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테마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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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ading’ or ‘Mooring’(중국어를 말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_ 조영진

2년 반 전 처음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한국에 있던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아프리카? 흑인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내겠네. 신기하겠다.” 대학 졸업 후 계속 한국 밖에서만 살아온 필자에게 타인종과 함께 지내는 것 자체는 신기할 것이 없었지만 한 가지 기대되는 점은 있었다. “흑인들과 지내는 건 그다지 신기하지 않을 것 같은데, 중국어를 하는 흑인아이들은 조금 신선할 것 같아.” 내 대답이었다. 처음 나미비아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아이들은 예상대로 제법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당시 센터의 최고 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현재 이 아이들은 8학년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저학년을 제외한 아이들 대부분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중국어는 거침없이 구사했고, 심지어 타이완 억양을 띄기도 했다. 물론 이 아이들도 복잡한 중국어 번체자를 쓰는 것은 어려워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제법 한자를 쓰고 읽는 데도 능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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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센터의 6학년 아이들의 중국어 연습장



중국문화는 전파되고 있는 걸까?


나미비아에서의 연구 활동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여러 차례 센터의 아이들이 샤오린 우슈, 불교와 더불어 중국어를 배우고 있음을 언급했다. 중국어 수업을 개설하고 현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센터의 활동을 중국 문화를 아프리카에 전파(spread or spreading)하는 한 방편이라는 당연하고 익숙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치원 시절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쓰는 기숙 학교에서 12년 이상을 보내고 사회에 나간다는 사실을 단순히 한 문화가 다른 한 지역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 보인다. 우선 전파라는 개념은 어린 아이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혹은 세상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시기부터 중국어를 배우게 되는 이 특수한 환경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전파는 또한 중국어를 배우는 인구나 학습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나미비아라는, 다시 말해 중국어를 배우기에 상당히 이질적인 언어 문화적 환경의 변수 자체를 희석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치 전파가 자연적으로 (혹은 아주 적은 노력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또한 전파는 센터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아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음식과 옷과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자선단체의 도움 앞에 무엇을 따지고 생각하고 거절할 선택권이나 분별권을 가지기 힘들다.

  

그렇다고 전파라는 개념을 전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백여 년 후, 한 역사학자가 현재 나미비아에서 (혹은 5개의 다른 남부 아프리카 나라에서) 행하는 이 센터의 일을 연구한다면 센터를 통해 중국어와 중국문화가 남아프리카에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 전파가 성공적이든 미미하든 간에 말이다. 시간의 스펙트럼을 넓게 설정하고 보면 전파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시 말해 좁지만 디테일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전파는 여전히 아이들이 처해있는 사회경제적 취약성과 나미비아라는 현지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촘촘하게 분석해 내지 못하는 무딘 개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센터가 하는 중국어 교육이 문화의 전파가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까?

    

전파는 수평적 방향성을 지시한다. 넓은 지역에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이 미치는 현상에 적용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센터가 나미비아에서 운영되는 방식은 선별과 집중에 더 가깝다. 센터는 매년 9월 가정방문 팀을 나미비아의 중부와 북부 지방에 파견해 취약 아동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취약성에 대한 실질적 평가를 실시한다. 나는 이 가정방문 팀에 3년 연속 참여하여 나미비아의 앙골라 국경지역과 동부의 빈곤지역, 그리고 수도 근처의 비공식 정착촌(Informal settlements)을 여러차례 방문했다. 한 해 방문하는 가정의 숫자는 대략 200여 가구이고, 이들은 이미 한 차례의 대규모 선별 과정을 거쳐 특별히 취약한 가정으로 구분된 가구들이다. 방문을 한 가정들을 대상으로 다시 한 차례의 선별 과정을 거쳐 다음 해에 센터에 실제로 입학하는 아이들의 수는 전국을 통틀어 35명 남짓이다. 이렇게 입학한 아이들은 센터에서 유치원반부터 중국어 수업을 체계적으로 듣기 시작한다. (물론 중국어 수업은 현지 수업이 끝난 후의 과외 활동 중의 하나이다.) 이 아이들이 4, 5학년쯤 되면 중국어로 일상생활에 관련된 사항을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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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아이들은 이렇게 타이완식 주음부호 (注音符號)를 시작으로 중국어를 배운다.

  

나미비아 대학에 개설된 공자학원 (Confucius Institute)이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여러 활동을 전형적인 중국 문화 전파의 한 모습 혹은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공자학원은 특정한 그룹에 집중하여 언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예를 들어 대학 내에 설치된 중국어 수업) 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중국어 저녁반이라든가 근처의 고등학교 중국어 클럽 활동을 지원하는 등 가능하면 많은 나미비아인들에게 중국과 중국문화를 전파하겠다는 정책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센터는 취약계층의 미취학 아동을 특별한 과정을 거쳐 선발해 장기적인 기숙학교 시스템을 이용하여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문화에 익숙한 (혹은 호의적인) 성인을 길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보다 소수의 아이들에게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필자는 여기서 전파라는 다소 포괄적인 개념을 적용하기 보다 무어링’ (mooring) 이라는 수직적 방향성을 지시하는 개념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보고 싶다. 제안을 조심스럽게 하는 이유는 현지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인 상태이기도 하거니와,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는 전 과정의 교육을 제공하는 단체인 만큼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발전 과정을 보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나미비아 센터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센터를 떠난 이후 성인의 삶까지 어느 정도 추적해 보는 적어도 한 인간의 유소년청장년의 사이클이 마무리될 때 무어링의 윤곽이 더 확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무어링 (Mooring) 되고 있을까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도 무어링이 진행되고 있음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어쩌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것은 무어링 이외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전파는 무어링에 비해 더 큰 지역으로 더 오랫동안 퍼져가는 과정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Mooring은 원래 선박을 바다 밑에 고정하는 앵커링(anchoring)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 개념은 한국어로는 계류, 계선, 혹은 정박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영어의 spreading (전파) 와 비교하며 개념화하기에는 mooring 이라는 영어 자체를 쓰는 것이 더 선명하게 수평, 수직의 대조를 보여주기에 본 글에서는 무어링을 그대로 차용하여 특수 용어로 쓰기로 하겠다. 그렇다면 배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과정에서 온 무어링을 사회과학적 분석을 위한 개념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일단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겠다: ‘한 관행이나 문화나 어떤 삶의 방식이 타지역의 일정 그룹의 사람들의 삶에 새롭게 정착되고 고정되는 과정.’ 이 정의에 따르면 나미비아의 센터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일은 중국문화의 스프레딩과는 다른 무어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무리가 있겠지만 이렇게 한 번 상상해 보자. 한국의 강원도 어딘가의 외딴 시골 지역에 타이완/중국의 자선단체가 들어와 기숙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아이들을 입학시켜 먹여주고 재워주고 고등학교까지 (혹은 그 이상) 의무교육을 마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이다. 이 학교에서는 한국 교육부가 인정한 국민교육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중국어도 가르치고 우슈도 가르치고 불교 명상도 가르친다. 이곳에 입학한 아이들은 12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면 중국어에 능통해진다. 아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 한 학년이 고작 30여 명 정도. 이 외딴 지역의 중국식 기숙학교는 매체를 타고 방송에 몇 번 소개가 될 수는 있겠지만 한국 전체를 볼 때, 혹은 강원도만을 놓고 볼 때 그 영향력이 그다지 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기숙학교를 통해 강원도에 중국문화의 붐이 일어나며 중국어가 급속도로 전파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면 학교는 너무 외딴곳에 떨어져 있고, 모든 아이들은 철저히 기숙사 안에서만 생활하며, 한 해 졸업생은 고작 30명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입학한 개개인 아이들의 삶에서 이 학교의 존재는 인생 전부일 것이다. 유치원부터 18세가 될 때까지 1년에 11개월을 보내는 곳. 이곳에서 만나는 타이완과 중국에서 온 선생님들과 (물론 한국인 선생님도 있지만) 하루 세 끼의 채식식단, 일주일에 6일 동안 새벽과 저녁 이어지는 불교 명상 수업, 각종 생활 규칙과 지켜야 할 도덕 예절 등등과 유일한 엔터테인먼트 활동으로는 밖에서 공을 차는 것과 한 달에 한 번도 안 되는 꼴로 중국 선생님이 고른 영화를 보는 것이 전부인 이곳의 환경은 아이들의 인성과 문화성과 사회성을 만들고 무어링시키는 인생의 큰 사건일 것이다.

 

이 상상을 나미비아로 가져오면 이 무어링의 효과는 더욱 극대화가 된다. 나미비아가 중국문화와 가지는 사회문화적 언어적 거리감을 생각해 볼 때, 이 아이들이 이 센터에서 배워서 나미비아 사회로 가지고 나가는 그 무엇은 12년 이상 알게 모르게 쌓이고 고정화된 중국문화를 담은 한 묵직한 개인이다. 그 개인이 나아가 중국문화의 수호천사가 되든 안 되든, 센터에서 배운 것을 전파하든 말든 그것은 후에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현재 시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센터가 나미비아에서 행사는 활동이 어린 아이들을 향한 교육이라는 점과 그 교육이 철저하게 24시간 통제되는 기숙사라는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통제된 환경에 들어오게 되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그들의 특수한 경제적 환경으로 인해 많은 결정권이나 분별권을 가지기 힘들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경제적 취약성이 한 아이가 센터에 입학해 끝까지 센터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원인이 된다. (센터를 떠난 후 스스로의 힘으로 교육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에) 이런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복잡성과 지역적 특수성이 얽혀진 상태에서 센터의 중국어 교육은 한 나미비아 아이의 삶을 특수한 언어 문화적 바닥에 고정하는 효과를 생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 효과도 시간이 걸려야 완성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리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결코 spreading’이 아니다.

   

  

  조영진 _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 박사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모두 필자가 직접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