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화교화인의 역사를 상징하는 금덕원(金德院) 사원 _ 이정희
지난 7월 25일 자카르타 글로독(Glodok) 차이나타운의 패루를 지나 금덕원을 찾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노점상과 상점이 빽빽하게 늘어선 도로를 건너, 양쪽으로 작은 점포와 행상이 가득한 좁은 전통시장을 지나서야 비로소 사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리 크지 않은 사원처럼 보였지만, 작은 문을 들어서는 순간 여러 채의 건물이 이어진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면적은 약 3,000㎡ 규모의 사원이다.

사진1. 금덕원 사원의 정문
금덕원은 본당 외에도 현단궁(玄壇宮, Hien Tan Keng), 혜택묘(惠澤廟), 지장왕묘(地藏王廟)의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전각에는 지장왕보살(地藏王菩薩, Tee Tiong Ong Poo Sat), 옥황상제, 혜택존왕, 나타태자(那吒太子, Na Ca Tai Tje), 마조, 복덕정신, 관음보살(Kwan Im Poo Sat), 천공(天公, Tian Kong), 관제성군(關帝聖君, Kuan Tei Sin Koen), 광택존왕(廣澤尊王, Kong Tek Tjoen Ong), 오후존왕(五侯尊王, Oh Houw Tiong Koen), 현단공(玄壇公, Han Tan Kong), 현천상제(玄天上帝, Hian Tian Siang Tee) 등 다양한 불교와 도교의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신들의 이름이 모두 복건어(호키엔) 발음의 인도네시아식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는 점은 금덕원이 복건계 화인 사회를 중심으로 발전했음을 잘 보여준다.

사진2. 본당서 본 혜택묘
1960년 인도네시아 화교화인의 출신 성별(省別) 분포는 복건방이 약 55%로 가장 많았고, 객가방 20%, 광동방 15%, 조주방 10% 순이었다. 금덕원의 신앙 체계와 신들의 명칭 역시 이러한 복건계 화인의 우세한 비중을 반영하고 있다.
본당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탁 트인 넓은 법당이 펼쳐지며, 입구에는 미륵불이 안치되어 있고 좌우에는 불교와 도교의 여러 신상이 배치되어 있다. 법당 가장 안쪽 중앙에는 금덕원의 주신인 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신도들은 먼저 관세음보살 앞에서 향을 올리고 절한 뒤, 좌우에 모셔진 여러 신들을 차례로 참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3. 본당 주신인 관세음보살 신상 앞에서 참배하는 신도들
금덕원의 역사는 곧 자카르타 화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덕원은 화인의 초기 이주 시기인 1650년, 당시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의 화인 지도자였던 곽훈(郭勳, Kwee Hoen)이 관음정(觀音亭, Kwan Im Teng)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이름 그대로 관세음보살을 주신으로 모신 사원이었다.
그러나 1740년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약 1만 명의 화인을 학살한 이른바 홍계사건(紅溪事件) 당시 관음정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자카르타 화인 사회의 지도자이자 카피탄(Capitein der Chinezen)이었던 황시노(黃鈰老)가 1755년 사원을 재건하면서 이름을 금덕원(金德院)으로 바꾸었다. 이후 금덕원은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공인한 화인 자치기구인 공관(公館, Kong Koan)의 관리 아래 운영되었으며, 공관의 최고 책임자인 카피탄은 화인 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1965년 발생한 9·30사건 이후 권력을 장악한 수하르토 정부는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배후에 중국과 화교화인이 있었다고 의심하며 강력한 동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화교학교를 폐쇄하고 중국어 신문을 금지했으며, 중국식 성명을 인도네시아식 이름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반중국 정책의 일환으로 금덕원 역시 중국식 명칭 대신 산스크리트계 명칭인 비하라 다르마 박티(Vihara Dharma Bhakti)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자카르타 화교화인들은 공식 명칭보다 복건어 이름인 'Kim Tek Ie'를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금덕원은 2015년 3월 촛불에서 시작된 화재로 본당과 목조 천장, 용 조각을 비롯한 약 40점의 역사적인 신상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주신인 관세음보살상은 미리 옮겨져 무사했다. 2016년부터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현재는 대부분의 건물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사진4. 현단공의 관세음보살 신상을 청소하는 직원
현재 금덕원은 인도네시아 비하라협의회(DEWI, Dewan Wihara Indonesia)가 관리하고 있다. 사원에는 노주(爐主, Lu-zhu)와 보좌자가 선임되어 사원의 재정과 종교의식을 총괄한다. 노주는 대개 화교화인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이나 사업가 가운데 선출된다.
금덕원은 자카르타에 있는 140여 개 화교화인 사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신도가 찾는 대표적인 사원이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이면 수많은 신도가 향을 피우고 촛불을 밝히며 참배한다. 또한 음력 7월의 중원절(中元節, Cioko)과 정월 대보름인 원소절(元宵節, Cap Go Meh) 등 자카르타 화교화인 사회의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37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금덕원은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자카르타 화인 사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화교·화인의 ‘세계’ 28】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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