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하여 말할 때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혐중과 탈중국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혐중과 탈중국 주장이 일상화되어 있다.
1992년 수교 이후 급속하게 발전했던 한중관계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2004년부터 시작된 역사 문제를 둘러싼 논쟁, 2005년 강릉단오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이후 촉발된 양국 사이의 문화논쟁, 그리고 2016년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와 그에 대한 중국의 보복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양 국민의 상호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인식이 급증했다. 현재 우리에게 일상화된 혐중은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중 충돌과 세계적인 중국 이탈 움직임에 더해져 우리의 과도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탈중국론이 제기되고 있다. 거기에 시진핑 3 연임과 권위주의 강화 그리고 중국의 강대국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외적인 강경한 태도도 우리의 부정적 중국 인식과 탈중국 주장의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
관계가 늘어나고 확장될수록 그만큼 그림자도 많아진다는 점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증대와 탈중국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관계가 밀접해지는 만큼 차이도 드러나고 충돌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제기되고 있는 혐중과 탈중국 주장은 지나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역사적인 한중관계는 물론 현실적인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중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였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어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는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며 우리의 문화와 풍습도 상당한 부분이 중국에서 기원하고 있다. 중국에서 기원한 많은 것이 우리에게 전파되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토착화되어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된 것이다. 우리 문화와 역사의 발전은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현대 시기 이념과 전쟁으로 인하여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1992년 수교 이후 중국은 한국의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동반자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은 2004년부터 우리의 제1 교역국이 되었고 2011년 이후에는 한중 교역이 한미 교역과 한중 교역의 합을 넘어 우리 총무역의 1/4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교역국이 되었다. 사실상 중국과의 간접 무역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과의 교역을 포함하면 대중 교역이 우리 무역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갑자기 적자로 전환되었지만, 수교 이후인 1993년부터 2022년까지 대중 무역은 막대한 흑자를 거두었으며, 우리가 1997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도 성장하는 신흥 중국과의 관계가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최근 우리의 급속한 발전과 번영은 중국과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한중 수교 이후 남북관계가 북핵 위기 등으로 인한 굴절이 있었지만, 극단적 충돌을 피하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었던 것도 발전을 위해 안정적인 주변 환경이 필요했던 중국의 역할과도 관련되어 있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은 북한에 경도되어 있었지만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 조성이라는 근본적인 이익을 우리와 공유하였다.
그러고 보면 수교 후 30년간 굴절은 있었지만 중국은 우리의 발전에 불가결한 요소였고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의 발전과 초강대국으로 부상은 경제적 관계를 포함한 지금까지의 한중관계를 조정하게 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우리의 번영과 발전과 평화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며 이후에도 그것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없는 우리의 발전과 번영과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우리 문화 발전을 위한 중요한 원천이었으며, 수교 이후 중국은 우리의 발전과 평화를 위한 중요한 동반자였다.
중국의 초강대국으로의 성장은 한중관계의 조정을 필요로 하며 미중 충돌 국면은 그것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은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경쟁과 위협의 상대로 보는 인식이 증대되고 있으며, 우리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공포도 존재한다. 미중 충돌 국면에서 미국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는 인위적인 탈중국과 경제적 군사적 중국 견제는 우리의 선택을 더욱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냉전과 달리 미국과 중국을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며 양자택일해서도 아니 된다. 현재 우리의 발전과 평화에는 미국과의 관계만큼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은 어느 때보다도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의 필요성을 크게 하고 있다. 중국의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안전에 대한 영향이 그만큼 크기에 복잡한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탈중국을 말하고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자기 이익을 위한 협력과 교류를 줄이지 않는다. 스스로 자기 이익의 입장에서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을 알기 위한 중국 연구 지원도 급증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혐중과 탈중국을 외치면서 마치 더 이상 중국과의 관계가 필요 없는 양, 중국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는 양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초강대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이자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서 우리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자 우리의 발전과 평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중국이 양이라면 양, 늑대라면 늑대와 잘 지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우리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원장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thediplomat.com/2022/07/the-limits-of-chinas-economic-leverage-over-south-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