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로에서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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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중, 새로운 관계? _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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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26, ··중 정상회의가 2019년 이후 45개월 만에 개최되면서 소통의 모멘텀을 만들고 협력의 제도화를 이루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부터 매년 연례적으로 개최되어온 한국, 중국, 일본 국가 정상급 회의인 한··중 정상회의는 그간 2차례의 단기 중단과 2020년 이후 장기 중단기를 거쳐 어렵게 성사되었다. 첫 번째 중단기였던 2013~2014년 기간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과 이로 인한 한국과 일본의 대중 정책의 변화, 조어도 문제로 인한 중·일 관계 악화 등이 주요한 갈등 요인이었다. 두 번째 중단기였던 2016~2017년에는 일본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싼 한·일 관계 악화와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라는 국제적 요인이 작용하였다. 2020년 이후에는 트럼프 집권과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진 대중 봉쇄정책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세계적 영향, 그 과정에서의 반중(反中)정서의 세계적 확산과 심화, 일본 핵오염수 방류 문제 등이 예상치 못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주지할 것은 한··중 회의의 개최기와 중단기 모두에 3국 간의 항구적 갈등 요인인 과거사, 영토 분쟁 등은 상수로 존재해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장기간 관계를 중단시켰던 갈등과 문제들이 해결은커녕 조금도 축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문제들을 봉인한 채 한··중 정상회담이 재개된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관계의 변화를 시도해야 할 이유가 더 크게 대두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신냉전 구도의 출현 및 고착화 가능성에 대한 지정학적 위기와 삼국 관계 파행에 대한 우려, ·중 경쟁의 구조적 한계 절감, 3국 협력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 경제회복에 대한 절실함,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 중국과 대만의 충돌 위기 등 동아시아 안보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및 위기 관리의 필요성 등이다. 그러나 세간의 기대와 달리 북핵 문제를 포함하여 동북아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이견들에 3국의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소통의 채널 제도화와 경제 분야를 비롯한 문화·인적 교류 등의 협력 재개에 합의하는 것으로 공동선언문의 내용이 갈무리되었다.

   

회의 내용만큼이나 한국에서 이번 회의와 관련하여 주목받은 것은 ··이라는 표기법이다. “··이 한국 국민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는 단순 표기상 순서의 변화로 받아들여지기에는 기존 ··이라는 표현이 너무 익숙했으며, 그 순서가 의미하는 바가 지대했다. 서로의 관계가 소원하고 만나지 못했던 그 긴 시간 동안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관계에 무언가 큰 변화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우선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펜데믹이라는 질병이 쳐놓은 상호 격리의 시기에 극명하게 드러난 한국의 반중 감정은 2016년 사드 사태 시기의 중국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와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대중국 반감은 구체적인 수치로 실체화되었고, 이것이 다른 세대보다 양국 청년세대의 감정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면서 한·중 간 국민 감정문제는 중요한 정치적·학술적 의제가 되었다. 2022년 시사IN의 설문조사에서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를 온도로 묻는 설문에서 중국이 26.4도로 가장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일본 28.8, 북한 28.6도보다도 낮은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경중안미라는 단순화된 인식구도를 깨고, 중국이란 존재 자체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한국 경제성장의 조력자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에 대해 강압적 행위를 하고, 국제사회의 법과 질서를 위배하는 권위주의 국가로 바뀌었다.

   

반면에 한국인들의 미국과 일본에 대한 우호적 인식은 증대되었다. 2022년 시사IN의 동일 설문조사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57.3도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일본·북한보다 두 배 가량 높은 수치였다.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의 필요에 대한 중시로 연결되었다. 2023년 재단법인 청년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높은 편 6%, 보통 39.6%, 높은 편 25.7%으로 전체 호감도가 무려 71.3%에 이른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핵의 위협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강도 높게 자극하면서 미·일과 공조를 통한 한국 방어의 필요성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 한국이 처한 안보 위협이 생존의 문제라는 자각은 현실에 대한 더욱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에 대한 요구와 함께 과거 역사문제와 민족 대 동맹이분법 진영논리 넘어서서 새로운 한·일 관계 모색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이러한 한·일 관계 개선 해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비판적 입장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한·일 관계 강화와 한··일 안보협력이 과연 한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현재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것들이 ‘1965년 체제의 부활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현재 한국은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오류와 현재 필요한 안보와 경제를 위해 역사 문제를 봉인해버릴 수 있는 오류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기존의 관성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조건과 주체의 변화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현재 우리를 둘러싼 국제·국내적 조건과 세대의 변화는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과 태도를 요구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혹은 중요한 것을 더욱 잘 지키기 위해 우리는 과거와 달라야 하고, 그러함에도 과거에 중요했던 것을 현명하게 지켜내야 한다. 라인-야후 사태를 통해서도 이러한 갈등과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라인 문제를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으로 국익 프레임 안에서 보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오히려 놓치고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한다. 그것은 한·일 국가 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당면한 정보 보안과 경제 안보, 정보 기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성격 규정을 달리하면 프레임도 변화하고 해결의 방식도 변화한다. 현재의 국가 간 문제가 단순히 정치·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적 지식과 정보와 깊은 관련성을 갖기 때문에 문제의 해법을 찾는 우리는 더욱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여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에는 ··보다 ··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제대로 논의하고 준비되지 못한 변화지만, 지금에라도 진정 우리가 새로운 표기법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머무르지 않고, 퇴보하지 않고, 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어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정주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사진 출처

 https://www.korea.kr/news/top50View.do?newsId=1489295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