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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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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주민들은 어느 정당을 지지할까? _ 김명준

대만의 총통선거와 입법위원(立法委員)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과 달리 대만은 대만 총통과 한국의 국회의원 격인 입법위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며 4년을 주기로 한다. 미중 경쟁과 양안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 향후 대중국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번 대만 총통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대만 각지에서는 벌써부터 각 정당들의 열띤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

 

대만 선거와 관련해 외부인들은 대만 사람들의 인구 구성을 보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국공 내전 이후 장제스의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들어온 외성인 출신은 대체로 국민당을 지지하고, 명청 시기 대만으로 이주한 이들의 후손인 본성인 출신은 민진당을 지지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수십 년간의 계엄령과 2.28사건 등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갈등이 격화됨에 따라 부각된 부분이 크다. 오히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다양해짐에 따라 자신이 본성인이냐 외성인이냐보다는 유권자의 연령이나 거주지, 계층, 종사하는 업종 등이 선거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한편, 대만에는 내/외성인 뿐만 아니라 대만 원주민들 또한 존재한다. 이들은 중국 대륙에서 사람들이 건너오기 전부터 대만 섬을 지키고 있었으며 사실상 대만 섬의 본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구수나 사회적인 위치에서 대만 사회의 비주류를 차지하고 있기에 많은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실제로 우리는 엄연한 대만 사회의 구성원들인 대만 원주민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없다. 이들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며 어떤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과거 대만 원주민 선거구의 결과를 보면 국민당이 민진당보다 우세를 점해왔다. 일례로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차이잉원(蔡英文) 현 대만 총통은 전국 55개의 원주민 지역(原住民族區) 중 난터우현(南投縣)의 위츠향(魚池鄉)과 핑둥현(屏東縣)의 만저우향(滿州鄉)에서만 승리를 거머쥐었으며 나머지 53개 지역에서는 모두 국민당에게 패배했다. 실제 정당활동을 하고 있는 대만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현지에서 대만 원주민들은 국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지인들은 모두 국민당이 원주민들에게 잘해왔기 때문이라는 비교적 추상적인 대답을 했다. 이에 필자는 과거 본성인들이 뒤늦게 대만에 들어온 국민당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 들어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원주민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원주민들이 민진당을 지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만 원주민들의 교육 수준이 낮아 어쩔 수 없다는 상당히 인종차별적(?)이고 충분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그럼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대만 원주민 지역에서 국민당이 더 많은 표를 얻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만 원주민들은 왜 국민당을 지지하는가? 이들은 어떤 판단에 의해 투표에 참여하는가? 본 글에서는 대만의 원주민 입법위원 선거 제도를 통해 이를 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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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2020년 총통 선거 당시 지역별 투표 현황.

파란색은 국민당이 승리한 지역, 녹색은 민진당이 승리한 지역을 의미한다

오른쪽 파란색으로 칠해진 부분의 대부분은 원주민 지역이다.

  

대만 원주민 입법위원 선거제도

대만 원주민들의 투표 경향을 소개하기에 앞서 일반적인 대만 국민들과는 다른 대만 원주민들의 입법위원 선거 제도를 먼저 설명해야겠다. 대만에는 총 113명의 입법위원이 선출되며 이들은 73명의 지역구 위원과 34명의 비례대표 위원, 그리고 6명의 원주민 위원으로 구성된다. 6개의 원주민 의석은 다시 산지(山地) 원주민 3, 평지(平地) 원주민 3석으로 나뉜다. 대만의 일반적인 유권자들이 한국과 비슷하게 지역 선거구를 가진 지역구 입법위원에게 표를 던진다면, 대만 원주민들은 자신의 원주민 분류에 따라 산지, 평지 입법위원으로 출마한 이들 중 하나에게 투표한다. 해당 지역에서 표를 가장 많이 획득한 1인이 당선되는 지역구 위원이나 정당의 득표 수에 따라 당선되는 비례대표 위원과 달리 원주민 입법위원들은 특정 지역에서 출마하지 않으며 지역 구분 없이 전국 각지의 원주민들이 던진 표를 가장 많이 얻은 상위 3명의 산지/평지 원주민 후보자들이 당선된다. 쉽게 말해, 본인이 어느 지역에 살든 상관없이 산지 출신의 원주민이라면 산지 원주민 입법위원으로 출마한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후보자들 중 가장 많은 표를 얻는 사람 중 상위 3명이 입법위원으로 당선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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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대만의 입법위원 구성

파란색은 지역구 위원, 붉은색은 비례대표 위원

짙은 녹색은 산지 원주민 입법위원, 옅은 녹색은 평지 원주민 입법위원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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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2020년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한 원주민 후보자들

후보자들 중 민진당 출마자는 우리화(伍麗華) 한 명 뿐이다

당시 집권당이었음에도 후보자를 한 명밖에 내지 않은 점이 이례적이다.

   

왜 민진당은 원주민 선거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까?

그렇다면 원주민 지역의 선거에서 민진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원주민들이 후보자의 정책보다는 자신들과의 관계를, 개인보다는 가족/부족을 중심으로 지지할 후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후보자 선택에서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와 연관이 있는가'이다. , 같은 부족의 사람인지, 자신이 아는 사람인지, 자신의 지인과 혈연관계인지 등이 선택의 주요 원인이며 후보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투표를 한다.1) 선거에 앞서 가족/부족 회의에서 최고령자가 어느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투표일이 되어서는 해당 후보자에게 투표하라는 압박이 가해지는데, 최고령자가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후보자와의 거래에 기반한다. 한 예로, 후보자가 특정 부족의 인프라를 개선해주거나 해당 부족의 어른들에게 선물을 하고, 더 나아가 해당 부족과 연관된 행사를 개최하는 것 등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원주민 선거의 관행은 뇌물 문제로 이어지기도 하며 새로운 정치 신인들이 선거판에 진입할 수 없도록 해 특정 인물이나 정당이 원주민 입법위원을 독점하게 되는 폐단을 낳는다.

 

한편, 가족회의에서 지지할 후보가 결정되었다고 해도 비밀투표의 원칙에 따라 겉으로만 집안 어른들을 따르는 척하고 실제 투표장 안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원주민 선거에서는 비밀선거 원칙의 파괴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다시 말해 개표 이후 해당 유권자가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가 공개됨에 따라 일부 원주민들이 투표장에서 가족/부족의 압박을 느끼며 특정 인물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2)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

 

2023년 기준, 대만 원주민들은 모두 58만 명으로 대만 전체 인구의 약 2.5%만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절반 정도인 28만 명은 원주민 보호 지역이 아닌 곳에 거주하고 있다. 적은 인구수와 전국적으로 넓게 퍼져있는 원주민들의 인구 분포는 특정 투표소에 원주민 유권자가 한 자릿수인 상황을 만들게 되는데 여기서 비밀선거 원칙의 파괴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면 A B 투표소에서 원주민 입법위원에게 투표할 수 있는 원주민 유권자가 1~2명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개표 이후 사람들은 해당 원주민 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입법위원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원주민 선거인 수가 1명에 불과한 투표소는 약 3,600여 개에 달했다.3)

 

그렇다면, 대만 원주민 사회에 만연한 인적 네트워크 중심의 선거구조가 이들의 표심을 국민당으로 향하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대만의 근현대 역사와 관련된다. 과거 계엄령 시기 대만에는 국민당 외에 다른 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당과 정부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았다. 당시 원주민 지역을 관리하던 기층의 정부 관리들은 대체로 국민당원이었고 이때부터 국민당의 기층 관리들은 원주민 행사에 참여하는 등 여러 방법을 통해 해당 지역에서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갖춰왔다. 이미 일정 정도의 관계가 맺어진 상황에서 정책보다는 사람을 보는 원주민들의 선거 경향은 새로운 인물이 현지에서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고, 거기에 현지 기층의 선거구 대표들이 대부분 국민당 소속이니 자연스럽게 국민당이 민진당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주민 보호 지역의 인프라 문제 또한 존재한다. 인터넷이 많이 보급된 세상이지만 원주민 지역의 정보는 여전히 사람을 통해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외부에서의 정보 습득을 제한하며 원주민 선거의 구조적 변화를 어렵게 만든다.

  

국민당 우세 구조의 균열 가능성?

한편, 정책보단 사람 중심으로 투표하는 원주민들의 투표 경향은 반대로 원주민 지역의 국민당 우세 구조에 금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노정한다. 돌이켜보면 국민당에 대한 원주민들의 지지는 원주민들이 국민당의 정책 기조나 정치적 방향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원주민들이 국민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국민당이 우세를 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단지 자기 부족/지인에게 투표하는 과정에서 국민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원주민 지역에서 국민당이 가지고 있는 기반이 사실은 취약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지난 2020년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최초로 민진당 입법위원이 당선되기도 했다. 원주민들의 선거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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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민진당 출신으로는 최초로 원주민 입법위원으로 당선된 우리화(伍麗華).

   

게다가 최근 일각에서는 비밀선거 원칙 파괴 현상을 해결하고 낮아지는 원주민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부재자 투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과 달리 대만은 부재자 투표나 사전 투표를 실시하고 있지 않은데, 부재자 투표를 주장하는 이들은 부재자 투표가 투표를 위해 유권자가 자신의 본적지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없앨 뿐만 아니라 투표 장소를 유동적으로 만들어 유권자의 선택이 공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대만 총통과 더 많은 의석수를 획득한 정당만을 본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곳에서 원주민들의 선거 또한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원주민 선거에서 일고 있는 미약한 변화의 바람은 대만의 정치가 변해왔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월 말 기준, 대만의 총통선거와 입법위원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어떤 이변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며 그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국민당은 민진당의 연이은 집권을 저지할 수 있을까? 반대로 민진당은 국민당의 아성인 원주민 지역을 무너뜨릴 수 있까? 그저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다.


  

김명준 _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동아연구소 박사과정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https://www.twreporter.org/a/indigenous-iron-vote-relationship

2) https://www.twreporter.org/a/data-reporter-indigenous-people-ballot-flashing-crisis

3) https://www.twreporter.org/a/data-reporter-indigenous-people-ballot-flashing-crisi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zh.wikipedia.org/zh-tw/2020%E5%B9%B4%E4%B8%AD%E8%8F% AF%E6%B0%91%E5%9C%8B%E7%B8%BD%E7%B5%B1%E9%81%B8%E8%88%89

그림 2. https://ccw.org.tw/news/qa-3

그림 3. https://tw.news.yahoo.com/poll/0a0e81b0-1519-11ea-b2ab-4f0f3e631af3/

그림 4. https://news.ltn.com.tw/news/politics/breakingnews/3043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