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국요리에는 ‘해삼쥬스’라는 요리가 있다. 얼핏 해삼의 즙(juice)으로 오해될 수 있는 이 요리는 중국명 ‘하이션저우즈(海蔘肘子)’이다. 한자 발음으로는 ‘해삼주자’이지만, 독특한 한국의 중국요리이름 표기에 따라 ‘해삼쥬스’로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표기법은 일정한 규칙 없이 때론 한자발음으로 표기되는가 하면 때론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하고 때론 개연성조차 추측하기 힘든 형태의 표기가 섞여 있기도 하다. ‘해삼쥬스’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하는데 ‘해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삼이고 ‘쥬스’는 아래의 사진처럼 ‘식재료가 될 돼지의 다리’를 말한다.
사진 1 저우즈(肘子)
중국요리의 ‘하이션(海蔘)’ 즉, 해삼은 모두 말린 과정을 걸친 건(乾)해삼을 사용한다. 이 건해삼은 다시 물에 불리는 과정을 거쳐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는데 이 과정이 매우 섬세해서 숙련된 경력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불순물 유입에 주의하면서 삶는 과정과 식히는 과정 그리고 헹구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은 최소 3일 이상 걸리고 혹시라도 불순물이 유입되면 해삼이 눅거나 과정이 숙련되지 않으면 해삼이 원하는 크기로 불지 않으면서 그 식감과 맛을 잃게 된다. 때문에 한국의 중국요리에서 가장 정성을 쏟는 재료 중 하나이다. 해삼은 세계 8대 진미(珍味) 중 하나이면서 인삼(人蔘), ‘제비집’(옌워: 燕窩), ‘샥스핀’(위츠: 魚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특히 한국의 인천과 중국의 자오둥반도(膠東半島) 사이, 즉 서해(혹은 황해)의 해삼이 가장 귀하다. 이 해역의 해삼이 건조 과정을 거치면 1kg에 1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데, 중국요리의 최고 재료로 사용된다. 이 해삼으로 요리를 가장 잘하는 곳이 바로 자오둥반도이다.
사진 2 건해삼
사진 3 물에 불린 건해삼
‘해삼쥬스’는 루차이(魯菜)의 고급요리 즉, 따젠(大件)이다. 요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삼’과 ‘저우즈(肘子)’로 이루어진 요리이다. 특이하게도 두 재료를 같이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따로 조리가 된 두 요리를 하나로 합치는 형태이다. 다시 말해 해삼요리를 조리된 저우즈(肘子) 위에 덮는 요리이다. 이 두 요리는 각각 ‘홍샤오하이션(紅燒海蔘)’과 ‘홍샤오저우즈(紅燒肘子)’이다, 이 두 요리는 역시 루차이(魯菜)의 따젠(大件)에 속한다.
홍샤오(紅燒)는 중국 ‘8대 요리 계통(八大菜系)’에서 흔히 사용되는 조리 방법이다. 쉽게 말해서 ‘볶으면서 붉게 졸여내는’ 기법이다. 여기서 ‘홍(紅)’은 짙은 갈색에 가까운 붉은 색을 말한다. 중국 남쪽 요리를 대표하는 광둥요리(粤菜)에서는 ‘라오초우(老抽, 진한 색을 내는 싱거운 간장)’를 사용하여 색을 내지만 루차이(魯菜)에서는 간장과 ‘당살(糖色兒)’을 사용하여 색을 낸다. ‘당살(糖色兒)’은 루차이에만 있는 독특한 조리기법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마탕 즉, ‘빠쓰(拔絲)고구마’의 갈색 설탕물 같은 것이 바로 ‘당살(糖色兒)’이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캐러멜 색소(Caramel color)’이다. ‘당살(糖色兒)’은 원래 약재로 사용하는 얼음사탕 즉, 빙당(氷糖)을 물에 가열하여 만들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정제된 설탕을 사용한다. ‘당살(糖色兒)’을 사용하는 이유는 식욕을 돋우는 색과 광택 그리고 단맛을 내기 위해서이다. 짜장면의 장(醬)에 ‘캐러멜 색소’를 첨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샤오(燒)는 소스나 양념이 재료에 깊게 스미게 하는 기법으로 볶은 후에 살짝 졸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조리된 ‘해삼’과 ‘저우즈(肘子)’는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사진 4 홍샤오하이션(紅燒海蔘)
사진 5 홍샤오저우즈(紅燒肘子)
먹기 좋게 썬 홍샤오저우즈(紅燒肘子)를 대접에 깔고 그 위에 홍샤오하이션(紅燒海蔘)을 올리면 완성되는 ‘해삼쥬스’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해삼과 기름지면서 느끼하지 않은 저우즈(肘子)가 식순에 지루해진 연회참석자들의 속을 든든하게 하여 술이 잘 받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에피타이저인 냉채 다음으로 나오는 첫 메인 요리라는 특징이 있다. ‘해삼쥬스’가 나오면 함께 잔을 들어 건배하는 습관도 있다. ‘해삼쥬스’는 자오둥반도 룽청(榮城)을 대표하는 요리이다. 상당수의 한국 화교들의 본적이 룽청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중국요리에 ‘해삼쥬스’가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옌타이(煙臺)에 ‘취엔지아푸(全家福, 전가복)’이 있다면 룽청에는 ‘해삼쥬스’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토대로 중국에서는 이 두 음식으로 지역의 연회를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화교사회에서는 이 두 음식이 연회에서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한국 화교가 옌타이 지역과 룽청 지역에 본적을 두고 있고 이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6 하이션저우즈(海蔘肘子)
한국의 화교사회는 원래는 다른 중국의 문화를 통합하여 함께 표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음식문화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전형적으로 루차이에 속하는 ‘해삼쥬스’에서 광둥요리가 섞여져 있는 경우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해삼쥬스’는 홍샤오하이션(紅燒海蔘)과 홍샤오저우즈(紅燒肘子) 두 요리가 합쳐진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중국요리에서는 홍샤오저우즈가 아닌 홍샤오커우러우(紅燒扣肉)로 된 ‘해삼쥬스’가 대부분이다. 홍샤오커우러우는 광둥요리이다. ‘커우러우(扣肉)’는 ‘삶은 삼겹살을 튀긴 다음 장방형으로 납작하게 썰어서 다시 찐’ 요리이다. 이것을 홍샤오(紅燒) 기법으로 요리하면 홍샤오커우러우(紅燒扣肉)가 된다.
사진 7 홍샤오커우러우(紅燒扣肉)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요리의 식자재들이 대량생산화 되면서 한국으로도 수입이 되기 시작했다. ‘해파리’, ‘죽순’, ‘양송이’, ‘가공된 돼지고기’, ‘가공된 돼지갈비’, ‘굴소스’, ‘XO소스’, ‘두반장’ 등 대부분이 광둥요리에서 사용되는 소스나 식자재들이다. 이 때 ‘가공된 돼지고기’가 바로 홍샤오커우러우(紅燒扣肉)이다.
사진 8 가공된 돼지고기 홍샤오커우러우
‘해삼쥬스’는 연회음식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평상시에는 잘 먹을 수 없는 요리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예약주문을 하거나 결혼식에서나 먹을 수 있던 요리였다. 그러나 광둥요리 위주의 식자재가 대량으로 수입되고 유통되면서 어느덧 홍샤오저우즈가 가공된 홍샤오커우러우로 대체되었고, 최고의 재료인 해삼은 값싼 동남아 해역의 해삼으로 대체되었다. 지금은 ‘가공된 돼지고기’의 수입이 금지되면서 대부분이 홍샤오커우러우를 식자재 공장에서 주문하여 사용한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해삼쥬스’는 아래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사진 9 현재의 해삼쥬스
현재 한국의 중국요리는 루차이에 속하는 요리가 많기는 하지만, ‘해삼쥬스’와 같이 식자재의 유통 변화와 경제성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한국 중국요리의 전통으로 생각한다면 자오둥반도의 루차이(魯菜) 전통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22】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수료 / 인천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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