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고의로 좌초시킨 시에라 마드레함 _ 구자선
2026년 7월 20일 중국 해경국은 ‘필리핀 함정 57호의 불법 좌초 및 고의적 도발 행위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오전 9시경 중국 해경 소속 순찰선이 세컨드 토머스 암초(Second Thomas Shoal, 중국명 런아이자오 仁爱礁, 필리핀명 아융인 Ayungin) 인근 해역에서 정기 순찰 중 불법으로 좌초한 필리핀 선박 57호가 고무보트 2척을 발진시켜 중국 순찰선을 고의로 충돌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 선원들은 노와 장대를 사용하여 중국 해경 요원을 고의적으로 공격하자 대응 조치 등을 통해 상황을 안정화했다고 덧붙였다. 보다 자세한 사정은 필리핀을 통해 나왔다. 필리핀 측은 중국 순찰선이 시에라 마드레함(BRP Sierra Madre)에 접근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무보트를 발진시켰으며, 충돌 과정에서 중국 해경의 곤봉 공격으로 1명이 머리에 부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중국 해경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57호함의 부상자들을 필리핀 해경 9702함으로 이송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발표한 것을 보면, 충돌 과정에서 필리핀 측 부상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필리핀의 주장에 대해 중국도 자국 해경의 팔이 멍든 사진을 게재한 것을 보면 중국 측의 피해는 미미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순찰선과 작은 고무보트의 충돌은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진1. 필리핀 해군함 ‘BRP 시에라 마드레’
위의 사실에서 우리는 57호함과 시에라 마드레함은 동일한 함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시에라 마드레함의 선수에 5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은 57호함이라고 부르고 필리핀은 원래 함정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에라 마드레함은 왜 그곳에 좌초했을까?
시에라 마드레라는 이름은 미국의 로키산맥에서 뻗어나와 미국과 멕시코에 걸쳐 있는 산맥을 가리킨다. 필리핀 루손섬에도 동일한 이름의 산맥이 있다. 미국은 1944년 건조된 이 상륙함에 LST-82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후에 하넷 카운티(USS Harnett County)로 개명하였다. 길이 100미터에 폭이 약 15미터 만재배수량 4천 톤인 이 함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 이오지마 전투 등에서 보급품 수송 임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남베트남에 이 함선을 지원하였다. 이 함정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패망한 후 3천여 명의 난민들이 이 배를 타고 탈출하여 필리핀으로 향했다. 미국은 남베트남 피난민 수용 지원에 대한 대가로 수빅만에 정박한 모든 운항 가능한 함선의 소유권을 필리핀에 이전하는 협정을 중재했다. 필리핀은 이 함정을 인수해서 시에라 마드레로 개명하고 자국 해군에서 수십 년 동안 사용하였다. 필리핀 정부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 중국명 난사군도 南沙群岛, 필리핀명 칼라얀 Kalayaan) 영유권 분쟁이 고조되자 1999년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보하기 위해 세컨드 토머스 암초 부근에 좌초시켜 이후 필리핀 해병대의 전초기지로 활용해왔다. 수십 년 동안 태평양 여기저기 옮겨 다니던 이 함정의 최종 종착지였다. 중국처럼 인공섬을 건설할 여건이 되지 않는 필리핀으로서는 비교적 저렴한 해결책이었다.
이런 사건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려면 남중국해의 사정을 대략이나마 알아야 한다.
1947년 중화민국은 지도에 11단선을 그어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했다. 이후 내전에서 승리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주장을 계승하다가 1953년 당시 긴밀한 관계였던 북베트남을 배려하여 통킹만에서 두 개의 선을 제거한 9단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냉전과 해군력의 열세로 인하여 실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경제력 신장과 더불어 해군 전력을 확충한 이후에는 적극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고 있다.
남중국해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프라타스 군도(Pratas Islands, 중국명 둥사 東沙)로 홍콩 남동쪽 340km 지점에 위치하며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대만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최근 중국 해경선이 접근하여 양안 간의 긴장을 높이기도 했다. 둘째, 맥클스필드 사주(Macclesfield Bank, 중국명 중사군도 中沙)로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현재는 중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과 필리핀 간 영유권 분쟁이 치열한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 중국명 황옌다오 黃巖島, 필리핀명 파나타그 Panatag)가 포함되어 있다. 셋째 파라셀 군도(Paracel Islands, 중국명 시사 西沙, 베트남명 호앙사 Hoang Sa)로 1974년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중국이 남베트남과 전투로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베트남이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중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넷째,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 중국명 난사 南沙, 베트남명 쯔엉사 Truong Sa, 필리핀명 칼라얀Kalayaan)로 중국, 타이완, 베트남이 전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가 부분적인 영유권 주장하고 있어 분쟁이 가장 복잡하고 첨예한 지역이다.
남중국해의 여러 지형 가운데 베트남이 28-29개를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대만이 2개, 중국이 7-8개, 필리핀이 7-9개, 말레이시아가 3개, 인도네시아가 2개, 브루나이가 1-2개를 지배하고 있다. 숫자가 확정적이지 않은 것은 만조(滿潮) 노출지뿐만 아니라 간조(干潮) 노출지까지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고, 암묵적으로 실효 지배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여러 지형을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인공적으로 설치한 구조물 규모가 대부분 초소 형태의 소형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에는 중국처럼 인공섬을 확장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토분쟁에 비교적 늦게 뛰어들었다. 우선 개혁 개방 이전에는 해군력이 약해 원양 항해를 할 수 있는 함정이 별로 없었고, 그 결과 남중국해로 항해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성장과 동시에 해군력을 팽창시키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지형이 다른 나라에 선점되어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지형물을 차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1988년 베트남과 갈등을 일으키고 해전을 벌인 결과 7-8개의 도초(島礁)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후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시작되고 남중국해의 제해권이 부각되자 2013년부터 인공섬을 급속히 건설하였다.
반면 필리핀은 자국에 주둔하던 미국에 국방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될 즈음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미군의 클라크 공군기지의 기능이 마비되고, 상원에서 미군기지 임대 연장 조약을 부결시키면서 미군이 철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필리핀은 빈약한 해·공군력으로 급격히 성장한 중국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특히 어업문제와 자원 확보 등을 위해 배타적 경제수역의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중국이 남중국해의 거의 모든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자국 주변에 중국 해경이 출몰하는 것은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썼던 방법이 바로 폐기 직전의 시에라 마드레함을 좌초시켜 중국의 인공섬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이 행위가 세컨드 토머스 암초를 점령하기 위한 불법 행위라고 규정하였다. 이후 지속적으로 필리핀에 함정을 예인하라고 요구했지만, 필리핀은 이행할 의사가 없었다. 중국은 해경선을 파견하여 감시하고 보급품 수송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예를 들어, 2014년 3월 9일 필리핀 해군이 민간 선박 두 척을 이용해 해병대 인원 교대와 보급품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중국 해경이 이를 방해하였다. 이것이 중국의 보급 방해 첫 번째 사례였다. 결국 3월 13일, 필리핀은 공중을 통해 보급 임무를 수행했다. 2014년 4월 1일에도 중국 해경이 보급을 방해했지만, 필리핀 해군은 보급품과 해병대원들을 태운 어선을 이용해 봉쇄망을 뚫고 보급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중국의 봉쇄는 집요하게 이어졌는데, 중국 해경선박은 접근하는 필리핀 선박에 충돌하는가 하면, 물대포를 발사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였다.
여기에 대응하여 필리핀은 국제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저명한 언론인들을 해당 해역에 보내 실상을 보도하게 하였다. 2013년, 뉴욕 타임스 기자가 시에라 마드레함을 방문하여 그곳에 주둔한 소수 해병대원들의 생활과 남중국해의 지정학적 맥락에서 시에라 마드레호의 역할에 대해 보도하고 했고, 2014년 9월에는 BBC 기자가 그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시에라 마드레함은 염분과 수분으로 인해 선체 측면에 커다란 구멍들이 나고, 파도가 칠 때면 함선 내부로 바닷물이 내부로 쏟아져 점점 부식되어 가고 있다. 필리핀으로서는 유지 보수작업이 필요한 사항이지만 중국은 유지 보수를 위한 자재 반입에 대해서는 보급품 수송보다 더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였다. 해상 기지가 영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한 중국은 자신들이 실효 지배하는 지형물을 섬이라고 주장한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의하면 섬은 12해리의 영해와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영유하지만, 암초는 12해리의 영해만 영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태평양의 외딴 암초를 오키노 도리시마(沖ノ鳥島)라고 부르면서 이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해 인근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만든 인공섬은 현상변경에 해당하므로 국제법상 배타적 경제수역이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2014년 3월 필리핀이 제소한 남중국해 중재재판에서도 2016년 7월 12일 판결을 내려 중국의 주장을 배척했다. 여기서는 첫째,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은 국제법상 근거가 부족하며, 둘째, 구단선을 국제법상 인정할 수 없고, 셋째,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고 필리핀 어업 활동을 방해한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단하였다.
미국과 패권 경쟁 중인 중국은 봉쇄선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을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에 맞선 필리핀은 자신의 전력을 만회하기 위해 미군의 주둔을 다시 허용하고, 미군 기지 수를 늘리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 남중국해 판결 10주년인 2026년 7월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 14개국이 중국에 중재재판 결과를 수용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덩샤오핑 시기에는 “역사적으로 주권은 중국에게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양국 간 차이가 있다면,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당분간 분쟁은 덮어두고(擱置爭議) 공동 개발하는 방식(共同開發)을 취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그 어떤 외국도 우리가 우리의 핵심이익을 가지고 거래하거나, 국가 주권과 안전, 발전 이익을 훼손하는 쓴 열매를 삼킬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고 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갈등의 강도가 높아지는 지금, 갈등을 완하하고 우발적 충돌이나 대립이 실제 전투나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절실하다.
구자선 _ 중국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qa.philstar.com/headlines/2023/10/05/2301424/philippines-completes-resupply-mission-brp-sierra-madre-despite-chinese-block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