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2024년 4월호부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이 중국 윈난대학 인류학과(雲南大學人類學系)와 함께 수행한 '중국 남서부 국경지역 공동연구 사업'의 연구성과 보고서에 대한 번역·요약을 연재한다. 중국-라오스, 중국-베트남 국경 문제에 관련된 해당 연구사업의 지난 1단계 연구성과는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라는 단행본1)으로 출간된 바 있다. 중국-미얀마 국경에 대한 현재 2단계의 연구성과는 중국어판 연구성과 보고서의 형태로 중국학술원에 소장되어 있다. 해당 연구성과를 널리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특히 국경 및 초국경 이동 관련 분야의 연구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성과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관행중국>웹진을 통해 공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연구의 첫 번째 부분인 연구 대상 지역의 개요를 소개할 것이다.
중국-미얀마 국경 획정 및 국경 조약 체결은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2) 하지만 이 국경선은 중국 정부가 관리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미얀마 북부 지역은 마약 밀수, 불법 총기 제조, 인신매매, 도박 및 사기 등 중대범죄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할 뿐 아니라, 지역 내 소수민족의 무장 분리 운동과 내전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질서에 따라 중국-미얀마 국경에는 정상적인 국경 무역, 인적 교류 및 인문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일반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이 국경은 지도에 그어진 선일 뿐, 결코 철조망과 벽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당히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3) 철조망과 감시 장비의 설치는 제로 코로나 정책 도입과 미얀마 북부 전신 사기 범죄 창궐 이후 새로 생겨난 변화였다.4) 지난 해 10월부터 미얀마 북부의 소수민족 무장 세력이 미얀마 군사 정권에 대한 군사 공격에서 승리하고 중국-미얀마 국경의 중요한 통상구[邊貿口岸]를 장악함에 따라 중국-미얀마 국경의 정상적인 무역과 인적 교류가 재개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얀마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중국-미얀마 국경 관리·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초국경 범죄를 억제하는 것에서 전방위적인 국경 통제로 전략을 전환한 것은 국경 지역에서 중국의 표준과 질서를 수립하여 적용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의도는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의 추진, 특히 송유관로, 철도, 고속도로 등과 같은 초국경 대형 인프라 건설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중국-미얀마 국경 사이에 중국-라오스 철도(中老鐵路/中寮鐵路)와 같은 대형 초국경 교통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이지만, 이 연구에서 밝혀졌듯, 중국-미얀마 국경의 중국 측, 즉 윈난성(雲南省) 국경 지역의 경제 발전과 인프라 개선으로 중국이 구축한 표준과 질서가 실제로 국경 건너편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경계에 대한 인식이 해체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추론은 특정 국경 간 상품무역에 대한 인류학적인 현지조사에서도 나왔다. 예를 들어 중국-미얀마 국경을 따라 전통적으로 거래되는 호박(琥珀)의 경우, 사회적 관계망을 기반으로 구축된 전통적인 초국경 무역 시스템이 점차 공식화되고 기업체들이 주도한 규범화된 무역 체제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5)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추진은 중국식 시장 경제 실천에서 구성된 규범과 질서를 초국경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동시에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관행에 기반한 중국적(또는 초중국적) 규범과 질서를 해체하고 소멸시키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내용요약]
제1장 연구 대상 지역의 개황
1. 연구 대상 지역의 지리적 개황
연구 대상 지역은 중국-미얀마 국경 중국 측의 윈난성에 위치하고 있다. 윈난성은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남서부의 중요한 성급(省級) 행정구역이다. 윈난성 관내 중국-베트남 국경의 길이는 1,353㎞, 중국-라오스 국경은 710㎞, 중국-미얀마 국경은 1,997㎞이다. 윈난성 관내 8개 지급(地級) 행정구역과 27개 현급(縣級) 행정구역이 이웃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간선도로 15개와 철도 2개가 이웃 나라로 이어져 있다.
본 연구의 대상 지역은 룽안촌(龍安村)이다. 룽안촌은 윈난성 남서쪽에 있는 더훙다이족·징포족자치주(德宏傣族景頗族自治州) 룽촨현(隴川縣)의 관할 지역이다. 룽촨현 관내의 국경선은 중국-미얀마 국경의 서부 구간에 속하며6), 총 길이는 50.899km이다. 국경선에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2유형 육상 국경 통상구[國境口岸]7) 중 하나인 장펑 국경 통상구[章鳳國境口岸]가 포함되어 있다. 3개의 주요 국경 통관 도로와 10개 이상의 간이 출입국 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국경 건너편의 미얀마 쪽에는 44개의 자연마을과 마이자양(Mai Ja Yang)이라는 소도시를 포함한 주거지가 있다. 미얀마 정부군과 카친족8) 무장세력이 지배하는 지역은 서로 얽혀 있지만, 중심 도시인 마이자양을 포함한 95% 이상의 접경 지역은 카친독립군(KIA)이 실제 지배하고 있다.
룽안촌은 롱촨현 서쪽에 있으며 마을 남서쪽에 흐르는 난와하(南漥河)라는 하천이 곧 중국과 미얀마 간의 국경이다. 룽안촌과 미얀마의 마이자양시는 이 국경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난와하의 중국 측 강기슭에서는 중국-미얀마 국경의 45번과 46번 경계비(界碑)가 설치되어 있지만, 실제 국경선은 난와하의 중앙선이다. 룽안촌 관내 국경 구간의 길이는 10.8km이다.
룽안촌은 해발 1,040.5m 고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섭씨 18.9도, 연평균 강수량은 1,515mm로 전형적인 고산지 아열대기후이다. 해발과 저위도의 이중 효과로 인해 룽안촌은 사계절이 봄처럼 따뜻하며, 특히 마을 서쪽에 흐르는 난와하 강변의 평지는 매우 좋은 품질의 논으로 개간되어 쌀이나 사탕수수 등 논 작물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현재 룽안촌 서쪽의 농지에는 사탕수수, 담배, 옥수수가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이 농지를 건너면 중국-미얀마의 국경인 난와하에 도착할 수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하천의 건너편에는 두 개의 미얀마 마을이 있고, 마을 뒤편의 언덕을 넘으면 마이자양시의 시가지가 보인다. 난와하의 미얀마 쪽 강기슭에는 난민 수용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미얀마 내전 실향민 정착을 위해 중국 측이 지원한 자금으로 지어진 것이다.
룽안촌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2019년 무렵, 중국 정부의 국경 관리 및 통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이미 실감할 수 있다. KIA와 미얀마 정부 간의 내전이 장기화한 것은 그 원인 중 하나에 불과했다. 더 중요한 원인은 2000년대 초반 KIA의 카지노업 합법화 선언 이후, 중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마이자양 지역 카지노 산업의 부상 때문이었다. 카지노 산업에서 파생된 다양한 회색 및 불법 산업은 국경 지역의 치안에 악영향을 미쳤고, 결국 2009년 중국 공안 당국이 직접 마이자양의 카지노 산업을 단속한 사건이 벌어졌다.9) 따라서 연구자들은 중국 정부의 국경 정책과 국경 인식에 대한 홍보와 선전이 룽안촌에서 광범위하게 포착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마을의 주요 도로 양옆, 주택 외벽, 그리고 담장에는 민족 단결, 국경 인식, 법과 질서 강화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선전 구호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선전 구호는, 국경 지역의 안정 유지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태도를 매우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 중국-미얀마 국경의 역사적 맥락
현재 윈난성은 중국 남서부 변방 지역이다. 그러나 거시적·장기적 시각에서 윈난성은 아시아 대륙이 인도차이나반도와 남아시아 아대륙으로 이어지는 지리적 초입에 위치하며, 인근의 구이저우(貴州), 쓰촨(四川), 광시(廣西)를 통해 고대 중국 문명의 중심지를 동남아시아의 불교 문명, 심지어 고대 인도 문명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0여 년 전의 서한(西漢) 왕조 초기, 제국의 중심지인 산시(陝西)나 중원(中原)지역의 사람들은 이미 윈난에 존재했던 여러 고대 육상 교통망을 통해 당시 인도와 관련된 정보와 상품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육상 교통망은 학자들에게 “서남 실크로드”로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윈난성이 중국의 변방이었던 시절보다는 지리와 교통의 중심지였던 시절이 훨씬 길었다. 서남 실크로드의 무역을 장악하면 강대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남조국(南詔國)부터 대리국(大理國)에 이르기까지 윈난은 몇 세기 동안 지정학적인 중심이자 국제 무역의 허브였다. 당시 윈난의 통치자들은 서남 실크로드의 무역에 의존하여 동남아시아 해안 지역에서 생산된 패화(貝貨)를 중심으로 한 화폐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화폐 시스템은 근대 서양 식민통치자들이 가져온 금·은본위제 화폐 시스템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지속됐는데, 결국 서남 실크로드와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났다. 한편, 원나라가 대리국을 합병하면서 윈난은 점차 중원 정권에 정치적·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서남 실크로드의 중심에서 점차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했다.
근대에 이르러 변방으로서의 윈난은 동남아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새롭게 구축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프랑스 식민통치자들과 인도-미얀마(당시 버마)의 영국 식민통치자들이 윈난의 문호개방을 강요한 후 이 지역은 점차 양대 식민세력이 경합하는 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난하고 낙후된 중국 남서부 변방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일찍 서양 문물을 수용했고, 중국 근대화의 선도 지역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여전히 운영되는 윈난-베트남 철도(滇越鐵道)와 같은 근대 산업 유산은 곧 근대화 물결 속 윈난 재부상의 증거였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윈난은 중국이 국제 원조 물자를 얻기 위한 유일한 관문이 되었고, 중국으로 물자를 운송하는 버마 로드(Burma Road/滇缅公路)와 더 험프(The Hump/駝峰航線)를 확보하기 위해 반파시즘 동맹군은 일제와 지상전에서 공중전에 이르는 혈투를 벌이기도 했다.
1950년대 무렵,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배한 국민당 군대가 미얀마 북부로 피신하면서 중국과 미얀마 국경의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었다. 1950년대 후반, 중·소 갈등이 대두되면서 중국이 이웃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지자, 미확정 국경의 획정 및 국경 조약 체결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중국은 국경에 있었던 국민당 잔존 세력의 소탕, 미얀마는 북부 소수민족 분리 세력 문제의 해결이라는 서로 다른 동기를 갖고 있지만, 양국은 국경을 신속하게 획정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결국, 1960년 양국 간의 국경 획정과 국경 조약 체결이 이루어졌다. 이와 더불어, 중국군과 미얀마군은 국경 획정을 명목으로 미얀마 북부의 국민당군에 대한 합동 소탕 작전[中緬聯合勘界警衛作戰]을 수행하여 국민당군이 윈난성 국경에 가하는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했다.
1962년 군사 쿠데타 발생 이후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신속히 악화되었다. 당시 중국 국내 극좌 정치의 기세가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윈난성 국경지역은 ‘적색혁명’의 근거지가 되었고 동남아시아로의 ‘혁명 수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은 버마공산당(CPB)과 군사정권 간 군사 대결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결국, 버마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미얀마 북부 소수민족 군사 세력들과 미얀마 정부 간의 내전은 20년 이상(1962~1989)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미얀마 북부의 수많은 소수민족 인사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 군사와 정부 기관에 들어가 ‘혁명지식’과 ‘혁명경험’을 배웠고, 이와 동시에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 동안 수많은 도시 지식청년(知識青年)들이 국경을 넘어 버마공산당의 유격대에 입대하기도 했다.
1980년대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중국-베트남 관계 악화와 함께 버마공산당 내부의 친중 세력이 물러나고 친베트남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다. 1989년, 친중 성향의 코캉(Kokang/果敢)10), 와(Wa/佤)11) 등 소수민족 출신 당지도자들이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자신이 보유한 무장세력과 근거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수립하여 미얀마 북부의 소수민족 분리 세력으로 변모했다. 미얀마 정부에 맞서 오랫동안 싸워온 앞서 언급한 KIA를 포함한 이들 분리 세력은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불법 및 회색 산업에 크게 의존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중국-미얀마 국경은 마약, 밀수, 불법 총기 제조, 사기, 인신매매 등 불법 및 회색 산업이 밀집한 지역이자 악명 높은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金三角)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최근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따라 중국-미얀마 국경의 윈난성 쪽 인프라 개발이 급격히 가속화되면서 고속도로, 철도, 국경 통상구가 대거 건설되고 국경 무역의 교역량이 증가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얀마 국민에 미치는 중국의 매력과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의 내전이 장기화되고, 특히 2021년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미얀마 민선정부가 전복된 이후 미얀마-중국 간의 초국경 경제, 무역, 인적 교류를 확대에 관한 양국의 수뇌의 계획은 좌절되거나 여전히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실현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2023년 말 군사 쿠데타 세력의 잇따른 군사 실패로 내전 종식과 민족 간 화해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다시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향후 중국-미얀마 국경이 양국의 변방에서 다시 중심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있기도 하다.
3. 에스닉(Ethnic) 그룹의 구성
협의(狹義)의 중국-미얀마 국경 지역에서 중국 윈난성 전체, 쓰촨성 서부, 티베트자치구 동부, 그리고 미얀마 북부 지역을 포함한 광활한 지역으로 시선을 확대해 보면, 이 지역 동서 방향의 교통은 남북 방향으로 횡으로 이어지는 산맥에 의해 끊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산맥 사이에 흐르는 강에 따라 자연스러운 남북 통로가 형성되어 있다. 고대부터 몽골 고원과 티베트 고원의 유목민들은 이 통로에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한편으로는 원주민과 융합되어 정착민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다이/타이(Dai/Thai), 먀오/몽(Miao/Hmong), 야오/몐(Yao/Mien) 계열의 에스닉 그룹을 보다 더 멀리 떨어진 남방으로 몰아내기도 했다. 이 역사적 과정에서 윈난성과 미얀마 북부의 다민족·다문화 인문 환경이 구성되었다.
근대 민족-국가(Nation-State)가 탄생하기 이전, 이 지역의 혈연적 구성은 매우 복잡했다. 그러나 천연적인 남북 교통망의 존재로 인해 지리적으로 인접한 서로 다른 에스닉 그룹들은 오랜 교류와 융합으로 생성된 비슷한 문화민속, 종교신앙, 그리고 언어를 통해 혈연적 차이를 해소시켰다. 따라서 중국-미얀마 국경 지역의 에스닉 구성에서는 혈연적인 요소가 이미 희미해지고 근대적인 민족 개념과 유사한 양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민족-국가 체제의 수립과 물리적 국경 획정은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민족 형성 과정을 갑작스럽게 중단시켰다. 중국과 미얀마 국내에서는 별개의 민족 식별 및 인정이 이루어졌고, 중국과 미얀마 국경의 획정으로 인해 국경 양쪽에 존재하는 다수의 동일한 에스닉 그룹은 각각 중국인과 미얀마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관행화된 교류와 융합은 결코 신분과 국경의 구분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았다. 국경 양쪽의 같은 에스닉 그룹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을 뿐 일상생활에서 긴밀한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윈난성의 경우, 중국정부의 공시적인 소수민족 식별 기준에 따라 인정된 15개의 소수민족은, 명(明)나라 말기부터 미얀마 북부에 정착한 한족(코캉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거주하고 있고, 이들은 중화권 학계에서 이른바 과계민족(跨界民族) 혹은 과경민족(跨境民族), 또는 영어권 학계에서 초국경 에스닉 친족(transborder ethnic kin) 혹은 초국경 에스닉 그룹(transborder ethnic group)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연구한 룽안촌 역시 국경 마을일 뿐만 아니라 다민족 마을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다민족적인 특징은 윈난성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룽안촌 역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룽안촌에는 8개의 촌민소조(村民小組), 즉 자연마을이 있다. 이 8개 자연마을 중 일부는 지명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고, 일부는 징포1대(景頗1隊), 징포2대(景頗2隊), 한족1대(漢1隊), 한족2대(漢2隊) 등과 같이 민족의 이름에 따라 명명되었다. 이는 롱안촌 내 주로 징포족과 한족이 혼합되어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마을 단위에서는 마을사람들이 각 민족적 구분에 따라 집단 거주하는 특징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룽안촌에는 징포족과 한족 외에도 리수족(傈僳族)과 다이족(傣族)이 거주하고 있다. 전체 마을에는 한족 1,596명, 징포족 906명, 리수족 15명, 다이족 14명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47가구에는 미얀마인 배우자가 있으며, 총 60명 이상의 미얀마인 아내가 체류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중국의 호구부(戶口簿)에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 사회복지 등과 같은 다양한 국민대우를 받기가 어렵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왕위에핑·장정아·안치영·녜빈 지음, 2022,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 인터북스
2)중국은 1960년 미얀마(당시 버마)와의 국경 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네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북한 등 접경국과 국경조약을 맺었다. 王善中, 1997,「论述《中华人民共和国和缅甸联邦边界条约》」, 『中国边疆史地研究』, (1), 83~84쪽 참조.
3) 안치영, 2023, 「'열린 죽의 장막'과 닫히는 개혁개방 시기의 국경」, 『중앙사론』, 60, 194쪽 참조.
4)东方日报, 「云南防缅偷渡客,边境筑铁丝网围墙」, 东方online, 2021.7.14., https://www.orientaldaily.com.my/news/international/2021/07/14/424256.
5) Rippa Alessandro & Yang Yi, 2017, The Amber Road: Cross-Border Trade and the Regulation of the Burmite Market in Tengchong, Yunnan, Trans Regional and National Studies of Southeast Asia, 5(2), 243~267.
6) 국경선이 이어지는 방향에 따라 중국-미얀마 국경은 일반적으로 서부, 남부, 동부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서부 구간의 시작점은 아직 국경이 획정되지 않은 중국-인도 국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주로 가오리공산맥(高黎貢山脈)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이어진다. 서부 구간의 종점은 미얀마 국경 도시인 남흐칸(Namhkam/南坎) 근처에 위치하며, 거기서부터 국경선은 루이리강(瑞麗江)을 따라 동쪽으로 구부러지면서 동서 방향의 국경선 남부 구간이 된다. 롱촨현 관내 국경은 바로 서부 구간의 남쪽 끝에 있다.
7) 통상구로 표현한 구안(口岸)은 중국 정부가 대외 무역 및 인적 교류 등 대외 개방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법적으로 지정된 인원의 출입국 수속 및 화물의 통관을 허용한 장소이다. 연안 항구, 일부 내륙항구 및 일부 공항 외에는 육상 국경에 위치한 특정 지역도 이러한 장소로 지정된다. 중국 국무원에서 지정된 구안은 1유형 구안으로 분류되며, 각 성에서 자체적으로 지정된 구안은 2유형 구안으로 분류된다.
8) 카친족은 중국-미얀마 접경지역에서 거주하는 초국경 에스닉 그룹이다. 중국 내에서는 징포족(景頗族)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9) 邓飞, 2009.05.09., 「赌城迈扎央调查」, https://m.fx361.com/news/2009/0509/5600598.html, 凤凰周刊.
10) 코캉족(果敢族)은 미얀마의 소수민족 인정 체계에서 명나라 말엽부터 윈난에서 미얀마 북부로 이주한 한족(Han Chinese)을 지칭하는 에스닉 그룹이다. 중국 동부 연해 지역에서 해로를 통해 이주해온 화교와 같은 한족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소수민족 정책에서 화교와 코캉족은 따로 분류되어 있다. 코캉족이라는 명칭은 미얀마 샨주(Shan state/掸邦)와 중국 린창시(臨滄市) 전캉현(鎮康縣) 간의 코캉 지역에서 파생되었다. 2023년 10월 코캉 지역에서 ‘삼형제 동맹(Three Brotherhood Alliance)’과 미얀마정부군·친군부 지방세력인 코캉 자치구(果敢自治區) 간의 무장충돌이 발발했다. 2024년 1월초 코캉 지역 주요 도시인 라우카이(Laukkai/老街)가 함락되었고, 친군부 지방세력이 물러났고, 친군부 지방 지도층은 중국 공안 당국의 지명수배로 미얀마군에 체포되어 지난 1월 30일 중국으로 이송되었다.
11) 와족은 중국 윈난성 남부, 미얀마 샨주 북부 및 카친주 동부 등 산악지대에 거주지를 둔 전형적인 초국경 에스닉 그룹이다. 버마공산당 와족 구성원들이 탈당 선언 이후 샨주 북부에서 와주(Wa state/佤邦)를 수립했고, 중국식 정치체제를 수용하면서 사실상 자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