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2일 현대중국학회와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가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이라는 대주제로 공동 주최한 학술행사에 참석했다. 시진핑 정부 3기의 출범과 ‘코로나 19’라는 팬데믹 정세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국제질서의 변화를 경유하면서 중국 정치경제 구조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또 이와 맞물려 다양한 사회적 주체의 행위 양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다방면으로 심도 있게 탐구하는 자리였다. 특히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했던 제3세션은 문화인류학과 사회학 전공자 세 명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는데, 최근 중국의 정치경제적 구조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주체의 분화 과정 및 역동성을 가장 풍부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는 필자의 연구 관심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아직은 서툴고 거친 단상에 불과하지만 향후 연구를 위한 사전 작업의 차원에서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구조적 정세의 변동과 주체적 행위 양식 변화의 맞물림
우선 세 발표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먼저 정해영(서울대 인류학과 박사)의 “거저 주지 않는 국가: 재정착 주택의 주거관리와 토지상실 농민의 시민권 실천”이라는 제목의 발표는 도시개발로 토지가 수용된 이후에 톈진시 교외의 신도시에 재정착한 덩리촌 주민들의 사례를 통해 토지상실 농민들이 국가에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적 행위자로 주체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재정착 과정에서 새롭게 도시민 신분을 획득한 농민들이 어떻게 공공서비스, 도시 인프라 공급, 사회보장 등과 관련된 권리 의식과 개념을 전유하고 있으며, 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떻게 국가와의 관계성을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김란(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 청년의 탈(脫)호명 정치: 후랑(後浪) 현상과 따공런(打工人) 정체성을 중심으로”는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나타난 중국 청년들의 정체성 변화를 권력이 호명하는 주체화 방식에 대응하는 ‘탈호명의 정치’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 즉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 5월 3일 다양한 매체에 공개된 ‘후랑 동영상’이 중국 청년들을 상류층 소비자라는 특정한 정체성으로 호명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따공런 담론’(주로 대졸 사무직 청년들이 자신들을 육체노동자나 빈민과 동일시하는 현상)에 주목하여 향후 중국 청년들의 저항적 실천의 잠재성을 포착한다. 마지막으로 유빙(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의 “대두되는 중국 청년의 종교적 실천: ‘네이쥐안(内卷, involution)’ 하의 ‘희망의 원리’”는 무한경쟁의 사회구조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최근 확산하고 있는 중국 청년들의 기복신앙 성격의 ‘종교 붐’ 현상의 구조적 배경 및 실천 양식과 그 함의를 분석한다. 즉 중국 청년들의 종교적 열광을 소비주의와 종교 상업화, 그리고 사이버문화의 부상 등 사회문화적 현상과 연계하여 그 다층성 및 복잡성을 드러내며, 이러한 종교적 실천을 ‘자기 구원’이라는 능동적 희망의 원리이자 저항의 계기로 볼 수 있을 것인지를 탐색한다. 이들 세 발표는 각각의 개별적 연구 차원에서도 물론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이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중국과 주체의 역동성’이라는 큰 질문 속에서 향후 ‘비판적 중국(사회) 연구’의 나아갈 방향을 더욱 풍부하게 사유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준다.
사회적 주체의 분화: 중첩과 혼종, 탈경계화
먼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 간 불균등 발전과 도농 및 계층 간 격차, 그리고 농민공과 토지수용 문제 등을 설명할 때 이제까지 주로 제기되었던 ‘호구 제도에 기초한 도시-농촌 이원구조’라는 분석틀의 유효성에 관한 재고의 필요성이다. 이는 2010년대 이후부터 중국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농민공의 시민화’를 목표로 한 새로운 도시화 발전전략과 호구 제도의 개혁으로 이제 ‘도농이원구조’가 해체되었다거나, 이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더는 ‘도시/농촌, 농민/(신)시민, 농민공/(신)빈민’이라는 이원대립적 범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주체들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덩리촌 주민들의 사례처럼 토지상실 농민들은 신도시에 재정착하는 과정에서 농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여전히 간직하면서도, 도시주민으로서 요구되는 권리나 의무의 측면에서 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정체성이 지방정부나 국가, 지역주민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협력으로 변주되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는 ‘따공런 담론’의 유행에서 볼 수 있듯이 고학력 화이트칼라 청년과 저임금 육체노동에 주로 종사하는 농민공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으며, 열악한 취업 및 주거환경 속에서 (신)빈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삶의 불안정을 일부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러한 혼종적 주체로의 분화 과정을 제대로 포착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도 기존의 ‘도시/농촌, 농민/(신)시민, 농민공/(신)빈민’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서는 새로운 분석 도구와 방법론이 필요해 보인다.
사회적 주체의 역동성: 분열과 균열, 접합
한편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사회적 주체들의 혼종성은 또 다른 분열과 균열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토지상실 농민과 농민공은 아무리 도시에 거주하고 제도적으로 비농업 호구로 전환되어도 여전히 완전한 도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소양을 끊임없이 의심받는다. 그렇기에 도시에도 농촌에도 완전히 귀속될 수 없는 분열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이로 인해 사회의 질서와 안정에 균열을 가하는 불화의 존재로 인식되곤 한다. 그리고 고학력 무직자나 화이트칼라 청년들의 농민공 혹은 빈민과의 자조적 동일시는 한편으로 현재의 불공평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비판의 계기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의 승패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라는 논리에 기초한 균열선이 이미 내장된 것이기도 하다. 즉 고학력 엘리트 출신인 ‘우리’와 농민공 혹은 빈민인 ‘그들’은 애초에 다른 존재이며 따라서 사회경제적 처우도 달라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좌절과 무력감의 표출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학력 엘리트 청년들이 무한경쟁과 열악한 취업환경 및 불공평한 분배체계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아닌, 나만은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고 좋은 직장과 경제적 성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종교적 실천’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 농민과 시민, 농민공과 고학력 빈민의 경계를 횡단하는 이러한 혼종적 주체들이 빚어낸 분열과 균열의 틈새로 또 어떤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생겨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이들 혼종적 주체들이 다양한 사회적 공간과 영역에서 어떻게 접합되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지의 역동성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정규식 _ 성공회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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