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廣州) 13행은 청나라 시대 유일하게 대외무역을 허락 받았던 곳으로, 대외무역의 독점권을 가진 특정 상인에 의해 이루어진 동양과 서양의 교역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청나라 강희제는 동남 연해 지역 4개 항구를 개방하여 대외교역을 허락하였지만, 건륭제가 광저우의 월해관을 제외한 민해관, 절해관, 강해관을 폐쇄하면서 13행 상인들이 대외 무역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1년 1000년 간 가장 부유했던 50명 중 한 명으로 13행의 상인이었던 오병감을 꼽기도 하였다. 당시 미국 철도 산업의 최대 투자자이자 ‘포브스’ 발행인 말콤 포브스의 아버지인 존 머레이 포브스(1813~1898)가 오병감의 양자가 되어 오병감으로부터 받은 막대한 자금으로 미국의 최대 투자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청나라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는지 알 수 있다.
청나라가 폐쇄적인 개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배경에는 유럽 사람들을 매료시킨 교역품이 있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청나라는 새로운 상품을 찾아 모험을 자처할 이유가 없었지만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 상황이 달랐다.
15~16세기 양털로 만든 울은 당시 영국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자 핵심 산업이었으며 주요 수입원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가볍고 통풍 잘되고 관리도 편한 면직물이 모직물을 대신하면서 모직 산업은 사양되기 시작하였다. 목장과 모직물을 짜던 직공들이 일자리를 잃어 실업률은 증가했고 재정수입은 악화되어 갔다. 유럽인들을 매료시킨 것은 면직물뿐만이 아니었다. 향신료, 비단, 도자기, 차(茶)는 유럽인들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 이들 상품을 찾아 동아시아로 향하는 발길은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경쟁도 점차 치열해졌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중국의 물품이 유럽으로 흘러들어가 교역 적자가 증폭하던 시기 산업 혁명이 일어났고 기술 혁신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기계로 면직을 짜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량 생산된 잉여 상품의 수요 시장이 절실해졌고 중국은 매우 매력적인 시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결국 가장 비열한 전쟁으로 평가되고 있는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는 영국군이 몰고 온 단 2척의 메네시스호에 의해 광둥,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 항구를 개방하게 되었다.
청나라 시기의 대외 개방과 다르게 최근 중국의 대외 개방은 매우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 제창이다.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는 중국의 육상실크로드와 해상실크로드를 통해 대륙과 대륙, 해양과 해양 혹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여 세계가 통(通)하는 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해 중국 정부는 좀 더 강도 높은 투자와 대외개방을 언급하였고, 7개 지역으로 자유무역시험구 확대 설립, 자유무역협정 추진, 네거티브리스트 도입, 서비스 분야의 개방 등 대외무역의 개방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는 과거 명나라 시기 정화(鄭和)의 화려하고 원대했던 항해의 중단으로 인해 세계로 나갈 수 있었지만 잃어버린 기회, 그리고 청나라 시기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세한 위치에서 주도권을 쟁취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흘려보낸 기회를 다시 찾으려는 시도가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300년 전과 현저히 다르다. 국가 정책이 다르고 교역 상품의 종류와 질, 교역수단과 기술이 다르기 때문에 과거의 기회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과 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중국의 기술수준은 대체로 낮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2015년 국무원이 발표한 중국의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5년까지 제조강국이 될 발전 전략을 세우고 있다. 1단계인 2015년~2025년에는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한국 등과 같은 제조강국에 진입하는 것이고, 2단계인 2026년~2035년에는 제조강국 내 중간수준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마지막 3단계인 2036년~2045년에는 주요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육성 정책으로 드론과 같이 제조업과 ICT 기술의 결합, 공업과 정보가 결합된 형태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장웨이잉(张维迎)은 린이푸(林毅夫)가 주장하는 국가 계획에 의한 산업정책에 대해 방법론적 측면에서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장웨이잉은 ‘산업정책이 몰상식(无知)에서 치욕(无耻)스러워지고 있다’고 비난하는 반면, 린이푸는 ‘경제발전은 산업정책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반론하는 등 둘의 애증관계는 매우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 발전에서 산업 발전은 필요하고 기술과 부가가치가 높은 혁신 산업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수요 시장이 필요했던 것과 같이 중국은 현재 과잉 생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단순히 생산 과잉 문제뿐 아니라 상품의 질적 수준도 담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함대 메네시스호가 보여준 속도와 파격적인 포화를 갖춘 기능을 능가할 새로운 혁신 기술로 중국의 잃어버린 기회를 되찾으려는 시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협생(協生)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이주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info.machine.hc360.com/2016/08/261049592289.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