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3월 중국의 비디오 공유 플랫폼인 틱톡(TikTok, 抖音)에 폭스콘 정저우(郑州) 공장에서 ‘랑화’(浪花) 프로젝트가 재가동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동영상이 올라왔다.1) 일선 노동자들 사이에서 통칭하는 폭스콘 기업의 ‘랑화’ 프로젝트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1년 3월 당시 해외 주문량 감소와 제조단가 인하에 따른 경영압박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방안으로 처음 도입되었으며, 코로나 이후 현재까지도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최근 다시 이슈로 등장한 것이다.
바이두 백과사전에 따르면 ‘랑화’는 파도가 부딪쳐 생기는 물보라를 가리키는 말로 삶의 특수한 단편이나 현상을 비유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랑화’ 프로젝트는 폭스콘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명목으로 단행하고 있는 강제적 직무전환 및 다른 지역으로의 전출이라는 거센 파도에 어쩔 수 없이 떠밀리게 된 노동자들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사진 1. 폭스콘
폭스콘의 ‘랑화’ 프로젝트 추진에는 해외 주문량 감소와 인도나 베트남 등으로의 공장 이전에 따라 상시적으로 남아도는 인력을 우선 적은 비용으로 편법 감원하고, 또 이에 따른 단기적 인력 부족 시에는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으로 제조인력을 배치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두 가지 전략적 의도가 숨어있다. 먼저 이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는 품질 유지 및 관리와 같은 비제조 부문 인력을 제조업무(생산라인) 부문으로 재배치하여 고용 형태를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제조업무 부문의 노동자들은 주로 임시직 형태이기에 정리해고 시 비용이 적게 들지만, 비제조 부문은 주로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들이기에 ‘노동계약법’ 제40조에 근거해 해고 시 ‘N(근무연수)+1개월’의 퇴직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제조 부문의 정규 근로계약 노동자들을 제조 부문의 임시직 고용으로 전환해 적은 비용으로 해고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으로 ‘랑화’ 프로젝트가 고안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편 ‘랑화’ 프로젝트의 또 다른 축은 비제조 부문 노동자들을 인력 부족이 발생한 지역의 생산라인으로 직접 투입하는 것이다. 실제 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시기를 보면 상반기에는 매년 춘절 직후인 2~3월에 발생하는 인력 이탈을 메우기 위해서였고, 하반기에는 아이폰 등 애플 신상품 발표에 따른 수요 급증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2022년 코로나 기간에는 지역 간 봉쇄 및 통제 정책으로 이동이 제한되어 우한(武汉) 등과 같은 임금이 낮은 지역에서는 부족한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이들 지역의 공장으로 인력을 전출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폭스콘 사측은 이러한 방식의 직무조정과 전출을 노동자들의 협조에 근거한 일시적 ‘지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랑화를 당한’ 노동자들은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해고나 무급휴가를 보낸다는 협박에 의한 강제였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한 번 전출 가면, 언제 다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폭스콘 정저우(郑州) 공장의 비제조업 부문에서 일하면서, 정저우에 집을 얻고 살림살이를 장만한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우한으로 전출 가게 된 한 노동자에게 동료들은 “2023년 일었던 ‘랑화’의 물결이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다시 파도가 시작되었다며,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고 말한다.2)
폭스콘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와 같은 ‘랑화’ 프로젝트는 단지 폭스콘만의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 시기를 경유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최하단에 있던 중국 저가형 제조업 전반에 나타난 위기 상황을 반영한다. 즉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던 기존 산업공급망을 탈피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분산을 가속화 하면서 중국 제조공장에 대한 주문이 감소하였고, 이로 인해 인도와 베트남 등의 동남아나 중국 내륙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아예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중국 연안 지역에 밀집한 저가형 글로벌 제조공장에서 대규모의 구조조정과 감원이 대거 실행되고 있으며, 폭스콘과 같은 일부 기업에서는 이를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 직무조정이나 전근, 연장근로 축소, 희망퇴직 강요 등의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도 이를 ‘산업 고도화’라는 명목하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저가형 제조산업의 이전과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 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에 따른 중국 제조업의 공장 이전과 파산의 고통은 주로 임금 체불, 사회보험료 미지급, 해고보상 회피, 희망퇴직 강요 등의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제조업 부문 노동자들의 집단행동과 파업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중국노공통신(CLB)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발생한 노동자들의 전체 집단행동 1,794건 중 제조업에서 발생한 사건이 438건으로 약 24.5%를 차지했다.3) 물론 중국 정부의 노동운동 단체와 활동가에 대한 탄압 및 통제가 더욱 극심해진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사회적 파급력을 갖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라는 거센 물결에 떠밀려 고용 불안정과 빈곤 상황에 내몰린 중국 노동자들의 분노가 다시 또 어떤 저항의 파도로 되돌아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정규식 _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https://archive.org/details/glc8e024ff6d5430d5f76adb228b350a1f
2) https://www.laborfact.com/foxcon-layoff/
3) https://www.laborfact.com/foxcon-layoff/
* 이 글에서 사용한 자료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laborfact.com/foxcon-lay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