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로에서 지난호보기 학술원 사람들 관행 톡톡 최신호보기 시사&테마 현장&공간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관행중국'은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의 웹진입니다. '관행중국'의 전신은 '중국관행웹진'으로 2010년 9월에 창간호를 발행한 이후 2016년 7월까지 총 70회를 발간했습니다. 71회부터는 '관행중국'의 이름으로 개편 발간하고 있습니다.
Read more

대나무 네트워크에서 글로벌 확장의 촉매제로 : ‘제도화된 화교 자본’이 이끄는 중국 해외직접투자(OFDI) _ 박영수

Vol.187/2026.04
시사·테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6-03-31 09:40
웹진 구독

 

오늘날 중국의 해외직접투자(OFDI)와 글로벌 공급망(GVC) 확장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대체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수렴된다. 바로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이다. 스리랑카의 항만을 임대하고, 아프리카를 관통하는 철도를 건설하며, 동유럽의 에너지 인프라에 진출하는 중국의 대형 국유기업(SOE)들의 행보는 국제 언론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중국의 세계 진출은 곧 국가 주도의 하향식 프로젝트’라는 통념을 강화해 왔다. 중국이 발표하는 거시 OFDI 통계 역시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한다. 2025년 기준 중국의 연간 OFDI 규모는 약 1,774억 달러로, 글로벌 FDI 위축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 수치의 상당 부분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대형 SOE의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투자 총액 중심의 통계를 넘어 개별 기업 수준(firm-level)의 미시적 생태계를 분석해 보면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중국 상장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패널 데이터를 실증 분석한 결과, ‘제도화된 화교기업’이 중국의 OFDI를 유의미하게 견인하는 핵심 주체 중 하나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홍콩·마카오·대만(HMT) 자본을 배경으로 중국 본토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로, 현대 자본시장의 자금력과 제도적 규율을 바탕으로 여타 기업 유형 대비 높은 해외투자 강도를 보이고 있었다.

 

‘대나무 네트워크’의 한계와 화교 자본의 제도적 진화

경영학 문헌에서 화교 자본은 전통적으로 ‘대나무 네트워크(Bamboo network)’로 불려왔다. 이는 혈연과 지연에 기반한 신뢰를 바탕으로 얽혀 있는 비공식 상인 네트워크로, 이들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꽌시(guanxi)를 활용해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거래 비용을 낮추는 데 강점을 발휘해 왔다. 이를 통해 태국의 정미업, 인도네시아의 소매유통, 말레이시아의 광업 외에도 무역업, 부동산업, 경공업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경제의 요충지를 장악해 온 화교 상인들의 네트워크는 그 역사가 수백 년에 이른다.

 

그러나 폐쇄적인 가족 경영에서 비롯되는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외부 감사의 부재, 제한된 자본 규모 때문에 서구 다국적 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따라 ‘대나무 네트워크’는 이후 수십 년간 화교 경제권을 분석하는 핵심 프레임으로 기능했지만, 동시에 화교 자본의 현대화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변화의 계기는 2013년을 전후로 본격화된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구상이 현실화되고, 중국 자본시장의 개방이 확대되면서, 조세회피처나 역외에 머물던 적지 않은 화교 자본이 중국 본토 증시에 상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본토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가 요구하는 엄격한 공시 의무와 회계 감사를 통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입증해야 했고, 가족 중심 경영에서 전문 경영 체제로 전환해야 했다. 따라서 이 과정을 거친 기업들은 전통적인 대나무 네트워크의 비공식성을 현대 자본시장의 제도적 규율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플레이어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즉, 과거의 네트워크 자산과 현재의 대규모 자본을 함께 갖춘 ‘제도화된 상장 화교기업’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진화는 단순히 외형적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 기업은 본토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중국 정부의 정책 금융(국가개발은행 및 수출입은행 등)에 접근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과 동시에 홍콩·대만·동남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화상(華商) 네트워크를 통해 서구의 규제와 지정학적 제재를 유연하게 우회할 수 있는 이중적 자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국유기업을 압도하는 화교 자본의 투자 강도

앞서 살펴본 화교 자본의 끈끈한 역사적 네트워크가 현대 중국의 글로벌 확장 과정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실증 데이터를 통해 명확히 확인된다. 특히 일대일로 정책을 기점으로 이들의 투자 행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하기 위해, 본 연구는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선전·상하이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패널 데이터를 구축하였다. 분석의 엄밀성을 기하기 위해 기업의 최종 실질지배인(实际控制人) 정보를 추적하여 HMT(홍콩·마카오·대만)계 기업을 세밀하게 분류해 냈으며,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도입해 조세회피처를 거쳐 들어오는 본토 자본의 우회투자(round-tripping) 착시 효과를 사전에 차단했다. 이렇게 정제된 약 5만 건의 기업-연도 관측치를 바탕으로 국유기업, 민영기업, 순수 외자기업, 그리고 HMT 기업의 투자 패턴을 비교해 보았다.

 

그림 1은 일대일로 이전 시기(period 1, 2007-2012)와 이후 시기(period 2, 2013-2023)로 나누어 기업 유형별 평균 OFDI 강도를 비교한 결과이다. 주목할 점은 시기별 집단 간 격차의 변화이다. 일대일로 이전 시기, HMT 집단의 투자 강도 지수(6.04)는 민영기업(6.02)과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일대일로 이후 시기에는 HMT(6.95)와 민영기업(6.31) 간 격차가 뚜렷하게 확대되었다. 이는 일대일로를 계기로 화교 상장기업의 해외투자 행태가 여타 민영 기업과 차별화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국유기업의 투자 강도 지수가 3.58에 그친 것은, 해외 진출과 무관한 내수 지방 국유기업(상하수도, 전력, 공항 등)들이 모수에 대거 포함된 데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림 1. 중국 상장기업의 유형별 및 시기별 OFDI 강도 (2007-2023)

Note. OFDI 강도 = ln(1+OFDI 총액). 집단 평균은 투자 미실시 관측치(0) 포함

 

 

실제 투자 금액으로 환산하면 이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2013년 이후 HMT는 1개 기업당 연평균 해외직접투자액이 약 1억 1,280만 위안(한화 약 210억원)에 달했다. 이는 내수 국유기업의 영향으로 평균이 낮아진 전체 국유기업 평균(8,602만 위안)을 상회하며, 토종 민영기업(6,259만 위안)이나 순수 외자기업(5,796만 위안)의 평균 투자액도 넘어서는 수치이다. 이는 기업 수 대비 투자 집중도 기준으로 볼 때, 제도화된 화교 자본은 중국 본토 상장기업군 내에서 가장 공격적인 해외 투자 주체임이 확인된 것이다.

 

시계열 추세에서 나타나는 집단 간 궤적 분리도 주목할 만하다. 그림 2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각 기업 유형별 연도별 평균 OFDI 강도의 추이를 보여준다. 2012년까지만 해도 화교기업과 민영기업의 투자 강도는 유사한 수준에서 움직이며 특별한 차별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대일로가 제창된 2013년을 경계로 양 집단의 궤적은 분기하기 시작하며, 이후 화교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 강도를 유지하며 민영기업과의 격차를 확대해 갔다. 외자기업은 2014-2015년을 정점으로 투자 강도가 정체되거나 소폭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며, 화교기업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림 2. 중국 상장기업 유형별 OFDI 강도 추세 (2007-2022)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이 시기 중국의 정책적 환경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일대일로 제창과 함께 국가개발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의 해외투자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본토 증시에 상장된 화교 기업들은 이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반면 외자기업은 이러한 정책 자원 접근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화상 네트워크를 통한 현지 시장 접근성은 여타 기업 유형이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차별적 자산으로 작용했다. 비공식적 관계망에 기반했던 과거의 꽌시가 자본시장의 유동성 및 일대일로라는 국가 전략과 결합하면서, 중국 글로벌 확장의 효과적인 매개자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중국 기업 해외투자의 이중트랙 메커니즘

결론적으로 현재 중국의 글로벌 확장은 단일한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유기업의 해외투자가 자원 확보와 인프라 건설과 같은 전략적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면, 화교 상장기업들은 이윤 동기와 유연성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자가 국가 안보와 지정학적 영향력 확장을 위한 ‘하드웨어’를 깔고 있다면, 후자는 그 위에서 시장 주도의 ‘소프트웨어’를 뻗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이중 트랙(dual-track)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화교 상장기업들은 본토 자본시장 상장을 통해 확보한 제도적 자산과 글로벌 화상 네트워크라는 관계적 자산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으며, 이 두 자산의 결합은 여타 기업 유형이 단기간에 모방하기 어려운 구조적 경쟁우위를 형성한다.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을 통해 전략적 외교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제도화된 화교 자본이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허용함으로써 서구의 국가자본주의 비판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동시에 화교 상장기업들은 국가의 정책 자원을 활용하면서도 민영기업의 외양을 유지함으로써 투자 대상국의 경계심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 구조는 각 주체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정교한 분업 체계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세계 진출을 국가자본주의라는 단일한 프레임으로만 파악한다면, 미시적 시장 생태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구조적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과 같이 중국과의 공급망 연계가 긴밀한 경제에서는, 표면적으로 민간 혹은 해외 화교계 기업으로 분류되는 투자 주체가 실질적으로는 중국 국가 전략의 연장선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제도적 규율을 수용하면서도 화상 네트워크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제도화된 화교 상장기업. 이들이 앞으로 세계 경제와 다국적 공급망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그 실체적 메커니즘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박영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표는 필자가 직접 작성한 것임.

(21999) 인천 연수구 갯벌로 169 인천대학교 미추홀캠퍼스 동북아물류E-biz센터 205호
Tel. 032. 835. 9601 Fax.032. 835. 4886

발행인 : 장정아
편집인 : 안치영

주    간 : 박계화
이메일 : rccp@incheon.ac.kr

개인정보처리방침
※「관행중국」에 게재되는 모든 기사(사진제외)에 대한 저작권은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본 학술원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은 무단 사용을 삼가길 바랍니다.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