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홍콩에서 또 다른 국가보안법인 기본법 23조가 입법회의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홍콩의 소헌법인 기본법에 직접적으로 국가보안을 위협하는 상황과 최대 종신형의 처벌을 명시함으로써 2020년 중국에 의해 시행된 국가보안법을 보완토록 한 것이다. ‘만장일치’로 법안이 가결된 상황은 변화한 홍콩의 풍경을 고스란히 예시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시민사회는 상당 부분 위축되었고, 활동가의 투옥과 해외 이주 등으로 인해 비판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이미 기본법 23조 입법 시도가 논란이 되었던 2003년과 사뭇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50만 명의 시민들은 거리시위에 나서며 23조 입법 추진에 거세게 반대해 입법 철회를 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이미 국가보안법이 강력하게 작동 중인 현실, 편향된 입법회의 구성, 시민사회의 무력화 등이 맞물리면서 만장일치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홍콩 시민은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홍콩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여러 활동을 주도했던 집단인 ‘관주조(關注組, concern group)’의 변화와 확장은 홍콩 시민이 다 함께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되었는지, 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창구가 된다. ‘관주조’는 특정한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염려하는 집단으로 홍콩 시민사회에서 의제를 형성하고 실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관주조 앞에 나오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주택, 토지, 저소득층, 빈곤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다루고는 한다. 지금은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사실상 대항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는 범민주파 정당도 여러 관주조와 관계 맺으며 의정활동을 수행해왔다. 홍콩 정치에서 관주조의 활발한 기능과 역할은 풀뿌리 정치와 제도권 정치 차원 모두에서 중요했다. 시민들은 관주조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관주조는 입법회와 정부에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여 해결방안 모색을 촉구하는 집단이었다.
2017년 8월 19일, 몽콕(旺角)의 한 사무실에서 기층민 거주권 관주조가 개최한 주거문제에 관한 주민 포럼은 이와 같은 관주조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지 조사를 도와주었던 사회복지사인 활동가 친구는 나의 연구 대상이던 활동 외에도 주거문제에 관한 관주조에 참여하고 있었다. 참여관찰을 위해 그 친구의 활동이 무엇이든 따라다니던 현지 조사 초기에 우연히 마주한 관주조의 작동방식은 꽤 흥미로웠다. 주민포럼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노출된 주민 당사자가 처한 문제를 나누는 장이었다. 주민과 활동가가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취합하여 정부기관과 입법의원에게 해결방안을 건의하는 방식이었다. 현장에는 입법의원도 참여했다. 당시 관주조는 모든 입법의원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이러한 행사에는 주로 범민주파 의원들이 참여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입법의원이 참여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조별 논의가 끝난 후 의원은 열악한 주거문제 해법으로 자선, 기부, 시민사회단체의 중개 대행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책임을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 활동가와 입법의원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활동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 1. 기층민 거주권 관주조의 주민 포럼 모습
이 관주조는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택문제는 홍콩 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할 현안이라는 점에서, 공공주택 확충, 대기시간 단축, 노인 외 1인 가구 지원, 임시 공공주택 건설 반대 등을 주장하는 선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와 같은 관주조가 국가보안법 이후로 완전히 무력화된 것은 아니며, 그 성격이 변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두 개의 국가보안법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규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무엇이든 정치적인 사안이 될 위험은 상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관주조의 흐름은 홍콩 시민이 보다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홍콩 고유의 음식이다.
예를 들어, 홍콩의 딤섬 사운데 하나인 시우마이(燒賣)는 홍콩 시우마이 관주조(香港燒賣關注組)를 통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 관주조는 딤섬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다진 돼지고기가 들어간 시우마이보다는, 노점에서 주로 취급하는 어육으로 만든 시우마이를 주요 관심사로 한다. 홍콩의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 중 하나인 시우마이에 관한 관주조는 페이스북 팔로워가 17만 명에 달하며,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도 7만 명에 육박한다. 88홍콩달러(한화 약 15,000원)를 지불하고 회원가입을 하면 회원카드를 발급받고 제휴협정을 맺은 상점에서 시우마이를 구입할 때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2021년 7월에는 시우마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 『홍콩 시우마이피디아(圖解香港燒賣, Hong Kong Siumaipedia)』를 출간하는 등 2020년부터 활동한 단체로서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관주조는 시우마이 애호가들을 위해서 홍콩 노점에서 판매하는 시우마이의 품질과 가격을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회원들과 함께 수행한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회원들이 시우마이 노점에 대한 정보나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을 공유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 2. 홍콩 시우마이 관주조의 페이스북
현지 기사에 따르면 홍콩 시우마이 관주조는 관주조라는 이름을 음식에 처음으로 붙였고, 이후 에그타르트, 밀크티, 파인애플 빵 등과 같은 홍콩 특유의 음식에 관한 관주조가 대거 생겨났다고 한다.1) 이 기사는 관주조의 설립자들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그 내용에 꽤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첫째, 이들은 2019년 사회운동에서 여러 이슈를 다루었던 ‘전통적인’ 의미의 관주조를 알고 있지만, 그 의미를 동일하게 답습하지는 않는다. 둘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보면 설립자들은 스스로를 ‘노동조합’으로 명명하고, 회원들을 위한 복지로서 시우마이에 대한 모니터링과 할인을 이야기한다. 셋째, 사회운동을 지지했던 황색상점과 이에 반대했던 청색상점에 대한 어떠한 가치판단도 하지 않고 오로지 시우마이의 품질과 맛에만 집중한다. 일전에 청색상점의 시우마이가 소개되어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지만 맛에만 집중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코로나19 시기 ‘재미’로 시작했던 홍콩 시우마이 관주조에 이토록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젊은 설립자들은 홍콩의 정체성으로서 훼손되지 않은 시우마이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홍콩의 정체성은 홍콩 고유의 문화와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음식은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비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소재이다. 정치적인 색채에 따라 상점을 나누고 소비를 통해 행동주의를 보여주었던 황색상점 지지운동과는 달리, 음식 관련 관주조들은 음식을 있는 그대로 향유한다. 그러면서도 노동조합이라는, 다소 정치적인 명명을 강조하면서도 활동은 정치적이지 않은 소비자주의를 향하는 흥미로운 모습도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이 강했던 홍콩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늘 중요한 이슈였다. 그러나 지금의 먹고 사는 이야기는 홍콩 고유의 문화 혹은 정체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문화와 정체성을 강조하는 최근의 움직임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믿는 어떤 시절의 홍콩을 부여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정치적 무관심이 강제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행위로 향해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달라진 세대가 사회에 말을 거는 새로운 방식일 수도 있겠다. 관주조의 변화와 확장은 홍콩 시민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이전과는 달라진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이다. 함께 오랫동안 먹어왔던 음식을 이야기함으로써 이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특정한 감각은 어찌 되었든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홍콩에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 홍콩 13】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1) Kelly Ho, 2021. “Love at first bite: Hong Kong’s humble street food inspires an encyclopaedia.” Hong Kong Free Pres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와 표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필자 직접 촬영
사진 2. https://www.facebook.com/HongKongSiuMaiConcernGro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