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타이베이시(台北市) 중산구(中山區)의 5층짜리 빌라가 갑자기 지하로 가라앉았다. 해당 건물의 지상 1층은 순식간에 지하 1층으로 변해버렸고 5층짜리 건물은 4층짜리 건물이 되었다. 이 빌라만이 아니다. 인근의 건물들 또한 외벽에 금이 가거나 문이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을 정도로 기울어졌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그림 1. 타이베이시 중산구의 무너진 빌라의 모습.
1층이 지하로 내려가 보이지 않는다.
조사 결과, 이 사건은 근처에서 진행되던 건축 공사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일 저녁, 한 건설업체가 근처에서 굴착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근 주택과 건물에 충격이 가해져 건물의 지반이 무너진 것이다. 다행히 신속한 대피가 이루어져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대만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 하나인 건물의 노후화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건물 고령화 도시 타이베이
대만은 나름 선진국이다. 경제적으로는 2022년 1인당 GDP가 한국을 추월했고, 정치나 문화의 측면에서도 민주주의 지수나, 언론 자유 지수가 한국보다 더 높다. 선진국의 척도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와 정치, 문화의 제도적 발달을 기준으로 본다면 대만을 선진국 대열에 놓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경관은 이에 부합하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대만에 오면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예상외로 볼품없는 듯한 도시의 경관으로, 이는 대만을 대표하는 수도이자 대만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타이베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타이베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외벽의 타일 사이사이가 검은색의 때로 가득 차 있는 건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 불법으로 증축된 발코니와 창문들이 누더기를 덧댄 듯 붙어있으니 ‘후줄근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림 2. 노후화된 타이베이의 건물.
지저분한 외벽뿐만 아니라 불법적으로 증축된 발코니, 창문들이 눈에 띤다.
이와 같은 건물들은 타이베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정돈되어 있다기보다는 약간은 풀어져 있는 듯한 건물들의 배치나 현대적이지 못한 외관이 대만 특유의 고즈넉한 매력을 풍긴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건물의 노후화는 대만 사람들 또한 공감하고 있는 문제다. 2022년 타이베이 시정부에서 실시한 도시 미관 업무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불만족'이라고 답한 이들의 상당수가 "건물 외관이 낡고 지저분하다"를 가장 큰 문제로 뽑았다.1) 문제는 도시의 노후화가 단순한 미관상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들에는 화재 예방 설비는 물론 내진 설계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실제 2021년 가오슝에서 발생한 청중청(城中城) 빌딩 화재 사건의 경우, 건물 노후화와 화재 대응 설비의 문제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림 3. 물론 몇몇 건물들은 위 사진과 같이 대만 특유의 고즈넉한 매력을 풍기기도 한다.
사진 속 장소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상견니(想見你)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현재 대만이 직면한 건물 노후화 문제에서 타이베이는 다른 도시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 이는 타이베이시 건물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타이베이시 건물들의 평균 나이는 37.06세로, 전국 평균인 30세보다 높다. 2016년 3분기 기준, 지난 5년 동안 타이베이에서 새로 지어진 주택이 2채밖에 안 될 정도로2) 재건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타이베이에서 30년이 넘은 건물은 전체 건축물의 72%를 차지한다.3) 이는 3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의 비율이 54.3%인 서울과 비교해 봐도4) 상당히 높은 수치다.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고 노인의 비율이 높은 사회를 고령화 사회라 부르듯, 새로 지어지는 젊은 건물들의 수는 줄어들지만 나이 든 건물들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타이베이는 ‘건물 고령화 도시’이다. 물론 대만 정부 또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속도는 더디다. 타이베이에 노후화된 건물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타이베이는 왜 노후화 도시가 되었는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개선은 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건물 노후화의 여러 원인들
타이베이는 왜 노후화 도시가 되었는가? 여기서 말하는 ‘노후화’는 외관상의 노후화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건축물 자체의 안전성과 같은 설비의 노후화도 포함한다.
첫 번째 원인은 잦은 지진이다. 대만은 환태평양 지진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지진은 건물의 내구성에 영향을 주고 이는 건물의 수명 단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진은 건물 노후화의 작은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주된 원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은 대만보다 더 직접적으로 환태평양 지진대의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노후화 문제가 대만만큼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후화의 두 번째 원인은 주택관리 제도의 미비다. 일본은 대만과 달리 건물 관리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가령, 주택을 소유한 이들에게 집을 수리할 의무를 부여하고 공동 주택의 경우 관리비에 더해 추후 수리를 위한 돈을 추가적으로 부담하게 함으로써 주택을 관리하도록 규제한다. 이는 잦은 지진을 겪으며 지진 예방 제도가 확실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만에는 잦은 지진을 겪음에도 정기적으로 주택을 검사하거나 관리하는 풍토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이를 강제하는 규제도 없으며 건물 외벽 청소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밖에도 건물들이 많이 지어지던 80~90년대, 건축법에 따른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건물 노후화의 원인 중 하나이다. 당시 지어졌던 건물들은 부실한 건축자재로 지어진 경우가 많았다.
노후화의 세 번째 원인은 까다로운 재건축 요건이다. 사실 앞선 이유가 어떻든 건물이 낡았다면 철거한 뒤 새로 건물을 지으면 된다. 하지만 대만의 재건축은 건물에 권리가 있는 모든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만, 즉 100%의 동의가 있어야만 비로소 실시할 수 있다. 단독주택이면 상관없지만 다가구 주택의 경우 일부 사람들이 재건축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건물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여기에 더해 재건축에 드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으니 낡은 주택이나 건축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 자주 시행되지 않는다. 결국, 비용의 문제와 까다로운 재건축 요건이 오늘날 건물 노후화의 가장 큰 원인인 셈이다.
그림 4. 대만의 재건축 신청 동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들과 그 한계
물론 대만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해왔다. 1998년부터는 도시 재정비 조례(都市更新條例)를 통해 꾸준히 재개발을 실시해왔으며 2017년에는 오래된 건물에 대한 재건축 속도를 높이기 위한 《타이베이시 위험 및 노후 건축물 재건축 가속화 조치(台北市危險及老舊建築物加速重建辦法)》(이하 《가속화 조치》)를 발표하여 기존 재건축 심사에 드는 시간과 절차를 단축했다. 가령, 일반적인 도시 재건축이 위원회를 통해서 진행된다면, 《가속화 조치》에 따른 재건축은 서면심사만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 새로운 조치의 시행 이후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가속화 조치》에 따른 재건축 사업은 2022년에만 전국적으로 3천여 건이 접수되었고 이 중 2,700여 건이 승인되었다. 하지만 현재 대만 건물의 노후화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대출 혜택이나 보조금 등의 다양한 지원을 해준다고는 하나 일반 시민들에게 재건축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여전히 큰 부담이다. 또한 100% 동의가 필요한 까다로운 재건축 승인 조건은 여전히 노후화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16년에는 건축법이 개정되며 지어진 지 30년이 지난 주택을 매매할 때는 반드시 안전점검 증명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주택안전 점검증명(房屋安全檢查證明)”조치가 시행되었다. 대만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주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우선 6층 이상의 공용주택만을 안전점검 의무 대상으로 한정하고 그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늘려가겠다고 했다. 정부의 의도는 이 조치를 통해 노후화된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고 재건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해당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시기에 재건축 비용을 부담하고 싶지 않아 했다. 결국 이 정책도 지금까지는 노후화 개선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는 못하다.
계속되는 정책들
타이베이의 도시 노후화 해결은 매번 시장 선거의 주요 공약으로 등장할 만큼 대만 도시 문제의 주요 화두이다. 현 타이베이 시장인 장완안(蔣萬安)은 올해(2023년) 3월 노후 건물 개선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문턱 낮추기, 규제 완화하기, 허가 가속화하기, 장애물 제거하기, 지원금 증액"을 골자로 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都更5箭)'를 실시했다. 시정부 발표에 따르면 향후 민간 전문 인력 양성을 비롯하여 재건축 문제 해결에 더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노후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되는 문제이므로 대만 정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또한 건물의 노후화는 도시의 이미지와도 연관된다. 타이베이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김명준 _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동아연구소 박사과정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https://www.gov.taipei/News_Content.aspx?n=F0DDAF49B89E9413&sms=72544237BBE4C5F6&s=EEF854075315C77D
2) https://www.moneyweekly.com.tw/Magazine/Info/%E7%90%86%E8%B2%A1%E5%91%A8%E5%88%8A/30656/
3) https://tw.stock.yahoo.com/news/%E5%8F%B0%E5%8C%97%E5%B8%82%E5%BF%AB%E9%80%9F%E8%AE%
8A%E8%80%81%EF%BC%81%E5%B9%B3%E5%9D%87%E5%B1%8B%E9%BD%A137%E6%AD%B2-%E5%8D%81%E5%B9%B4%E4%BE%86%E5%A2%9E8%E6%AD%B2%E5%B1%85%E5%85%AD%E9%83%BD%
E4%B9%8B%E6%9C%80-075140885.html
4) 동아일보, “서울 건물 54.3%는 ‘노후건축물’…주거용도 ‘절반 이상 노후화’”,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302/118135574/1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udn.com/news/story/123732/7424636?from=udn-cardnews
그림 2. https://estate.ltn.com.tw/article/12657
그림 3. 필자 직접 촬영
그림 4. 타이베이시 건축관리공정처臺北市建築管理工程處 홈페이지: https://dba.gov.taipei/News_Content.aspx?n=3807026F3A50DC3F&sms=C41804EE8B003440&s=5476E5D82E1614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