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테마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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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시기와 가장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대만 _ 김명준

#1

우리는 ‘Nobody’에서 ‘Somebody’가 되었어.”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대만 친구 A가 말했다. 평소 외국 정치인들의 대만 방문이 외려 대만 해협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대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 말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몇몇 대만인들에게 최근 들어 증대된 각국의 지지와 관심은 국제사회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Nobody) 대만이 하나의 국제사회의 일원(somebody)으로 인정받는 것과 같다.

 

#2

요즘 젊은이들은 전쟁의 무서움이 어떤지 몰라요. 내 자식들,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권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게 한켠에서 뛰어놀고 있는 손녀를 바라보며 대만의 한 해산물 식당의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테이블에서 정치이야기가 들리자 음식을 가져다주시다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드셨던 아주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고조된 대만해협의 상황을 매우 불안해하셨다.

 

필자가 대만에서 겪은 위 두 가지 상황은 오늘날 대만이 “‘가장 좋은 시기最好的時代이자 가장 위험한 시기風險最高的時代를 지나고 있다는 왕신셴(王信賢) 국립정치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의 지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왕신셴은 미중간 전략 경쟁 속에서 대만 문제가 중국의 핵심 이익과 얽혀 국제사회가 대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시기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이 대만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 확신할 수 없고 동맹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말한다.1)


중국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을 위해 대만이 필요하고,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중국을 압박할 수단으로 대만이라는 카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양안 관계는 중국과 대만이라는 양자간 관계를 넘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국가전략과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구조 속에 얽혀들어(鑲嵌-embedded)갔다.”2) 그리고 이에 따라 양안관계에서의 대만의 외교적 자율성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대만은 그 어느 때보다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제한적인 상황에서 대만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 대만 내부에서는 어떤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을까?


대만인들의 자기 정체성과 대만 독립에 대한 생각


양안관계에 대한 대만 내부의 상황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참고해 볼 수 있는 것은 대만인들의 자기 정체성과 대만 독립에 대한 생각이다.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선거연구센터가 오랜 기간 조사해온 자료에 따르면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그래프 1)은 이 조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해왔다. 반면, 자신을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1992년 처음 조사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후자의 비율이 더 높았으나 2000년대 중반, 처음으로 대만인의 정체성이 대만인과 중국인정체성을 넘어섰고, 이후로도 그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나타나는 주요 원인으로는 중국을 경험하지 못하고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세대가 점점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19년 이후 대만인정체성은 급증하였으나 대만인과 중국인으로의 정체성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홍콩 시위와 같은 대외적 요인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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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1. 대만인들의 대만인/중국인 정체성 조사(19926- 20226)

 

다음으로, 통일과 대만 독립에 대한 대만인들의 인식에 대한 조사(그래프 2)를 보면 시기에 따라 변화를 거쳐왔으나 전반적으로 현상유지에 대한 주장이 주류임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과 독립에 대해 현 상황 유지 및 추후 결정(維持現狀再決定)’ 항목은 매 조사마다 가장 많은 응답을 기록했다. 한편 영원한 현상유지(永遠維持現狀)’라는 응답이 꾸준히 증가하여 2022년 조사에서 처음으로 현 상황 유지 및 추후 결정을 넘어 가장 많은 응답을 기록했다. 2019년 이후 독립에 대한 지향(偏向獨立)’이 급격히 증가한 것도 눈에 띄는데, 이 역시 앞선 그래프 1에서 나타난 대만인들의 정체성 조사와 마찬가지로 홍콩 시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오랜 시간 동안 대만인들의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꾸준히 감소해온 것에 반해 대만인으로의 정체성은 계속해서 증가해왔으며 독립보다는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대만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독립이라는 의제는 더 이상 대만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대만은 이미 명확한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법리적인 의미의 독립선언은 중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올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양안관계에 대한 문제의 초점은 통일과 독립이라는 이분법적인 틀보다는 탈중국화(去中國化)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이전부터 대만은 꾸준히 대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중국 문화와의 단절을 추구하는 탈중국화 정책을 펴왔다. 단적인 예로, 고교 역사과목에서 중국사동아시아사로 편입되고 400여 년의 대만()의 역사를 다룬 대만사가 신설된 점을 들 수 있으며, 올해 중화민국 111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국경일 경축 대회에서도 차이잉원(蔡英文) 현 대만 총통은 대만에 자리를 잡은 지 73년째 되는 국경일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중국 본토부터 이어져온 역사와 대만의 역사를 구분했다. 탈중국화와 중화문화로의 회귀에 대한 각각의 주장은 향후 양안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든 대만 내부에서 첨예한 대립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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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2. 대만인들의 통일/독립에 대한 생각(199412-20226)

 

11월 대만 지방선거와 양안관계의 관계


대만 내부의 변화와 관련해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는 지난 1126일에 있었던 대만의 지방공직인원 선거다. 직할시의 시장과 의원, 성급 및 현급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9개 직위를 한 번에 선출한다고 해서 구합일선거(九合一選舉)라고 불리는 이번 선거는 현 차이잉원 총통의 4년 임기 중 2년째 되는 시기에 열렸기 때문에 민진당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여겨진다. 이 선거에서 민진당은 총 22개 현·시중 총 14석을 국민당에게 내주며(민진당은 5) 대만 북부 지방을 단 한곳도 차지하지 못했으며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이번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직에서 사퇴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 결과는 양안관계와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일각에서는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른 대만해협 위기와 20차 당 대회에서 대만에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시진핑의 강경한 발언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었으며, 민진당의 항중보대(抗中保台 - 중국에 대항하여 대만을 보호한다)’ 주장이 대만 국민들에게 더 이상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이번 선거가 양안관계 변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양안관계와 대중 정책 전환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먼저, 이번 선거의 의제는 양안관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안관계는 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만큼의 주요 의제였다고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선거가 대미·대중·대북관계와 같은 외교정책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듯 대만 선거도 마찬가지다. 대중 정책은 여러 의제 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이며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뜨거웠던 문제는 민진당 후보자들의 논문 표절 의혹이었다. 거기에 더해 2022년 대만의 올해의 한자로 '오르다'라는 의미의 ''자가 선정되었을 만큼 크게 오른 부동산 가격과 물가는 민진당 정부에 대한 대만인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대만의 1인당 GDP가 한국과 일본을 앞질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대만 내 빈부격차는 크게 심화되었으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수많은 가게가 문을 닫아 타이베이 상가 곳곳이 임대()’로 도배되었을 만큼 자영업자들의 상황 또한 좋지 못하다. 이번 선거에서 양안관계에 대한 논의는 민생 문제보다 후순위였으며 민진당의 패배라는 선거 결과는 무능하고 부패한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경고이자 심판의 성격이 더 짙었지, 양안관계와 관련된 의제는 부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통해 2024년에 있을 대만 총통 선거의 결과를 예단하거나 대만인들의 대중 정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대만 국민들이 어떤 이유로 투표를 행했는지 와는 별개로 이번 선거 결과는 향후 양안관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야당인 국민당은 선거 결과를 토대로 민진당의 대중정책 수정을 계속해서 요구할 것이며 여당인 민진당은 다음 총통 선거에서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급진적인 반중정책에 수정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현 대만 부총통 라이칭더(賴清德)는 며칠 전 가오슝에서 행한 연설에서 항중보대(抗中保台)’항중평화로 바꿔 대만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이며 어떤 국가도 대만을 침략할 수 없다는 의미의 평화보대(和平保台)’를 언급했다.3) 향후 민진당이 대중정책을 어떻게 수정해 나갈지 또한 주목해봐야 하는 문제이다.

 

대만은 어떠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글의 초입에서 언급했듯 오늘날의 양안관계는 중국의 국가 대전략과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속에 얽혀있는 상황이며 이 구도 속에서 대만의 외교적 자율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양대강국에 의해 짜인 구도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만(사회)은 상황 전환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때보다 높아진 대만에 대한 관심을 이용하여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넓혀가고 자신을 국제사회의 Somebody로 자리매김하려 노력하는 한편, 역설적이지만 중국의 태도를 바꾸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통일에 대한 중국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소한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이나 제재를 막기 위해 노력하며 시진핑 이후 시기의 도래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갈수록 강해지는 대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고려할 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2022년은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한국과 대만이 단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대만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우리에게 대만은 잊힌 과거의 친구이자 하나의 ‘nobody’였다. 하지만 한국 또한 미중경쟁의 맥락 속에 자리하고 있기에 대만해협의 위기는 대만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인 지정학적 중간국이라는 상황에 처해있으며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외부자의 시선에서 대만인들의 정체성이나 대만의 정책을 함부로 재단하기보다는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대만의 상황을 한국의 맥락과 비교해 보면서 연대하는 것이 대만해협 위기와 더불어 21세기 신냉전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김명준 _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동아연구소 박사과정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王信賢2022"鑲嵌在中國兩個大局的兩岸關係習近平時期中共對台政策解析"載於吳玉山寇健文王信賢主編,『一個人或一個時代習近平執政十週年的檢視』:333-360台北五南p. 356.

2) Ibid.

3) 王昭月, "賴清德若無威脅 更盼和平保台", 聯合報, 2022.12.25, A4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래프 1. 資料來源國立政治大學選舉研究中心重要政治態度分佈趨勢圖, https://esc.nccu.edu.tw/PageDoc/Detail?fid=7804&id=6960

그래프 2. 資料來源國立政治大學選舉研究中心重要政治態度分佈趨勢圖, https://esc.nccu.edu.tw/PageDoc/Detail?fid=7805&id=6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