境外非政府组织境内活动管理法)을 통해 노동 NGO의 자금 출처를 원천 차단하여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회나 부녀회, 공청단 등의 정부 공식 기구와 다양한 형태의 민간 사회조직 및 기업에 재원을 투입하여 노동 NGO의 활동을 대체하거나 이들에게 수주를 주어 자신의 조직 산하로 포섭하려는 시도들도 나타났다.


한편 20168월에 반포되어 즉각 실행된 <사회조직 관리제도의 개혁과 사회조직의 건강하고 순차적인 발전의 촉진에 관한 의견>(关于改革社会组织管理制度促进社会组织健康有序发展的意见)을 통해 사회조직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자율성 보장보다는 통제적 성격의 관리와 감독을 더욱 강조했다. 책임자에 대한 관리 강화’, ‘자금에 대한 감독 강화’, ‘활동에 대한 관리 강화’, ‘사회적 감독의 강화’, ‘사회조직 퇴출 기제의 완비등을 엄격하게 규정했으며, 무엇보다 사회조직 내 당 조직 건설을 사실상 의무화함으로써 사회조직에 대한 당의 장악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201719차 당대회 이후에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조직의 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당정이 부과한 임무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조직에 대해서만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할 것임이 보다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당과 정부의 집정능력 강화’, ‘안정적인 체제 유지’, ‘인민들의 사회경제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사회 서비스의 제공’, ‘인민들의 당정에 대한 불만 완화’, ‘당정의 사회적 통치비용 분담등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국 특색의 사회조직이라고 선언되었다.

 

이처럼 시진핑 체제에 들어와서 표면적으로는 계속 사회 거버넌스(社会治理) 체계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실제로 과거보다 민간영역의 자율성이 높아지거나 사회조직의 활동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 사회 거버넌스 체계의 개혁은 당정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가운영 및 사회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조직에 대한 중국 당정의 통제와 관리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당정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조직만이 체제 내부로 포섭되어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노동 NGO는 노동자들의 권익수호를 위한 행동 및 조직화 활동에서 사회봉사 및 자선활동 위주로 변화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노동 의제에 초점을 맞춘 풀뿌리 단체들이 사라지면서 노동자들과 협력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조직화 방식의 경험이 함께 소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 NGO 및 활동가에 대한 국가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이들과 연대했던 지식인, 변호사, 학생들의 활발한 네트워크도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노동 NGO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락의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 결코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베이징 노동자의 집활동가들이 여전히 새로운 방식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아직도 많은 이들이 어둡고 긴 잠복의 시기를 지나 새로운 형태의 대중 조직 기반 네트워크와 역량으로 발현될 날을 준비하고 있다



정규식 _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勘探师, “从数据看劳工NGO的十年衰变: 全面服务化, 遭遇与遗憾”, <中国劳动趋势>(2024.06.11.). https://lrl.kr/KvQU

2) Wannig Sun, 2014, Subaltern China, ROWMAN & LITTLEFIELD, p. 132.


* 이 글에서 사용한 자료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이 단체 익명의 활동가가 메신저(QQ)로 공유함.

사진 2. 勘探师, “从数据看劳工NGO的十年衰变: 全面服务化, 遭遇与遗憾”, <中国劳动趋势>(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