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성실한 과학자: 모범소수자 담론과 Chien-Shiung Wu _ 정은주
1936년 여름, 스물네 살의 우지엔슝(吳健雄, Wu, Chien-Shiung)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했다. 중국 장쑤성(江苏省)의 작은 도시에서 자라, 난징(南京)의 국립중앙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그에게 미국은 ‘생존을 위해 떠난 기회의 땅’이라기보다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1936년은 중국인에 대한 이민과 귀화가 여전히 법적으로 봉쇄되어 있던 때였지만, Wu의 미국행은 중국인 배척 체제 아래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학생·전문가 예외 규정을 통해 가능했다.1)
미국에서 그의 삶의 공간은 여느 중국인과 달리 실험실과 강의실로 수렴되었다. UC 버클리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전쟁 시기 미국의 과학 체계 속으로 빠르게 편입되었으며, 전후에는 컬럼비아대에서 실험물리학자로 자리 잡으며, 동시대 어느 누구보다 정교한 실험 능력을 갖춘 연구자로 평가받았다. 동료들은 그를 “조용하지만 단단한 과학자”, “말보다 실험으로 증명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고 정치적 발언을 삼갔으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연구 결과로 말하는 태도를 고수했던 모습에 대한 평이다.
1950~60년대 미국에 중국계 여성 과학자는 매우 드물었고, 그 희소성은 곧 상징으로 소비되었다. 당시 미국 언론 보도에서, 그리고 이후의 전기와 박물관·교육기관의 대중적 소개에서도 우지엔슝은 “중국판 마리퀴리,” “중국태생 과학자,”등의 명칭으로 호명되며, 이민자·중국계·여성이라는 점이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성공을 설명하는 서사 구조 역시 특정한 패턴을 따른다. 미국 언론은 물리학계에서 이룬 성취에 대해 그의 뛰어난 능력 뿐 아니라 근면, 성실, 헌신, 겸손과 같은 개인적 덕목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구조적 기회 -연구비, 제도적 접근성, 냉전기 과학 인력 수요 등- 에 대한 언급 없이 순전히 개인의 자질과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이 결합한 결과로 보는 모범소수자 담론의 핵심 문법과 일치한다. 즉 성취는 인정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진 구조적 조건과 배경 -인종 배제 이민법, 젠더화된 채용 관행 등- 은 서사에서 소거되는 방식이다. 실제로 그는 박사학위 취득 이후에도 버클리에서 정규직을 얻지 못했고 이후 노벨상 수상 과정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러한 개인 성공 서사는 실제로 당시 그가 경험한 제도적 제약을 주변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Wu는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동시에 미국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아시아계 엘리트의 모습—성실하고, 과학적 성취에 집중하며 비정치적인 인물—과 정확히 겹쳐 보였다.
1960년대 중반, 미국 사회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대형 언론에서 “여러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노력하여” 성공을 일군 중국계, 일본계 미국인들을 가리켜 ‘모범소수자(model minority)’라 칭하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Peterson, New York Times 1966; U.S. News & World Report 1966). 이 담론은 아시아계의 성공을 칭찬하는 듯 보였지만, 그 성공을 개인의 근면성과 문화적 특성으로 환원함으로써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가렸고, 정치적 요구나 집단적 발언 대신, 조용한 성취가 아시아계의 시민성으로 제시되었다.2)
우지엔슝은 미국 사회의 소수자로 출발해 성공한 인물이 아니라, 이미 중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미국에 온 과학자였기에, 엄밀히 보자면 모범소수자 담론이 지시하는 중국계 미국인 다수의 삶의 맥락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그의 삶과 이미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칭송의 언어는 모범소수자 담론이 가장 설득력 있게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Wu의 사례는 왜 침묵이 문제되지 않았을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한다. 차별적 처우에 문제제기하지 않는 과학자의 성공은, 그 자체로 1960년대 미국이 아시아계에게 허용한 시민권의 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림1. 1945년 타임지를 장식한 우지엔슝
허용된 성공의 형식: 과학과 비정치성
우지엔슝의 과학적 성취는 동시대 미국 과학계에서도 이례적이었다. 핵물리학이라는 고도의 전문 영역에서 그는 실험 설계와 수행 능력으로 독보적인 평가를 받았고, 그의 연구는 이론 물리학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Wu의 탁월함이 공적으로 호출될 때, 그 성취는 거의 언제나 ‘과학 내부의 이야기’로만 한정되어, 그의 연구는 존중되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확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제한된 행동의 틀은 개인의 성향으로만 여길 우연이라 볼 수 없다. 1950–60년대 미국 사회에서 과학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띠는 영역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중국계 이민자에게 특히 안전한 공간이었다. 냉전기 미국에서 중국계의 정치적 발언은 언제든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과학적 전문성은 국가에 기여하는 기술로 읽혔다. Wu의 성공은 이처럼 사회적 인식과 행동으로부터 분리된 성취, 다시 말해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성공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모범소수자 담론은 바로 이 지점과 맞물린다. 과학이라는 분야는 아시아계의 성실함과 이성적 능력을 입증하는 최적의 무대로 간주되었고, Wu는 그 무대 위에 가장 설득력 있게 배치된 인물 중 하나였다. 그의 성공은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소외되었던 ‘아시아계도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그 노력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암묵적으로 규정했다.
젠더와 인종의 교차: 침묵이 미덕이 되는 조건
Wu의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단지 중국계 과학자였을 뿐 아니라 여성 과학자였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겠다. 20세기 중반 미국 과학계에서 여성 연구자는 여전히 예외적 존재였고 그들에게 요구된 태도는 명확했다. 공격적이지 않을 것, 정치적이지 않을 것, 개인적 성취를 넘어서는 발언을 삼갈 것. 이러한 규범은 여성 과학자를 ‘위협적이지 않은 전문가’로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인종적 조건이 겹쳐, 중국계라는 정체성은 Wu를 더욱 조심스러운 위치에 놓이게 했다. 아시아계 엘리트에게 기대된 시민성은 집단적 요구나 사회 비판이 아니라, 개인적 성공을 통해 체제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때 침묵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선택이 아니라, 보상이 따르는 태도가 된다. 나서서 문제제기하지 않음으로써 Wu는 자신의 성취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었고, 문제적 인물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침묵이 강요되었다기보다 자연스러운 미덕으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이다. 언론과 학계는 Wu를 “겸손한”, “조용한”, “헌신적인” 과학자로 묘사했고, 이러한 수식어는 그의 업적을 깎아내리기보다는 오히려 존경의 언어로 작동했다.3)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품격이 되었고, 이는 모범소수자 담론이 아시아계 엘리트에게 부여한 이상적인 인격상이기도 했다.

그림2. 우지엔슝과 맨해튼 프로젝트
말하지 않는 위대함과 노벨상의 정치학
1957년 노벨물리학상은 패리티 비보존(parity nonconservation) 이론을 제안한 이론 물리학자들에게 수여되었는데, 그 이론을 실험으로 입증한 Wu는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4) 이후 이 결정은 과학사에서 대표적인 ‘배제 사례’로 자주 언급되었지만, 당시 Wu는 공개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개인적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는 쪽을 택했다.
이 선택은 흔히 개인적 성향이나 과학자의 품위로 설명되어 왔지만, 당시 주류사회에서 막 인정되기 시작한 모범적 소수, 중국계 여성 지식인이 놓인 구조 속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사례에서 노벨상 배제는 단지 학문적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항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계 여성 과학자가 국제적 과학 권위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었다.
Wu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그의 업적과 인품을 손상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불평하지 않는 천재’, ‘말없이 기여한 과학자’라는 기억을 남겼다. 이는 침묵이 체제에 균열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관리될 때, 어떻게 도덕적 미덕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모범소수자의 한계
예외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위협적이지 않은 소수민족 여성으로서 우지엔슝의 삶은 모범소수자 담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지 않는 과학자,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지 않는 시민, 개인적 성취로 자신의 자리를 증명하는 엘리트의 표본으로서, 그의 삶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어떤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처럼 소비되었다.
그의 학문적 성공과 별개로 공적 위치는 제한적이어서, Wu는 미국 과학계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위치는 과학적 전문성 안에서만 의미를 가졌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과학자는 기술과 진보를 상징하는 존재로 호출되었는데 중국계 여성 과학자에게 기대된 역할은 사회적 논쟁이나 집단적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 성과로 체제의 개방성을 입증하는 데 머물렀다. Wu의 성취는 개인의 업적으로 존중되었지만, 중국계 미국인의 사회적 조건이나 권익 문제를 논의하는 공적 장으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당대 독보적인 중국계 여성 과학자인 우지엔슝의 스토리는 미국 사회가 아시아계 엘리트에게 허용한 공적 위치가 어디까지였는지를 드러낸다.
다시 말해, 우지엔슝의 삶이 보여주는 것은 침묵의 미덕이 아니라, 침묵이 요구되던 성공의 형식이었고, 모범소수자 담론이 성공을 통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담론은 아시아계의 성취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성취가 머물러야 할 자리를 제한한다. 과학적 전문성은 환영되었지만, 사회적 질문은 요구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과학자의 성공은, 그 자체로 당시 미국 사회가 상정한 이상적인 아시아계 엘리트의 모습이었으며,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 아시아계 엘리트의 성취는 안정적으로 포섭되었다. 그러나 이 질서가 모든 영역에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과학이 아닌 다른 무대에서, 아시아계의 몸과 목소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국인 17】
정은주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 글은 등재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Diaspora & Cultural Criticism(IDCC)》 16권 2호(2026년 9월 30일 발간)에 게재한 "인정과 배제의 이중주: 모범소수자 담론과 1960~1990년대 중국계 미국인 재현의 정치"의 일부를 수정한 글이다.
*** 참고문헌 및 자료
1)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s)은 1941년 폐지되었기에 1936년은 중국인의 이민과 귀화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때이다. 다만, 학생, 교수, 과학자 등 비이민(non-immigrant) 신분에 한해 제한적인 예외 입국이 허용되었으며, 우지엔슝의 미국 유학은 이러한 예외 조항과 중국 내 엘리트 교육 경력, 미국 대학의 초청이 결합된 결과였다. 또한 이 시기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미·일 관계가 악화되던 시기로, 미국 내 중국에 대한 외교적·여론적 인식도 변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정치적 환경 속에서 중국 엘리트 유학생과 과학자들은 미국의 잠재적 동맹이자 근대화의 파트너로 인식되며, 중국인 배척 체제 내부에서도 제한적인 이동이 가능했다.
2) 1960년대 중반 ‘말없이’, ‘성실하게 노력하여 성공했다’는 표현은 노력과 성취를 치하하는 언어로 제시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동시기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집단적 행동과 정치적 발언에 나섰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운동을 겨냥한 대비 구도로 작동했다. 주류 사회가 아시아계를 이러한 방식으로 재현한 것은 이중의 효과를 낳았다. 한편으로는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집단과 아시아계를 분리·대립시키며, 아시아계를 시민적 행동보다는 개인적·경제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비정치적 집단’으로 위치시켰고, 이는 아시아계가 온전한 미국 시민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또 다른 낙인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축적되어,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과 같은 국면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잠재된 적대와 혐오가 표면화되는 조건 중 하나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으로,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노력으로 극복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는 아시아계를 ‘문제없는 소수자’로 그 입체성을 왜곡하며, 교육·주거·복지 등 사회적 지원과 차별 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적 관심을 약화시키는 효과로 이어졌다.
3) Wu에 대한 학계와 언론의 재현은 그의 태도를 특정한 형용사로 고정했다. 예컨대 마가렛 로시터( Rossiter 1995)의 과학사 연구에서는 그의 실험적 탁월성과 함께 개인적 태도를 강조하는 서술 – 겸손하고 내세우지 않으며 조용히 헌신적이라는 “modest,” “self-effacing,” “quietly dedicated”-표현이 반복되었으며, 이러한 성향이 당시 여성 과학자에게 기대된 규범과 맞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뉴욕타임즈와 같은 주요 언론 역시 Wu를 조용하고 과시하지 않으며 과학에 전념했다 “quiet,” “unassuming,” “devoted to science”는 글로 설명했다(New York Times, 1997).
4) 1957년 노벨물리학상은 패리티 비보존 이론을 제안한 리정다오(李政道, Tsung-Dao Lee)와 양전닝(楊振寧, Chen Ning Yang)에게 수여되었다. 이 이론은 당시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패리티 보존 가설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그 타당성은 우지엔슝이 주도한 코발트-60 베타 붕괴 실험을 통해 결정적으로 입증되었다. Wu의 실험은 이론을 실제 물리 현상으로 확인한 핵심적 기여로 평가받았으나, 노벨상은 이론 제시에 한정해 수여되었고 실험적 검증을 수행한 Wu는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결정은 이후 과학사와 여성 과학자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는 사례가 된다(Rossiter 1995; Pais 1988).
Chiang, Tsai-Chien. 2013. Madame Wu Chien-Shiung: The First Lady of Physics Research. Translated by Wong Tang-Fong. Singapore: World Scientific Publishing Company.
Peterson, W. January 9, 1966. “Success Story, Japanese-American Style,”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1966/01/09/archives/ success-story-japaneseamerican-style-success-story-japaneseameri can.html (검색일: 2021.8.15.)
Pais, Abraham. Inward Bound: Of Matter and Forces in the Physical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Rossiter, Margaret W. Women Scientists in America, Vol. 2.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5.
U.S. News & World Report. Dec. 26., 1966. “Success Story of One Minority Group in U.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1. ‘The 100 women of the year, 1945: Chien-Shiung Wu’
https://time.com/5793522/chien-shiung-wu-100-women-of-the-year/
그림2. Dihal, Kanta, January 18, 2018, ‘Where State Politics Meets Gender Politics: Chien-Shiung Wu and the Manhattan Project’, The New Inquiry
https://thenewinquiry.com/blog/where-state-politics-meets-gender-politics-chien-shiung-wu-and-the-manhattan-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