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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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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중공팔로군계모략단 일동회사건 자료》의 소개 (7) _ 이정희

경성지방법원형사사건기록 268~270문건 가운데 인천차이나타운 소재의 의선당(義善堂)을 촬영한 사진이 있다. 왕지신 관련 검증조서는 화농 왕지신이 그의 주택에서 손련방에게 항일활동을 권하는 지도와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그리고 화방정(花房町, 하나부사초) 소재 의선당은 왕지신이 방세능과 항일활동을 공모한 장소로 이용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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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의선당의 정문                                     사진 2. 의선당 내부 제단

 

의선당의 정문, 내부를 촬영한 사진은 1943년 당시 의선당의 모습을 담은 거의 유일한 사진이어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사진1>은 의선당의 정문 사진이다. 현재의 정문 모양과 흡사하며, ‘義善堂간판은 현재의 간판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정문에는 대련이 걸려 있고, 정문 오른쪽에 ○○사원의 간판이 걸려있다. 또한 정문 앞에 의선당의 표지석으로 보이는 작은 비석이 서 있다.


<사진2>는 의선당 내부 본전 안의 신위를 모셔놓은 제단이다. 제단은 흙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이 제단은 없다. <사진3>은 의선당의 정원이다. 건물 배치는 현재와 거의 같으며, 왼쪽이 본전 건물이다. <사진4>는 의선당 정문 앞 도로이다. 이 도로는 80년이 지난 지금 주말이면 인천차이나타운을 찾는 수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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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3. 의선당의 정원과 본전 건물(정원의 왼쪽)                   사진 4. 의선당 정문 앞 도로

 

의선당은 인천시 중구 북성동 29-13번지 소재 중국식 사원이다. 인천화교협회 지정 문화유산 제1호이다. 이 사원은 1893년경 인천 화도진 근처의 작은 묘우로 창건되었으며, 1928년경 현재의 자리에 새로운 사원을 건축하여 이전 했다. 20061억여 원의 공사비를 들여 대대적인 수리 공사를 실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사원은 원래 중국의 민간종교인 재리교(在理敎) 의 영향을 받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원에는 마조(媽祖), 관우 (關羽), 호삼태야(胡三太爺), 관음보살(觀音菩薩), 용왕(龍王)의 신단을 모셔놓고 있다.


중국 민간신앙의 신을 모시는 사원일 뿐만 아니라 불우한 화교의 구제활동을 하는 선당(善堂)의 역할도 하여 배신선당(拜神善堂)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 사원의 일부 공간을 화교에게 임대하여 수입으로 삼았다. 사원의 운영은 법사(法師)가 맡았다. 사원은 일제강점기까지 활발히 운영되었지만, 인천화교의 인구감소 등으로 인해 현재는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사원을 참배하는 화교와 관광객의 발걸음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원 내에는 각종 편액 22점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한반도화교와 베트남화교 마주보기 29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참고문헌

박현규. 2009, 인천화교 의선당의 모습과 민간신앙 조사, 역사민속학29, pp.231-254.

이정희. 2018, 조선화교의 민간신앙과 비밀결사, 사회와 역사120, pp.41-68.

이정희. 2022, 중일전쟁 시기 인천화교 조직 일동회(日東會)의 항일활동-중공팔로군계모략단 일동회사건 자료의 소개를 중심으로, 중국학보100, pp.381-412.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2, 3, 4. 국사편찬위원회 전자도서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