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쌀 복원과 기록: 여기 남아서 살아간다는 것 _ 장정아
2026년 6월, 10여 년의 시간 동안 홍콩 농부와 젊은이들이 땀 흘리며 해온 홍콩 쌀 종자(볍씨) 복원과 기록 프로젝트가, 후원 종료와 함께 끝났다. 볍씨를 심었던 논에도 흔적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해산했다. 떠남과 해산, 문닫기가 일상화되고 있는 홍콩에서, 사람들은 오랜 노력의 끝을 슬퍼하기보다 ‘논밭 위의 파티’를 열어 함께 홍콩 쌀밥을 먹고 공연을 보며 조용히 마지막을 기념했다. 그리고 7년 동안 복원해 낸 쌀 종자 35종을 전시하는 자리에는 매일 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각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거나 농산물 가공을 하며 홍콩 농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키려는 사람들이 모여 농부와 서로 어떻게 연결될지 토론하는 ‘스피드 매칭’도 있었다. 어둠이 내린 후엔 예술가들의 공연을 함께 보았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농부와 청년들이 해온 작업을 긴 시간 관찰한 내용을 테마로 공연을 만들었다. 쌀, 흙, 식물, 동물, 그리고 여기서 함께 해온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예술가는 볏집 가면을 쓰고 그림자극과 샌드아트 공연을 했다. 땅에 뭔가를 계속 심는데 자꾸만 반복해서 뭔가에 의해 쓸려 내려가는 퍼포먼스도 있었고, 심었던 게 뿌리뽑히자 다시 심는 장면도 있었다.

사진1. 홍콩 쌀 종자를 심고 복원해 내던 논에서 열린 그림자극과 샌드아트 공연
2015년 민간재단 후원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홍콩 학생들과 농부들이 일본에 가서 함께 한 예술제로 출발해, 홍콩 전통 쌀 복원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러나 막상 홍콩에서는 홍콩 쌀 종자(볍씨)를 찾기 힘들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팀은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와 미국 농무부 벼 유전자원 컬렉션(Genetic Stocks Oryza Collection)에서 홍콩 전통 쌀 종자들을 찾아와 복원해 내기로 했다.
그래도 작업은 험난했다. 2019년~2020년 정치적 격변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프로젝트 유지는 어려워졌다. 홍콩에서 오랫동안 농업에 종사해온 사람들은 홍콩 쌀 ‘기록’ 계획을 제안했고, 식물 지식이 많은 이들이 새로 결합했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벼의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손으로 기록했다. 30종이 넘는 쌀을 대상으로 각 품종을 모 단계부터 일주일마다 높이를 측정했고, 낟알 수를 세는 등 손으로 세는 작업도 많았다. 4년간 52명의 자원봉사자가 왔고, 마침내 10만 건이 넘는 측정 데이터가 쌓였다. 22종의 옛 볍씨, 그리고 홍콩에서 농부가 심은 외래종 3종을 포함한 25종은, 변화를 거듭하며 35종이 되어 애초 계획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대만 흑찹쌀을 가져와서 심었더니 색깔이 흰색으로 바뀌어 모두를 놀라게 했고, ‘홍콩 흰찹쌀’로 부르게 되었다. “이건 순전히 뜻밖의 기쁨이었고 마음속 빈자리를 채워 줬다. 종자은행을 아무리 찾아도 (홍콩) 찹쌀 종자를 찾을 수 없었는데, 이제 홍콩에서 자체적으로 육성한 찹쌀이 생긴 거니까.”(팀원의 말)1) 다른 곳의 품종이 홍콩 토양과 바람과 빗속에서 다르게 만들어지며 ‘홍콩 종자’가 된 것이다. “옛 쌀을 심자, 쌀이 쌀을 낳고, 적지 않은 변종을 낳았다. 아마 이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놀라움일 것이다.”2)
이들은 볍씨의 성장과 변이를 기록할 때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 방식을 참고했다. 그리고 홍콩 전역에서 모여든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를 훈련시키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어냈고, 이 과정을 기록한 실용 안내서 『벼 관찰: 쌀 관찰 학습안내서(稻觀—稻米觀察學習手冊)』를 『홍콩 쌀 도감(香港稻米圖鑑)』과 함께 이번에 발간했다. 팀원들은 실용 안내서를 만들 때 의도적으로 복고적 느낌을 담았다. “예전에 홍콩에서 벼농사가 성행하던 시대에 이런 기록 프로젝트가 있었다면, 당시 출판된 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팀원의 말)3)
프로젝트 해산과 함께 열린 전시장에는, 복원해 낸 35종의 볍씨와 함께 실제 크기의 벼도 전시되어 있고, 전시장 천정에는 밭에서 쓰던 방조망이 늘어져 있었다. 팀원들은, 실제 밭을 가져올 수 없으니 밭에서 쓰던 망을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렇게 물들여진 방조망은 마치 예술품처럼 보였는데, 일부러 물들인 게 아니라 홍수로 물난리가 났을 때 물든 그대로였다. 쏟아지는 비로 종종 겪던 어려움 또한 볍씨 복원작업 과정의 일부였음을 기록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진2. 홍콩쌀 종자 기록과 복원 프로젝트 전시회.
실제 크기의 벼, 그리고 논에서 쓰던 방조망을 가져다 전시했다.
홍콩 쌀 종자를 35종이나 복원해 냈지만, 이 종자들이 어떻게 쓰일지, 쓰이기나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홍콩 농촌과 농업 현실은 동아시아의 다른 사회들과 비교해도 특히 더 어렵다. 농지 문제는 특히 홍콩의 독특한 역사와 정경유착 속에서 형성된 가장 큰 어려움이다. 농촌 토지 소유자는 대부분 원주민이고 농부들은 대부분 비-원주민으로서, 언제든 토지 소유주가 계약을 바꾸면 나와야 하는 취약한 위치이며 집단적 행동도 어렵다.4) 활성 농지 비율은 18%에 불과하고, 현지 채소는 시민 식용량의 1.8%를 제공할 뿐이다. 쌀 재배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판매가격도 높아서 경쟁력이 없다.5) “홍콩 땅에서는 어떤 낭만적인 상상도 허용되지 않는다. 특히 농부들은 잔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한 그루 벼 아래에는 처리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홍콩 농부의 말)6)
이 종자들이 다시 역사 속에 묻혀버릴지, 시간이 지나면 홍콩 쌀은 아예 자취를 감출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하고 막연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 필요할 때 찾을 수 있게 하려고 이들은 10여 년의 시간을 들여 홍콩 쌀 종자를 기록하고 복원해 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홍콩의 아름다움이 이미 지나갔다고 불평하며 미래를 걱정하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미 과거를 다시 쓰고 있고 미래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2년 뒤의 일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홍콩 전체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농사지을 논밭을 계속 임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는 문헌을 만들고 데이터를 기록하며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적어도 미래에 쌀을 재배하려는 농민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7)
전시회 현장에서 관중이 팀원에게 “35개 품종 모두 홍콩에 원래 있던(原生) 것인가?”라고 묻자 팀원은 이렇게 답했다.
“중요한 질문이다. 1960년대에 홍콩에서 가져간 품종들도
사실은 반드시 홍콩에 애초부터 있던 것일까?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건 사실 홍콩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비슷하다.
애초부터 여기 있던 게 아니더라도,
여기서 적응하며 홍콩 것이 되어 간다.”
이 문답은 지금의 홍콩에 대해 큰 시사점을 가진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 홍콩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뜨겁고 무겁다. 정체성의 강화는 배타적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홍콩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원이나 원본성을 강조하기보다, 개방적 정체성으로 홍콩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고자 분투하고 있다.8)
밭에서 열린 행사에서 홍콩 농부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 우리의 생활 루틴은, 매일 아침 나와서 걸으며 보는 거다. 그런 루틴이 있으니 미세한 변화도 알아챌 수 있는 거다. 그건 아주 길고 느린 과정이다. 볍씨를 심고 나서 성장했을 때 (원래 품종으로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게 나올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품종을 얻기까지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그리고서 변하며 안정적으로 되어 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홍콩에 여전히 남아 살아갈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매일 땅을 밟으며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는, 길고 느린 과정이 있었기에, 홍콩 쌀 품종들을 복원해 내고, 다른 품종이 홍콩 땅에 와서 새로운 품종이 되어 홍콩 쌀 품종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논밭이 물바다가 되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도 하지만, 홍콩만의 날씨, 태풍과 비바람, 뜨거운 햇볕, 해충과 익충, 이 모든 것과 함께 살아가며, 지금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고 기억하며 기록하고 있다.
장정아 _ 인천대학교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 중어중국학과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集誌社, 2026, “香港米|民間「撒種」復育 35 種「港米」 四年稻米研究育成圖鑑,” 集誌社, 2026.4.13.
2) 符雨欣, 2026, “「大地予我」在香港留種: 米沒有手腳,尚且一直在變,” 端傳媒, 2026.5.24.
3) 集誌社, 2026, “香港米|民間「撒種」復育 35 種「港米」 四年稻米研究育成圖鑑,” 集誌社, 2026.4.13.
4) 장정아, 2018, “홍콩 땅을 지킨다는 것: 홍콩 정체성에서 향촌과 토지의 의미,” 『현대중국연구』 19집 4호; 장정아, 2026, “노동자와 향촌을 통해 보는 홍콩: 저항과 포섭의 변주곡,” 김동규 외, 『동아시아 관문도시 읽기』, 산지니.
5) 數因斯坦, 2026, “活躍農地佔比僅18% 本地菜佔市民食用量1.8% 多措施助農業發展,” HK01, 2026.4.29. 홍콩 농업정책의 역사적 변화에 대해서는 周思中, 2022, 『夕陽的光:誰說香港沒有菜園』(香港: 藝鵠有限公司), 리페이(李沛), 2023, “홍콩의 농업 연구로 본 중국적 표준과 질서에 대한 대안적 접근(4)”(웹진 <관행중국> 158호(2023년 11월호)) 등 참고.
6) 林女, 2024, “彈丸之地曾有過的 33 款米種: 「大地予我」團隊復育香港傳統稻米,” 名廚, 2024.06.19.
7) 符雨欣, 2026, “「大地予我」在香港留種: 米沒有手腳,尚且一直在變,” 端傳媒, 2026.5.24.
8) 장정아, 2025, “사랑이 홍콩을 구할 수 있을까?: 배타적 정체성과 본질주의를 넘어서,” 『중국사회과학논총』 7집 1호.
***사진 출처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2026년 4월 현지에서 직접 촬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