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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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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홍콩인들의 여정 _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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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오래된 홍콩 건물의 우편함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이들의 우편함은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내년에 홍콩을 떠나 영국에 정착할 예정이야.” 얼마 전 나의 홍콩 친구 B로부터 담담한 이민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결심했던 것처럼 B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동요하고 말았다. 이민이라는 큰일을 앞둔 B의 무던함이 오히려 나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B는 내게 참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다. 우리는 2015년 여름 혼잡했던 자카르타에서 처음 만나 낯선 반둥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고, 2016년 홍콩에서 재회했으며, 2017년 내가 홍콩에서 현지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B는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홍콩 현지인이었고, 내 연구와 관련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집과 광동어를 가르쳐줄 선생님까지 기꺼이 소개해주었다. 홍콩에서 맞이했던 모든 처음에 B가 있었다. B가 베푼 호의는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내게는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종종 방문할 홍콩에 이제는 B가 없을 거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2021년 중반에서 2022년 중반 사이에 약 11만 명이 홍콩을 떠났다. 이 영향으로 홍콩의 인구는 1.6% 줄었다. 이는 기록이 시작된 1961년 이래로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정부는 자연적인 인구감소도 포함되었다고 설명했지만, 2019년 이후의 두드러진 인구감소에 이민이 미친 영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내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그렇다. B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 몇몇도 홍콩을 이미 떠났고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은 대만과 호주에 정착해 힘겨운 비자발급 절차를 경험하거나, 계속 그곳에서 머물며 살아갈 수 있는 생계수단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새로운 집을 찾는 홍콩 사람들의 여정은 이미 본격화되었고, 지금 당장 떠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떠날 것을 염두에 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홍콩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CNA의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서 3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받은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초에 공개된 “One Way”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이 가족이 영국에 도착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담아 화제를 모았다. 홍콩에서 교사와 버스 기사로 일하며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던 부부는 두 아이의 미래를 위해 홍콩의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 이민 길에 올랐다. 홍콩에서 저축한 돈을 생각보다 빠르게 소진한 부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교사로 일했던 아내는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버스 기사로 일했던 남편은 배달 노동자가 되었다. 홍콩에서 전문직에 종사했더라도 영국에서는 공장 노동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이민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시간이 흘러 아내는 운이 좋게도 홍콩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하는 영국 에이전시에 사무직 노동자로 취업하게 된다. 남편은 영국에서 통과하기 어려운 버스 기사 시험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인 B의 부부는 영국 정착 초기에 일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고 현지 생활에 적응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홍콩에서 집을 처분한 돈과 저축한 돈을 가지고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버티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동시에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마음의 준비는 전문직이었던 홍콩의 경험이나 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비를 의미한다.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가 될 마음의 준비 말이다.



홍콩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200만 명이 거리로 나섰던 2019, 정부가 시민들과 소통할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말한다. 이런 홍콩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고 말한다. 영국으로 떠난 사람들은 영국의 엄마들이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모습에 감탄하고, 영국인의 정중함을 칭찬한다. 영국의 교육은 홍콩의 교육보다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는다. 보다 나은 삶의 이상을 믿고 영국에 정착하는 것이다. 그 이상을 위해 오랫동안 해온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을 기꺼이 감수할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영국은 많은 홍콩 이민자들이 향하는 국가이다. 이민자들은 자유, 민주, 법치가 있는 영국을 상상한다. 하지만 지구상의 어떤 곳이든 그곳만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듯이 영국도 마찬가지다. 브래드 미카코의 <아이들의 계급투쟁>과 대런 맥가비의 <가난 사파리: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를 읽고 영국인과 이주민 모두 계급의 문제에 있어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영국을 마주한 적이 있다. 두 책은 각각 영국의 하층민 지역에 위치한 보육시설에서 만난 영국인과 이주민, 가난한 지역에서 태어나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올라탈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영국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인 영국인 아이들과 이주민 아이들은, 축소되고 있는 보육 지원의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긴장 관계를 조성한다. 가난에 개입하려는 다양한 행위 주체들은 좌우의 이념 갈등 속에서 가난한 사람을 대상화하는 우를 범한다.


물론 두뇌 유출을 우려할 정도로 교육수준이 높고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 홍콩 이민자들의 사례와 두 책의 이야기는 다소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람들만 이민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젊은 활동가들 역시 홍콩을 떠나고 있다. 이들의 여건은 가족 단위의 이민자들과 재정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초기의 경제적 자원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들의 이민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가난에 빠지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게 빠지게 된 가난은 한 사람의 일생에 지울 수 없는 얼룩처럼 오랫동안 곁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꺼이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었던 B와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많은 홍콩인들에게 영국뿐만 아니라 이들이 향하는 국가 모두 호의로 가득한 신세계이길 바란다.



지금 여기홍콩 5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ALMOND LI, 12 August 2022, “Over 113,000 residents left city in 12 months, as Hong Kong sees largest mid-year population drop on record”, HKFP.

One Way Ticket Out Of Hong Kong: Our Family's Journey | One Way - Part 1, CNA Documentary (2022. 3. 18. CNA Indsider 유튜브 채널)

Finding A New Home After Leaving Hong Kong | One Way - Part 2 | CNA Documentary (2022. 3. 28. CNA Indsider 유튜브 채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unsplash.com/photos/OsdTy9rHB5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