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의 말]
지난 155호부터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코너에서 홍콩 농업3.0 실천에 관한 초우시총(周思中, Sze Chung Chow) 선생의 저서, 『석양의 빛: 누가 홍콩에 채소밭이 없다고 했을까?』1)의 내용을 장별로 요약·번역하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11월호는 이 책의 3장 <채소통영처(蔬菜統營處)의 대업(大業)과 그 예외들>을 요약·번역한다.
3장은 영국 식민지 시기의 식민정부가 채소 유통 분야를 장악·통제하던 도구로 설립된 채소통영처를 중심으로 홍콩 공식 채소 유통 분야의 변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과 더불어, 저자는 두 가지 ‘예외’를 통해 홍콩 채소 유통 분야의 아이러니한 측면을 재조명한다. 사실상 여기서 말하는 예외는 통영처를 중심으로 한 홍콩의 자체적 농식품(agri-food) 순환시스템에서 소외된 ‘타자(他者)’라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영국 식민당국이 채소통영처 설립을 통해 홍콩 현지 생산 채소의 판매와 유통 독점을 시도함에 따라 소외된 기존 홍콩의 채소 상인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홍콩 채소 상인과 채소재배업 농업인들의 중국 본토 진출과 채소통영처의 쇠락 과정에서 오명화(汚名化)된 ‘특구산 채소(特區菜)’이다. 이러한 채소통영처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에 대한 재발견은 최근 몇 년간 격화된 홍콩-중국 관계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요약]
1. 2차 세계대전 이후 채소통영처 설립 원인
저자는 신계의 식민지화 이후, 영국 식민당국은 이미 신계와 선전(深圳) 사이의 고유한 경제와 무역 관계가 새로 그어진 홍콩과 중국의 경계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었으며, 홍콩의 경계를 선전까지 확장하려는 식민당국의 시도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신계와 선전 사이의 경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화에 대한 방어벽으로 변신했고, 이로 인해 영국 식민당국은 홍콩의 자체적인 지역적 푸드 순환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홍콩의 채소 공급과 유통을 일괄적으로 통제해야만 했다. 따라서 채소통영처를 설립하는 것은 영국 식민당국의 유일한 선택이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식민당국은 고리채거래 문제, 도시 경관 훼손 문제 등으로 기존 채소판매유통 시장을 장악하던 채소 상인집단(광둥어: 欄商/菜欄商)을 법적으로 단속하는 동시에 담론적으로 이들을 오명화함으로써 통영처의 설립을 정당화했다.
2. 초기 통영처의 운영 방식
식민당국이 주도하는 농식품 지역 순환시스템의 핵심은 분산된 채소재배 농가와 채소 판매자를 연결하고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는 세 가지 요소가 작동한다. 첫째는 경제적 원동력, 즉 채소밭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은 앞서 2,3장의 내용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둘째는 생산자와 판매자를 조직화하여 채소 생산자와 판매자가 자체적으로 생산유통 합작사(협동조합)를 설립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는 법적인 강제이다. 즉 신계에서 생산된 채소는 모두 통영처를 통해 납품되고 도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영처의 운영 과정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소를 결합시켰다. 첫째, 채소재배 농가가 합작사에 채소를 출하하고, 합작사는 무게를 재고 포장하여 통영처가 지정한 거래장소로 운송하고 출하가격을 산정한다. 둘째, 통영처가 지정한 거래장소(광둥어: 檔口)에서 합작사가 고용한 상근 판매원(광둥어: 賣手)들이 채소 구매자 자격을 갖춘 정부 승인 구매자(광둥어: 投買人)에게만 채소를 판매한다. 셋째, 판매 대금에 대한 정산이다. 판매 대금의 대부분은 농민에게 돌아가지만, 판매 대금의 10%를 수수료로 공제하여 판매원 인건비와 합작사의 운영비로 사용하고 통영처의 운영비용을 충당한다.
사진 1 & 2. 채소통영처 공설도매시장 내외부의 모습2)
3. 통영처의 설립 과정에서 탄압받은 채소 상인집단과 그들의 저항
2차 대전 전 홍콩 농산물 유통 및 판매 시장의 주역은 채소 상인집단이었는데, 이들은 신계산 채소를 위주로 판매하면서 일부 중국산 채소 수입 업무를 병행했다. 동시에 채소 상인이 보유한 대량의 현금은 채소 농가들이 생산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주요 자금원이기도 했다.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채소 상인집단은 채소통영처가 설립된 이후 큰 타격을 받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채소 상인들은 당국의 조치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다양한 형태의 저항을 조직했다. 예컨대, 첫째, 그들은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농부들을 협박하고 통영처가 설립한 공설도매시장에 채소를 납품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둘째, 그들은 식민당국의 정책적 허점을 이용했다. 즉, 당국은 신계에서 생산된 채소의 유통과 판매에 대해서만 규제했기 때문에, 채소 상인과 농부들은 신계에서 생산된 채소를 해상으로 우회하는 방식으로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무역항인 홍콩섬으로 밀수하고, 홍콩섬과 구룡(九龍, Kowloon)지역에서 사설(私營)채소도매시장을 조직하여 밀수된 신계산 채소를 판매했다.
이 회색지대의 저항은 1980년대까지 지속되다가 서서히 종식되었다. 홍콩섬과 구룡에서 채소 상인 그룹이 운영하던 사설 채소도매시장은 도시 확장 과정에서 소음과 환경 오염으로 인해 도심과 떨어진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통영처도 경영상황이 악화되자 채소 상인들에게 공설도매시장 내 단독 판매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수수료를 부과하는 제안을 했다. 이를 통해 양측의 갈등은 점차 해소되었다.
4. 통영처의 쇠락 과정에서 오명화된 특구산 채소
이 부분에서 저자는 홍콩 농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농약에 오염된 초이섬(毒菜芯)' 사건의 내막을 중심으로 이른바 '특구산 채소'가 어떻게 오명화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홍콩의 채소 상인집단과 일부 채소 농가들은 채소통영처의 통제를 우회할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즉, '특구산 채소'라고 불리게 된 당시 선전 경제특구에 농업자본, 기술, 종자를 수출하고 농장을 설립하여 현지 농민을 고용하고 채소를 재배한 후 홍콩에 독점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사실 일종의 '가공무역'에 해당했다. 이러한 무역방식은 식민당국 통제 하의 농식품 순환시스템을 약화시켰고, 이는 곧 통영처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식민당국보다 오히려 중국 측이 이러한 형태의 무역에 더 많은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중국은 홍콩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홍콩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1960년대부터 홍콩을 대상으로 농산물 특별 수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홍콩에 설립된 두 개의 국영기업이 전담하면서 엄격한 규제 하에 독점적으로 운영되었다. 특구산 채소의 출현은 사실상 국영기업의 독점을 깨뜨렸다. 따라서 홍콩 채소 상인과 농부들의 중국 진출 당시 선전 당국은 한편으로는 '선전과채공사(深圳果菜公司)'를 설립하여 이 회사에만 납품할 수 있게 규정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전과채공사와 쿼터제 납품 할당량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홍콩달러로 받게 되는 판매 대금으로 일정한 외환매입 쿼터를 충족시켜야 했다. (당시 중국은 외환 부족 상황이 심각했다.)
그러나 계획경제식의 엄격한 규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사실, 특구산 채소농장의 운영자는 쿼터 제한을 뚫고 홍콩 가격 수준에 비해 저렴한 특구산 채소를 홍콩으로 더 많이 반입하길 원했으며, 선전 특구 인근 지역의 농민 역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특구산 채소로 위장시켜 중국 가격 수준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쿼터제에서 정해진 할당량을 초과한 채소를 밀수하거나 선전의 일반 농부들이 생산한 채소를 특구산 채소로 둔갑시켜 수출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이로 인해 홍콩에서 중국산 채소 수입 업무를 전담하던 국유기업의 이익이 크게 침해되고 양측 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1985년 3월, 선전에서 특구산 채소 농장을 운영하는 홍콩인 농장주들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고 선전 측이 수출 쿼터 제한을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맹비난했다. 반면 선전 측은 수출 쿼터 제한 강화가 홍콩 채소 시장의 가격 안정을 유지하고 쿼터를 초과한 밀수 채소가 홍콩으로 대량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홍콩인 농장주들이 약속한 외환매입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고, 수출량을 과소 신고했다는 등 계약 불이행 행위를 비판했다. 저자가 판단하기에는 선전 측의 반발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실제로 선전시 측이 갑작스럽게 쿼터 제한을 강화했던 진정한 동기는 홍콩에 진출한 중국 국유기업의 이익 침해에 대한 대응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의 전 과정에 걸쳐 영국 식민당국과 채소통영처가 특구산 채소의 밀수 등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홍콩의 식민지 농식품 순환시스템이 사실상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 준다.
1987년 겨울, 초이섬 섭취 후 불편함을 호소하여 병원으로 이송된 일부 홍콩시민들이 식중독 판정을 받았다. 당국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식중독을 유발한 초이섬에서 사용 금지된 제초제 성분인 글루포시네이트 암모니움이 허용 기준치보다 초과 검출되었는데, 이들 초이섬은 주로 선전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즉, 선전 특구에 설립된 홍콩인이 운영하는 채소농장이나 일반 농민의 채소밭에서 생산된 후 특구산 채소로 둔갑하여 홍콩으로 반입된 '농약에 오염된 초이섬'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홍콩의 규제를 우회하여 결국 통영처가 운영하는 공설도매시장에서 판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1987년 당시, 현지 농민들이 생산한 것도 아니고, 선전 당국도 인정하지 않는 이들 ‘농약에 오염된 특구산 채소’가 이미 여러 공설도매시장의 합작사 매점에서 일상적이고 대규모로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정작 이들이 어떻게 공설도매시장 내의 합작사 매점까지 침투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당시 언론 보도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3)
한 마디로 1987년 겨울에 발생한 '농약에 오염된 초이섬' 사건의 근본 원인은 홍콩 농식품 시스템의 실패였다. 그러나 홍콩시민들과 언론의 기억 속에는 마치 모든 책임이 맹독성 제초제를 뿌린 특구산 채소에만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이후 모든 중국산 채소를 포함한 특구산 채소는 이 사건으로 인해 결국 타자화되고 오명화되었다. 당시 홍콩의 현지 농부들은 이 사건으로 인한 채소 가격 폭등으로 이득을 거두었지만, 이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방어벽과 같은 농식품 순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홍콩에는 저렴한 수입 채소(주로 중국산)가 쓰나미처럼 쏟아져 들어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통영처는 수입 채소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운영 방식을 조정했다. 통영처는 중국에 진출하는 홍콩 농장주들을 합작사와 공설도매시장 시스템에 편입시키기 위해 이들에게 '국내 회원'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국내 회원’은 홍콩 현지 회원보다 6%의 수수료를 더 내야 했다. 이 판로를 통해 중국에 진출하는 홍콩 농장주들은 합법적으로 채소를 수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들은 이 판로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들은 선전을 넘어 중국의 여러 다른 성(省)에서 농장을 개간하여 수출용 채소를 재배했다. 이에 따라 '특구산 채소'라는 이름조차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홍콩의 대형마트 및 여타 대형 판매업체와 직거래 계약을 맺는 동시에 신흥 중국 본토 소비시장도 공략의 대상으로 삼았다. 결국, '특구산 채소'라는 이름에서 내재된 '홍콩 독점판매(香港特供)'라는 의미도 사라지게 되었고, 중국인들도 홍콩 소비자와 동일 품질의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생산 확대와 판로 다변화라는 이중적 변화로 인해 신계산 채소를 도매하는 통영처의 기능은 미미해졌으며, 수입산 채소의 도매가 오히려 통영처의 주요 업무가 되었다. 현재 통영처를 통해 판매되는 신계산 채소의 출하량은 전체 출하량의 1.3%에 불과하며, 이는 홍콩의 채소 자급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사진 3. 중국 닝샤(宁夏)에서 홍콩 수출용 초이섬 재배의 장면4)
따라서 '농약에 오염된 초이섬' 사건과 같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홍콩 사회에서 오명화되고 타자화되었던 '특구산 채소'는 결국 홍콩의 대중 채소 소비시장을 점령함으로써 홍콩의 농식품 시스템을 통제에서 규제로 전환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현재 홍콩 채소통영처는 기존 공설도매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역 채소 재배의 유지와 발전을 도모하고 안전한 먹거리와 유기농법 등 대안적 도시농업을 보급하는 것을 핵심 업무로 삼고 있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중문 원본은 다음 책 참조: 周思中 著,『夕陽的光:誰說香港沒有菜園』, 香港: 藝鵠有限公司. 2022
2) 앞 책, 117쪽.
3) 앞 책, 135쪽.
4) 앞 책,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