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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중국'은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의 웹진입니다. '관행중국'의 전신은 '중국관행웹진'으로 2010년 9월에 창간호를 발행한 이후 2016년 7월까지 총 70회를 발간했습니다. 71회부터는 '관행중국'의 이름으로 개편 발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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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룽지와 아포 레웅: 아직 끝나지 않은 중국 개혁개방의 명과 암 _ 정규식

Vol.192/2026.09
시사·테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6-08-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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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2일 중국 개혁개방의 사령탑으로 불렸던 주룽지(朱鎔基, 1928~2026) 전 중국 총리가 별세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8월 15일 아시아 노동자연대의 선구자 아포 레웅(Apo Leung Po-lam, 梁寶霖, 1949~2026)도 영면에 들었다. 중국 경제의 시장화와 세계화를 이끈 주룽지의 죽음에는 국가적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지만, 그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있는 노동자의 삶에 주목해 이들을 조직하고 국제적으로 연결하는 데 한평생을 바쳤던 아포의 죽음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둘의 죽음에 대한 대조된 반응만큼이나, 이들의 삶은 중국 개혁개방의 명과 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람은(주룽지) 중국을 더 효율적인 경제체제로 만들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개혁을 추진했고, 다른 한 사람은(아포) 그 효율과 성장이 누구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아래에서 위로 질문했다는 점에서 이 둘은 사실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중국 개혁개방의 다른 두 얼굴이다.

 

 

사진 1(좌). 주룽지(1928-2026)

사진 2(우). 아포 레웅(1949-2026)

 

 

주지하듯이 중국의 개혁개방은 현대 세계사의 거대한 분기점이었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선 중국은 더는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에 머물지 않았다. 선전(深圳)은 작은 어촌에서 세계적 기술도시로 변모해 나갔고, 상하이(上海)는 중국 현대화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중국산 제품이 세계인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개혁개방을 통해 수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서사는 이렇게 중국 현대사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성공담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중국 개혁개방을 오직 성공의 언어로만 말할 수는 없다. 성장과 효율의 이면에는 구조조정과 실업, 농민공의 불안정한 삶,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노동권 억압, 지역 간 불평등, 시민사회 공간의 축소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개혁개방은 부와 기회의 문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몸담았던 공장이 문을 닫고 도시의 낯선 생산라인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주룽지와 아포의 삶에는 이러한 중국 개혁개방의 복잡한 서사가 깊이 새겨져 있다.

 

1928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난 주룽지는 칭화대에서 공학을 공부한 기술관료형 정치인이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정치적 시련을 겪었지만, 덩샤오핑 이후 개혁개방의 흐름 속에서 복권되었고, 상하이 시장과 국무원 부총리를 거쳐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원 총리를 지냈다. 주룽지가 활동한 시기는 중국이 제한적 개혁을 넘어 체제 전반의 재편을 요구받던 때였다. 특히 그가 주도한 1994년 분세제 개혁은 중앙과 지방의 재정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즉 당시 지방정부에 크게 기울어 있던 재정 권한을 중앙으로 되돌리면서 이후 대규모 산업정책과 거시경제 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그리고 국유기업 개혁 역시 주룽지 시대를 상징한다. 이른바 ‘큰 것은 붙잡고, 작은 것은 놓는다(抓大放小)’라는 전략에 따라 중요한 대형 국유기업은 살리고, 비효율적인 중소 국유기업은 정리하거나 민영화했다. 이는 중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시장경쟁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고, 살아남은 대형 국유기업은 이후 중앙기업 체제로 재편되어 에너지, 통신, 금융, 인프라, 중공업 등 핵심 분야에서 국가 기간산업의 기둥이 되었다. 주룽지가 추진한 이러한 개혁과 구조조정은 중국을 더 효율적인 경제체제로 만들었지만, 중국식 사회주의가 노동자에게 약속했던 ‘철밥통’이 깨지면서 수천만 명의 실업자와 그 가족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아포 레웅의 삶을 조명해야 한다. 1949년 마카오에서 태어난 아포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해인 1966년 홍콩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계 전자공장 노동자로 일했으며, 이후 기자 생활을 거쳐 홍콩 기독교산업위원회(Christian Industry Committee)와 직공회연맹(職工盟)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아시아의 대표적인 노동운동 단체인 ‘Asia Monitor Resource Centre’의 대표를 역임하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주도했다.1) 특히 1993년 87명의 노동자(주로 10~20대 초반의 여성 노동자)가 화재로 숨진 쯔리(致麗) 완구공장의 참상을 계기로 다국적 하청 업체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1994년 노동법 채택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도 국제 전문가 자문과 회의를 주선하는 등 아포의 숨은 조력이 있었다. 이런 아포의 눈에 중국 개혁개방의 성취는 사뭇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세계의 공장’은 장시간 노동 착취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수출경쟁력’은 저임금과 노동 통제, 취약한 노동권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시의 번영은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농민공)에 대한 차별 위에 세워진 것이었으며, 국유기업 개혁의 효율성은 수천만 해고 노동자의 삶의 붕괴를 대가로 한 것이었다. 아포는 이러한 개혁개방의 어두운 면을 단지 중국만의 문제로만 인식하지 않았다. 즉 중국 남부의 열악한 노동조건, 산업재해, 농민공 문제 등을 불균등한 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연결해 연구, 교육, 출판, 조직화, 국제연대 사업으로 확장했다.

 

 

주룽지와 아포, 둘 중 어느 한쪽의 시선만으로는 중국 개혁개방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주룽지의 시각만으로 보면 중국 현대사는 놀라운 성장과 성공의 역사로 보인다. 그러나 아포의 시점을 통과하면 그 성장은 수많은 노동자의 강요된 침묵과 고통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반대로 아포의 시점에서만 보면 개혁개방은 오직 착취와 불평등의 역사처럼 보일 수 있다. 주룽지의 관점에서 함께 보아야 당시 중국에 왜 강력한 구조개혁이 필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국유기업을 그대로 둘 수 없었고, 폐쇄적 계획경제만으로는 거대한 인구의 삶을 개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개혁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그 사회적 비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국가는 시장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시장이 파괴한 삶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면, 그만큼 강력한 사회보장과 재교육, 노동권 보호가 뒤따라야 했다. 주룽지의 바람대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지만, 그 공장 안의 노동자는 그곳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주룽지의 유산이 성장과 개혁의 필요성을 말한다면, 아포의 유산은 어떤 성장도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주룽지의 죽음은 1990년대 중국 개혁개방 세대의 역사적 퇴장을 상징한다. 덩샤오핑의 노선을 현실의 제도로 만들고, 장쩌민 시대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을 실무적으로 완성했던 세대가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난 것이다. 한편 평생 아시아 노동운동과 국제연대에 헌신한 아포의 죽음은 아래로부터 노동의 목소리를 조직해온 한 세대의 퇴장이다. 그리고 더 넓게는 홍콩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공간의 위축이라는 역사적 상실과도 겹쳐진다. 이 둘의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르지만, 긴밀히 연결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먼저 주룽지의 죽음에서는 오늘날 중국에 과연 기득권에 맞선 체제개혁을 통해 다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의지와 제도가 남아 있는지를 묻게 된다. 그리고 아포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공장을 만든 노동자들이 그 발전의 주체로 온전히 인정받고 있는지, 이들의 권익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를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주룽지의 시대가 중국을 세계로 밀어 넣었다면, 아포의 목소리는 그 세계 속에서 잊힌 노동자를 다시 역사의 주어로 세워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두 사람의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술발전과 혁신은 누구의 삶을 바꾸는가? 세계화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며,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가? 중국 개혁개방의 빛과 그림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규식 _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1) AMRC는 다국적기업의 아시아 진출과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문제를 조사하고 해결하기 위해 1976년 홍콩에서 설립되었으며, 2022년 한국으로 이전해서 아시아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국경 없는 연대를 계속 지원하고 있다. 홈페이지 참조: https://amrckorea.imweb.me/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baike.baidu.com/item/%E6%9C%B1%E9%95%95%E5%9F%BA/116302?fromtitle=%E6%9C%B1%E9%8E%94%E5%9F%BA&fromid=3589913&fr=aladdin

사진 2. https://www.facebook.com/AMR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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