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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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농업 연구로 본 중국적 표준과 질서에 대한 대안적 접근(7) _ 리페이

[역자의 말]

지난 155호부터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코너에서 홍콩 농업3.0 실천에 관한 초우시총(周思中, Sze Chung Chow) 선생의 저서, 석양의 빛: 누가 홍콩에 채소밭이 없다고 했을까?1)의 내용을 장별로 요약·번역하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호는 5<유기농 채소밭 모델, 그 소비시장과 경영 상황>의 전반 부분 내용인 홍콩 유기농 채소밭의 발전사를 소개했다. 이번 20242월호는 후반 부분 내용을 요약·번역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유기농 채소 생산 및 판매에 정보통신기술이 도입되는 과정과 정보통신기술의 응용과 홍콩 본토의식 형성 간의 관계를 여러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내용요약]

1) 정보통신기술의 도입

채소밭 경제로의 정보통신기술 도입은 1990년대의 채소 꾸러미 모델에서 시작됐다. 구매자의 수요에 따라 채소 생산 규모와 종류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 모델은 전통적인 채소 도소매업과는 다르며, 일종의 계약 재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을 적용할 때 채소밭 경영자는 사전에 생산 관련 정보를 고객에게 알리고 주문 관련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저자의 현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채소 꾸러미를 운영했던 채소밭 경영자들은 주로 팩스를 이용해 생산 정보를 알리고 주문서를 받고 정보를 수집했었다고 한다. 팩스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일반 회사처럼 팩스 수·발신과 주문 정보 취합을 위해 상근 직원을 배치해야 했고, 이는 채소밭 인건비 인상을 초래했다. 따라서 이 모델은 주로 대규모 채소 농장을 중심으로 실천됐으며, 소규모 채소밭에서는 보급되지 못했다.

 

농민 장터 모델이 등장하면서 소규모 채소밭 경영자들은 직거래 장터를 통해 구매자와 비교적 견고한 관계를 형성하고 계약 재배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소규모 채소밭은 생산량의 정밀 조절이 불가능하고, 채소의 품질과 품종의 다양성 측면에서만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후 인터넷의 보급으로 소규모 채소밭도 고객의 수요에 따라 생산 과정과 배송 경로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현대 정보통신기술의 보급은 계약 재배, 직거래 장터, 소규모 채소밭 각각의 장점을 결합시켜, 전체 채소 산업의 생산 및 유통 비용 절감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2) 정보통신기술의 활용 방식

저자의 현지 조사 결과, 인터넷을 활용한 채소밭 가운데 인터넷 플랫폼 활용 및 인터넷 마케팅은 주로 이른바 젊은 층으로 구성된 '2세대 농부'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의 정치적 혼란과 2020년 이후의 팬데믹 등 여러 충격을 겪은 홍콩 청년층이 인터넷+채소밭이라는 방식을 통해 가족과 홍콩 토지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가 열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청년층 중심의 인터넷을 활용한 채소밭 운영방식을 5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채소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SNS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실제로 채소밭에서 재배되고 판매된 채소의 종류와 단가를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데이트하는 등 SNS를 채소 온라인 판매의 전자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SNS를 통해 채소밭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과정이나 채소 재배와 관련된 지식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채소 재배를 홍보하기도 한다. SNS를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도구이자 온라인 매점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이 모델은 중소 규모의 유기농 채소밭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다.

 

두 번째는 온라인 매점을 직접 개설하는 것이다. 자체 온라인 매점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채소생산자는 주로 대규모 채소 농장이다. 소비자는 웹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매점에 접속하거나 모바일 앱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채소 품종과 가격을 직접 조회할 수 있으며, 채소를 주문하고 농장에 원하는 주소로 직접 배송을 요청할 수 있다. 이 모델은 과거 팩스 주문 모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팩스를 수·발신을 위한 전문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높은 물류 운송 비용으로 인해 이 모델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따라서 물류 차량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거나 기타 물류 채널을 보유한 대규모 농장만이 이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세 번째 모델은 단순화된 온라인 매점 모델로, 소규모 채소밭에 활용된다. 이 모델은 기술적으로 비교적 복잡한 웹사이트나 앱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google form 기능을 활용하여 채소 품종과 주문량에 대한 질문을 담은 설문지를 만들고, 이를 SNS에 게시하여 고객에게 설문 조사할 수 있도록 한다. 채소밭 경영자는 설문지를 회수하고 주문된 품종과 수량을 분석한 후 발매 여부와 사용할 배송 채널을 스스로 결정한다. 일부 채소밭 경영자는 오프라인 채소 매점과 협력하여 채소 매점을 통해 설문지를 수집하고, 채소밭은 채소 매점에 도매가로 채소를 공급하는 역할만 담당하기도 한다. 두 가지 방식은 모두 개별 고객과 거래할 때 물류비용과 거래 비용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네 번째 활용 방식 역시 SNS를 기반으로 하지만, 판매보다는 브랜딩 효과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가 소개한 홍콩 현지 채소 업계에서 유명한 채소밭 경영자이자 사회운동가 W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W씨는 SNS를 통해 자신의 채소밭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트래픽을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사실 SNS를 활용해 인지도를 높이는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가장 뜨거운 트래픽 경제나 팬덤 경제와 유사하다.

 

다섯 번째 방법도 여전히 SNS를 활용하고 있지만, 앞서 설명한 방법과 달리 이 방법을 사용하는 채소밭 경영자는 판매나 트래픽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고 주 수입원이 채소 재배도 아니다. 저자가 소개한 G씨의 사례는 이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G씨의 진정한 신분은 농업 기술과 지식의 대중교육자로, 농부로서의 신분은 채소밭을 실험적으로 가꾸기 위함일 뿐이다. 그 결과, 그의 SNS와 개인 웹사이트에는 주로 그가 민간에서 수집한 전통 농업 기술에 대한 동영상과 기록물, 농부가 된 후 쓴 감성적인 수필만이 게시되어 있으며, G씨의 수입의 상당 부분은 농사보다는 그가 만든 이러한 콘텐츠에서 발생한다. 저자는 이러한 농사와 교육을 결합하는 시도가 매우 실험적이라고 본다.

 

홍콩의 채소밭 경제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모델을 개발했지만, 이러한 모델은 주로 마케팅 홍보와 판매 유통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응용이 홍콩의 본토 농업의 쇠퇴를 막고 채소밭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더구나 수입 채소 산업도 정보통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그 활용의 깊이와 폭은 홍콩의 채소밭 경제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정보통신기술 응용에 있어 오히려 본토 채소밭과 수입 채소 산업 간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3) 채소밭,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본토의식

일부 채소밭과 채소 매점을 포함한 홍콩의 현지 채소 산업은 지난 10여 년 동안 홍콩 본토의식 부상 과정에 깊이 참여해 왔으며, 이는 이러한 사업체의 상호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지 채소만을 공급하는 채소 매점은 논밭, 농업, 땅 갈기 등과 같은 광둥어 단어 혹은 정치적 의미가 담긴 암호화된 단어를 상호명에 사용한다. 이를 통해 매점 주인은 본토 또는 본토 농업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표현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홍콩 본토 채소밭 경제의 발전은 사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신계 도시 개발 사업, 그리고 이 사업과 관련된 시민 저항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연관성은 2008~2009년경 광저우-선전-홍콩 고속철도 홍콩 구간 설계 및 건설 과정에서 정부의 농지 수용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저항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속철도 반대 운동은 최근 홍콩의 여러 시민운동 가운데 농업 문제가 가장 주목받았던 시민 저항 운동이었다. 이 운동 과정에서 홍콩처럼 인구가 많이 밀집된 곳에서 농업 생산이 필요한지, 홍콩처럼 고도로 도시화된 지역에서 '직주일치(職住一致)' 공간으로서 농촌이 여전히 존재할 여지가 있는지,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는 고속철도 농지 징수에 관한 찬반 토론을 넘어 이후 도시 개발 계획에 대한 저항 운동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저자가 소개한 G채소밭 사례는 곧 고속철도 반대 운동의 배경에서 신계의 농지를 지키기 위해 출범한 유기농 채소밭이다. 현재 G채소밭은 이미 자립이 가능한 농업 생산 주체로 발전됐으며, 설립 당시의 고속철도 반대 아젠다에 국한되지 않고, 생산과 판매는 물론 본토농업 및 유기농업, 그리고 생태와 기후변화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회단체로 성장했다.


고속철도 반대 운동에 이어 신계 북동부 개발 계획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농업과 관련된 시민운동 조직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홍콩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발 가능 지역 중 하나인 신계 북동부 농촌 지역은 역대 홍콩 정부와 부동산 기득권층이 오랫동안 탐내온 지역이었다. 2008년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신계 북동부 개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2010년 시민운동 단체들은 개발 계획에 명시된 마시포(Mashipo, 馬屎埔) 마을에 입주해 농지 수용에 저항하며 마을에서 농민 직거래 장터(馬屎埔農墟, 일명 馬寶寶農墟)를 열었다.

 

2016년에는 한 개발업체가 마시포 마을 부지 인수를 발표하고 보안 요원을 현장에 배치하면서 마을 주민 및 운동 단체와 대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마시포 농민장터는 각 방향에서 온 압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영업을 이어가며 현재 채소 판매 및 배송 범위를 홍콩섬과 구룡지역까지 확장했다.


앞에서 언급한 저항과 투쟁 이후 홍콩 정부도 신계지역에 대한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6년경에 이른바 '신농업 정책'을 발표했다. 홍콩 정부의 신농업 정책은 홍콩 농업의 부가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에 따라 첨단농업기술 도입과 수익성 높은 농업을 육성하는 정책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80헥타르 규모의 현대식 농업 단지를 개발하기 위해 신계 츄켕(Tsiu Keng, 蕉徑) 마을의 토지를 매입했다.

 

현재 츄켕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은 농업 단지에 입주해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지만, 자신이 익숙한 과거의 생활 및 생산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예컨대, 농업 단지에 입주하는 농부들은 연간 생산 계획을 정부에 제출해야 하고, 단지 내 숙박과 취사 등에 많은 제약이 있는 등, 농업 단지 재정착에 관한 애로사항들이 있다


소규모 가족농을 고용농으로 강제로 전환하는 이른바 '신농업 정책'은 지역 농민과 시민운동 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농민들의 땅이 계속해서 불도저에 파헤쳐져 콘크리트 바닥의 농원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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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농민 장터에 게시된 본토의식이 담긴 현수막2)


앞서 언급한 시민 저항 운동이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됐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미디어와 SNS의 발달로 끊임없이 공유되고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로 보이는 다수의 채소밭과 농민 장터는 저항 운동 이후에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지속적인 관심과 주목 속에서 계속 발전 가능성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채소밭과 농민 장터는 인터넷과 SNS를 활용하여 자신의 채소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동시에 농지 수용 저항에 관련된 상황과 정보를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러한 정보를 접한 소비자들은 구매한 채소로 자신의 배를 채울 뿐만 아니라 소비 행위를 통해 저항을 지지하고, 동시에 저항의 이면에 내재된 본토의식을 확인하며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저자는 길거리 시위에 비해 이렇게 음식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 훨씬 위험성이 적고 맛있게 저항할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본토의식을 단순히 홍콩산 채소에 대한 소비증가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본토의식 대두의 배후에는 뿌리 깊은 사회-문화적 요인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는 때마침 중국산 수입 채소 증가에 의한 홍콩 채소 생산량 감소, 베이징의 고속철도 계획이나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도시 개발 계획에 의한 농지의 강제 수용 등 사건과 연관되면서, 시민 저항 운동의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장기적으로 홍콩이 본토농업 비중을 유지하려면 본토의식과 본토 채소 생산 간의 표면적이고 감정적인 연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본토농업 또는 유기농업이 향후 홍콩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중문 원본은 다음 책 참조周思中 著, 2022, 『夕陽的光誰說香港沒有菜園』香港藝鵠有限公司.

2) 위 책, 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