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해외 중국학 연구성과 소개 (9) _ 리페이
[편집자의 말]
2025년 8월호부터 시작되는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코너는 우리 연구소의 연구 아젠다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최근 발표된 중국학 관련 주요 연구 성과들을 엄선하여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국립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중국적 표준과 질서 재구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연구 아젠다를 바탕으로, 다음 다섯 가지 주제에 관련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중국 향촌사회와 그 거버넌스의 변화
△ 물류/유통 네트워크와 관계망의 변화
△ 국경지대에서의 인적/물적 교류와 국경관리
△ 한반도 화교의 해외이주, ‘일대일로’와 화교의 역할
△ ‘일대일로’와 중국적 세계질서 담론
본 코너를 통해, 위의 다섯 가지 주제와 관련된 해외 중국학 연구의 최근 성과를 국내 연구자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중국에서 출판되어 국내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연구논문이나 학술 전문서적을 중심으로, 그 초록이나 서평을 바탕으로 정치적 색채가 옅고 비교적 객관적·중립적인 내용을 선별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중국 관련 지식과 중국학 관련 학술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자 한다.
[제목]
『앞물결과 뒷물결: 근대 중국 지식인의 정신세계』
중문: 『前浪后浪:近代中国知识分子的精神世界』
[서지사항]
저자: 쉬지린(许纪霖)
출판사: 上海三联书店
출판연도: 2025
ISBN: 9787542686206
[요약]
이 책의 저자인 쉬지린은 중국 근대 사상사 연구의 대가로 중국 근대 지식인들과 그들의 사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수십 년간 진행해 온 연구를 사상사 연구의 차원을 넘어 정신사, 심성사(心性史)의 차원에서 재정리하고, 중국 근대 지식인의 분류 체계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 결과, 저자는 기존의 이데올로기적인 경향이나, 전통 가치와 근대 문명에 대한 태도와 같은 일반적인 도식 대신, “앞물결과 뒷물결”, 즉 지식인 집단의 세대교체와 내부 분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분류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단순한 사상사나 관념사의 서술에 그치지 않고, 이 책은 몇 차례의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서로 다른 세대 지식인 집단의 등장, 그 집단 내부 감정·의지·심성의 분화, 그리고 그 분화가 차세대 지식인 집단에 미친 영향이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정신사 혹은 심성사로 재조명했다.
저자는 만청에서 중화민국 초기, 오사운동, 국민혁명 시기, 그리고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식인들이 단지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등과 같은 이념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공론장에 서 있었는지, 어떤 심성구조를 가졌는지, 어떤 조직적 훈련을 받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사상사와 정치사를 연결시키는 매우 과감한 학문적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대체로 지식인 집단의 세대별로 이루어진다. 이 책의 장절은 만청의 관료사대부와 문인사대부, 신해혁명(辛亥革命) 시기의 급진 지식인, 오사운동(五四運動) 세대 내부의 신파와 구파, 오사운동 이후 지식인의 분화, 그리고 국민혁명과 일이구운동(一二九運動) 세대의 혁명 지식인이라는 순서로 구성된다.
장별로 보면, 관료사대부로 대표된 지식인 집단을 다루는 제1장은 만청 관료사대부가 어떻게 스스로를 개조했는지에 주목한다. 여기서 핵심은 송명(宋明) 이학(理學)의 장기 지속 속에서도 만청에 이르면 “리(理)” 중심의 도덕적 질서에서 “세(勢)”와 “경세치용(經世致用)” 중심의 현실 대응으로 이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저자는 증국번(曾國藩)·이홍장(李鴻章) 계열의 관료사대부가 여전히 유교적 규범 안에 머물렀지만, 시대의 압력 속에서 점점 실용적 판단을 중시하게 됐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실용적 자기개조만으로는 체제 바깥에서 솟아오른 변법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강유위(康有爲)와 같은 문인사대부형 개혁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이어서 제2장은 강유위·양계초(梁啟超) 등으로 대표되는 문인사대부 집단의 정신세계를 분석한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흔히 보수·개혁의 대립구조로 이른바 ‘변법파(變法派)’로 단순화된 이들 지식인들에 대해, 저자가 “보중국불보대청(保中國不保大清)”이라는 당시 이들을 비판했던 보수파의 담론으로 이들의 심성을 새롭게 읽는다는 데에 있다. 즉 소위 변법파 세력은 더 이상 청 제국 자체를 절대적 가치로 보지 않았고, “중국”이라는 더 큰 공동체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무술변법의 실패는 변법파의 무능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국가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라는 더 깊은 차원에서 기존 관료집단과의 심층적 이해충돌로 이해해야 한다. 동시에 저자는 정치로서의 무술변법은 실패했지만, 계몽운동이자 중화 민족주의 관련 공론장의 재편으로서는 오히려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제3장에서는 청나라의 마지막 10년과 신해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급진적 지식인층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단순히 서양 사상을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아니라, 제국 체제와 유교 질서 중심부에서 주변화되고, 그리고 과거제(科擧制) 폐지 이후 기존 관료와 문인 두 사대부 집단에서 분리된 “신유사(新游士)”였다. 이들의 정신세계는 배만(排满)·복한(復漢)의 급진적 민족주의, 무정부주의적 파괴 정신, 그리고 허무주의적·주관주의적 “지사(志士) 정신”이 결합된 독특한 심성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신해혁명 전후 급진 지식인의 등장을 단순한 서구 사상의 수용으로 보지 않고, 중국 변방부의 전통적인 반(反)중심성, 유교 질서에 내재된 협객(俠客)성, 반정통성, 그리고 중화제국 체제와 유교적 질서 주변부 청년층의 실존적 불안과 결합한 결과로 본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제4장은 오사운동 시기의 지식인 집단 내부 분화를 다루는 장으로 기존의 통설과 매우 다르게 논술해서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오사운동 시기의 지식인 집단 분화를 “신파와 구파”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구파 내부에도 혁신적인 요소를 가진 세력, 곧 “구파 중의 신파”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서구 문명과 중국 문화를 동시에 바라보면서도, 신파의 급진적 태도와는 다소 다른 자세를 취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파 중의 신파와 진짜 신파 간의 차이가 사상 내용 그 자체보다 단지 ‘태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오사운동 시기의 신구 논쟁은 항상 사상과 이념의 본질적 차이로 귀결됐지만, 공론장의 주도권, 세대 간의 자아의식, 도시 청년과 소도시 청년의 차이에서도 발생했다. 이 장은 오사운동을 지나치게 단선적인 진보 서사로 읽지 않고, 동시대 내부의 중간지대와 회색지대를 복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5장은 오사운동 이후 지식인의 집단적 정신적 위기, 그리고 그 극복 과정을 다룬다. 오사운동은 단순한 해방의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의 붕괴 이후 허무와 공허가 집단적으로 심화된 시대였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오사운동 이후의 청년은 실업, 경제적 불안, 사랑과 결혼의 좌절, 사회적 진로의 막막함 등 훨씬 현실적인 곤경까지 떠안게 됐다. 그래서 이들은 실천과 행동을 통해 허무와 불안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이러한 의지는 실천과 행동의 심화에 따라 점차 신념이 됐다. 여기서 저자는 “문제와 주의” 논쟁 이후 급진 청년들 사이에서 지식으로서의 사회주의와 신념으로서 사회주의가 분기하는 과정을 그린다. 즉 “문제”를 중요시하는 청년 지식인들이 점진적 개량과 학문적 탐구를 중시했다면, “주의”를 중요시하는 청년 지식인들은 이를 집단적 신념으로 받아들여 혁명가로서 길을 택했다.
제6장은 제5장의 논지에 이어 “문제와 주의”의 분기가 어떻게 중국공산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는지를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사회주의 사상이 처음부터 하나의 완성된 교의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경쟁하는 느슨한 장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점차 “유연한” 사회주의나 서로 논의와 공존이 가능한 사회주의가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강경한 사회주의’, 더 나아가 조직·기율 논리를 갖춘 레닌주의로 진화됐다. 특히 창당기 지식인 내부에서도 이론형과 실천형, 조직가형과 사상가형의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국제주의적 조직 원리와 당의 기율이 점점 우세해졌다. 이 장의 핵심은, 중국 공산주의의 성립이 단순히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승리가 아니라, 더 이상 공허한 이론만으로 견딜 수 없었던 당시 ‘주의파’ 지식인의 급진적인 신앙 욕망과 조직화에 대한 욕구가 결합한 결과였다는 데 있다.
제7장은 오사운동 이후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지식인 집단 간의 논쟁을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 논쟁을 단순히 자유주의 대 마르크스주의의 논쟁으로 환원하지 않고, 지역 출신, 활동 공간, 학계와 예술계와의 관계 등의 복합적인 요소로 다시 읽었다. 더 나아가 저자는 1920년대 중후반의 젊은 문인들에게서 “신유망주의(新流氓主義)”라고 부를 만한 공격성과 조롱의 풍조가 강화됐다고 본다. 이는 단순한 문체의 변화가 아니라, 오사운동 이후 도덕적 감수성이 약해지고, 공론장이 적대적 전장으로 변해 가는 과정의 징후다.
이어서 제8장은 앞서 제4장과 짝을 이루는 장으로, 여기에는 신파 내부에 존재한 보수적 요소를 분석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곧 학형파(學衡派)이다. 저자는 학형파를 단순한 반동 세력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구식 학술 훈련을 받았고 근대 지식 체계를 이해했지만, 그들의 관심은 중문의 위상과 중국 문명의 정통을 지키는 데 있었으며, 대중적·평민적, 그리고 백화문(白話文)을 창도하는 오사운동 정신과 충돌했다. 따라서 이들은 보수 세력이 아니라, 근대성의 세례를 받았음에 불구하고, 고전적인 품격과 정신적 귀족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오사운동 역시 절대적이고 단선적인 근대성 계몽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주변부에서 전개된 다양한 근대성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제9장에서는 1920~30년대 혁명 지식인 집단을 국민혁명 세대와 일이구운동 세대로 나누어 비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두 세대는 대체로 같은 혁명의 세대로 분류됐지만, 혁명으로 나아간 계기와 사회적 배경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국민혁명 세대는 몰락한 명문가 자제, 가부장적 가정의 억압, 개인적 탈주 욕망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반면, 일이구운동 세대는 1930년대 항일 국면과 북평(北平)의 명문대라는 정치화된 공간 속에서 형성됐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두 세대의 지식인들은 모두 혁명적 낭만주의와 개인영웅주의를 포기하고, 주의에 대한 더 강한 신념과 조직성을 갖춘 조직에 복무하는 지식인으로 변모했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