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이. 2022. 『생산주의―탈생산주의 전환의 시각으로 본 1950년대 이래 한·중 양국 농업·농촌 변천: 농정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인천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이 논문은 인천대학교 일반대학원 중국학과 박사학생이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의 연구과제에 참여했던 리페이(Li Pei)의 박사학위 청구논문으로서 우리 연구소의 연구 아젠다와 비슷한 취지를 갖고 있으면서,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근현대 중국 향촌 관행연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학위청구인 리페이는 우리 연구소 이미 출간한 연구성과인 『경독(耕讀): 중국 촌락의 쇠퇴와 재건』의 공동집필인 및 공동역자로서, 중국 향촌 대한 장기간의 현장연구 과정에서 근현대 중국 향촌 사회·경제 관행의 지속과 단절에 대한 고민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고민 끝에 한국과 중국 근현대 향촌 관행의 지속과 단절에 대한 비교라는 문제의식을 학위논문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논문은 한·중 양국 향촌 관행의 근대적 변용에 대한 비교를 기반하여 연구의 초점을 최근의 향촌 소멸 위기에 대응할 때 양국이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공통점을 모색하는 데에 설정했다. 향촌 사회·경제 관행의 표징인 촌락(마을)에 집중하던 기존연구와 달리 이 연구는 근대국가 수립 이후 농업·농촌 정책(농정)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향촌 관행의 변화를 핵심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사회체제와 발전모델에 있어 한국과 중국 간의 커다란 차이성을 고려하여 저자는 촌락에 집중하면 오히려 이러한 구조적인 차이성을 부각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인식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주의 농촌체제(productivist rural regime), 그리고 이 체제의 탈생산주의 전환(post-productivist transition)이라는 이론구조를 도입하여 양국 농정과 향촌 관행의 변화를 살펴봤다.
생산주의―탈생산주의라는 이론구조는 2차대전 이후 서양국가 농업과 농촌사회의 변화를 분석하는 데에 적용되었지만, 이 이론구조의 핵심은 서양국가가 농업생산 양식의 변화에 대한 주도와 이와 연관된 세계 농식품 분야에 대한 헤게모니의 구축과 유지라는 점이었다. 본 연구는 생산주의―탈생산주의 이론구조의 핵심을 둘러싸서 서양국가의 농식품 헤게모니 영향 아래 한·중 양국 농정당국의 농정 방향 선택과 그 변화, 이러한 선택 및 변화 따른 농업·농촌 분야에서 농민의 일상적인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관성이 있는 패턴의 구축 혹은 단절, 그리고 이러한 일관성의 구축과 단절이 초래한 사회적 결과를 분석했다.
본 연구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이라는 시점을 한·중 양국 농정의 공통적인 전환점이라고 인식하면서, 한·중 양국 1950년대 이후의 농정 과정을 각각 1950~70년대 말의 생산주의 농정기와 1980년대 초반 이후의 탈생산주의 전환기로 시기적으로 구분했다. 저자는 한국의 농지개혁과 중국의 토지개혁에 대한 비교, 그리고 두 개혁 이후 농정의 발전 과정에 대한 비교를 통해 다른 사회체제와 발전모델을 선택했던 양국이 서양 농식품 헤게모니의 영향 아래 어떻게 생산주의 농촌체제를 수립했는지, 그 체제의 본질과 핵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체제의 작동과 유지가 양국 농촌사회에 미치는 심층적인 영향을 분석했다.
더 나아가, 저자는 1980년대 초반 이후 세계 농식품 분야의 탈생산주의 전환에 따른 양국 농정 방향의 전환의 원인, 공통성, 그리고 차이성을 검토했고, 이에 따른 기존 생산주의 농촌체제의 해체와 그가 초래한 사회적 결과를 살펴본다. 이러한 농정 과정과 농정의 변화에 따른 향촌 관행의 지속과 단절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뿐만 아니라 본 연구는 탈생산주의 전환 이후 현실적인 농업·농촌 실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러한 변화가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오히려 농촌의 소멸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결론적인 차원에서 이 논문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중 양국 농업·농촌 발전 실천에 있어 기존 농정 과정으로부터 지속해 온 일관성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한·중 양국이 겪고 있는 농촌 소멸 위기는 기존 일관성의 단절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이후의 탈생산 전환 과정에서 기존 생산주의 농촌체제의 해체, 그리고 이 체제와 결합된 향촌 관행의 단절이 발생하면서, 한·중 양국 농업·농촌 분야는 시장체제로 편입되고 개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농업·농촌 분야의 자본 진출이 강화되면서 농업·농촌의 사회적 재편에 대한 자본의 주도권이 날로 커졌다는 큰 변화가 발생하여 향촌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양국의 농정당국은 이러한 큰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새로운 “농촌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공통적인 책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양국의 지역 차원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추진하고 있는 실천에 있어, 과거의 향촌 관행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농식품 담론에 기반한 사회적 재구성보다, 농업·농촌의 일상적인 실천 공간에서 지속해 온 일관성을 발견하며, 이를 절실하게 실천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의 농촌 실천가들은 서로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성공을 지탱할 수 있는 일관성에 기반한 대화와 소통이 더 필요하다. 이러한 대화와 소통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상대국 농업·농촌의 발전 과정에서 누적되어 정착된 심층적인 일관된 요소들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쉬운 과제가 아니지만, 앞으로 농촌 소멸 위기의 공동 대응,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 발전 경로의 공동 모색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