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 중국’이 아니라 ‘미국 + 중국’으로 본다면? _ 조형진

G2, 차이나메리카, 신냉전, 전략경쟁 등 작금의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 대부분은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양자의 대립을 깔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미중 정상회담 이후로 이러한 관점을 재고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국 관계가 필요하다며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中美建设性战略稳定关系)’를 제시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기본적으로 동의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뜨거운 의제였던 대만 문제처럼, 국제질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이 중국의 권리와 영역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중국이 그동안 제시했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신형대국관계가 중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강대국들과 동등한 강대국이라는 의미라면,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는 미국과 중국이 다른 국가들과 질적으로 다른 지위와 역할이 있다고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중국학계의 국제정치 논문 중 하나는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쌍핵다극(雙核多極)’으로 요약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대로 현재의 국제질서는 다극화로 가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인 초강대국이 존재하는 다극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을 개별적으로 비교하기보다는 두 개의 초강대국의 합으로 놓고,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강대국 중심의 근대 국제질서가 시작된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에서 시작하겠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가 종결된 이후, 유럽 강대국들은 1814~1815년 빈 회의를 통해 혁명과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국제질서를 구축했다. 이는 영국,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5대 강대국이 중심이 된 강대국 세력균형 체제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국력을 정확히 추산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이 2천 년에 이르는 장기적인 인구 및 경제 지표를 추산한 연구가 있다. 매디슨의 추산액으로 유럽협조체제가 구축된 1820년 5대 강대국의 GDP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하면, 20.2%에 불과하다. 1차 대전 직전 제국주의의 절정기였던 1913년에는 31.6%가 되었다. 이 시기에 5대 강대국 중 전 세계 대비 GDP 비율이 10%를 넘긴 국가는 없었다. 오히려 1820년대 무렵 최전성기에 이른 청 제국이 32.9%로 추정된다. 청 제국을 포함하더라도 매디슨의 추산으로 어떤 두 국가의 합이 전 세계 GDP에서 40%를 넘긴 적은 없다.

<표1> 유럽협조체제의 5대 강대국과 미국, 중국의 전 세계 대비 GDP 비율 추정치 (%)
냉전 시기에는 어땠을까? 이 시기도 소련의 경제 수치가 불명확하고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역시 매디슨의 자료를 활용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GDP는 대체로 전 세계의 30% 남짓을 차지했으며, 다른 국가들의 경제성장과 소련의 완만한 쇠퇴로 이 비율은 계속 감소했다.

<표2>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전 세계 대비 GDP 비율 추정치 (%)
이와 같은 경제사적 추산에서 보면, 현재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역사적으로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2019년부터 두 초강대국의 GDP 비율이 40%를 넘겼다. 인류 역사상 두 국가의 경제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냉전 시기와 달리 두 국가의 경제력 격차가 크지 않다. 비율이 계속 증가하다가 최근 조금 주춤하지만, 이 추세가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두 국가가 인공지능 등에서 압도적 기술력으로 한 차례 더 도약한다면, 50%를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표3> 탈냉전 이후 미국과 중국의 전 세계 대비 GDP 비율 (%)
물론 추가로 군사력, 기술력 등 측정하기 쉽지 않은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로 The Military Defense의 수치로 보면, 중국의 숨겨진 국방비를 산입하는지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전 세계 국방비의 48.9% 또는 58.7%를 차지한다. 또한 최근 중국은 미국과 비교하여 부족했던 핵 탄두를 급격히 늘리고 있으며, 인공지능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었던 가장 강력한 전 지구적 양국 체제에 진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도 그저 중국의 기대와 소망일 뿐인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반영한 실질적 전환일 수 있다. 냉전기 양극 체제는 두 국가의 극한 대립을 특징으로 하지만, 전혀 협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더이상 다른 국가들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두 초강대국의 공동의 이해관계 속에서 체결되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이후, 일각에서 인공지능 NPT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은 때때로 충돌했지만, 지역별·영역별로 세력 간 경계선을 획정하고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두 초강대국의 충돌도 문제지만, 협력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유럽협조체제에 따라 제국주의의 절정기가 이어졌으며, 냉전 기간 한반도를 비롯한 수많은 협상의 대상들은 충돌과 전쟁을 겪어야 했다. 제국주의의 영토 분할과 대리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 경제와 기술에서 영역 분할, 역할 분담을 본격화한다면 그 접점에 있는 우리는 미중 경쟁보다 더 어려운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조형진 _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onald_Trump_visit_to_China,_May_2026_P20260514DT-1642.jpg
표1. Angus Maddison (2007).
표2. Angus Maddison (2007).
표3. World B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