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방콕 화인 동향단체 설립의 천화자선의원(天華慈善醫院) _ 이정희
방콕을 대표하는 불교 사찰인 황금불사원 맞은편, 야오와랏거리의 패루 부근에 천화자선의원(중국어로는 톈화자선의원(天華慈善醫院), 영어로는 Thian Fah Foundation Hospital)이 있다. 병원의 정문 패루는 고풍스러운 중국식 건축으로, 붉은 기둥에 황금색 용, 푸른 기와로 덮인 3문(三門) 구조로 되어 있다. 정문에는 ‘天華醫院’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좌우 기둥에는 크게 ‘天’ 자가 새겨져 있다. 패루의 뒷면에는 ‘痌瘝在抱(통관재포)’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국 고전 《상서(尚書)·순전(舜典)》에 나오는 구절로, 순(舜)임금이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긴다는 뜻에서 사용되었다. 통치자가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가슴에 품고 걱정한다는 의미이다.

사진1. 천화자선의원의 패루
천화자선의원이 설립된 것은 1905년으로 올해 120주년을 맞이했다. 방콕의 조주회관을 비롯한 각 동향단체와 화상이 당시 가난하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의술을 베풀기 위해 설립했다. 설립 당시 미곡상, 목재상, 잡화상을 하는 유력 화상뿐 아니라 태국 역대 군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는 라마 5세(추라롱콘왕)도 기부자로 참가했다. 라마 5세는 1905년 9월 19일 오후 6시 천화자선의원의 개원식을 주관하기도 했다. 위의 병원 정문의 패루에 새겨진 ‘痌瘝在抱(통관재포)’ 글자는 라마 5세를 두고 쓴 것으로 보인다. 개원 당시는 200여 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을 갖추고 중국 전통 의술로만 치료했다. 1933년에는 서양식 의술 시설을 갖춘 현대식 병원으로 거듭났다. 1965년에는 7층 건물의 신관이 개원하여 병상 150개를 새롭게 설치하였으며, 1974년에는 4층 건물의 간호사 숙소가 개관했다.
천화자선의원은 극빈 환자를 위한 무료 치료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병원비로 인해 환자로부터 받는 수입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웠다. 그래서 방콕의 조주회관을 비롯한 각 동향회관이 천화자선의원을 관리·운영하기 위해 이사를 파견해 이사회를 구성했다. 이사회는 각 동향회관에서 파견된 이사들로 구성되고, 각 동향회관이 돌아가면서 이사장을 맡게 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재무 담당 이사만은 동향회관의 인구가 가장 많은 조주회관에서 맡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는 재정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의도이다.

사진2. 천화자선의원의 병원 건물
현재의 이사회는 제15대이다. 이사 대부분은 화인이다. 이사회의 이사장과 이사는 태국과 방콕을 대표하는 화상들이다. 예를 들면, 제9대 이사장인 천샤오양(陳紹揚)은 현재의 차오저우시에 포함된 차오안현(潮安縣) 출신으로 방콕 조주회관의 부주석을 지냈다. 야오와랏 거리의 4성급 호텔인 다화호텔(大華大酒店)의 전무이사, 타이창리여행유한공사(泰昌利旅遊有限公司) 회장, 화메이주바오유한공사(華美珠寶有限公司) 회장을 맡고 있다. 천샤오양 이사장의 사업은 호텔업, 관광업, 요식업, 보석업, 국제무역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으며, 태국중화총상회의 부사무총장(副秘書長)을 지냈다.

사진3. 관음불전의 관세음보살 성상
천화자선의원 병원 원내에는 ‘관음불전(觀音佛殿)’ 건물이 있다. 불전의 정문은 붉은 기둥, 노란 기와, 푸른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용과 봉황이 새겨져 각종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전 가장 안쪽에 봉안된 것은 관세음보살 성상(聖像)이다. 관세음보살 성상은 금색(金色)으로 되어 있다. 둔황 벽화 양식으로 당대(唐代) 예술가의 작품이다. 송대(宋代)에 조각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래 중국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의 안러사(安樂寺)에 봉안되어 있던 성상은 일본 패전 이전 홍콩으로 옮겨졌다가 패전 이후 태국으로 옮겨져 현재의 장소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올해 1월 23일 바르셀로나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파우병원(Hospital de la Santa Creu i Sant Pau)을 견학할 때 병원 단지 내에 성당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스승인 몬타네르가 건축한 이 성당은 환자와 의료진이 미사, 기도, 장례식 등을 드릴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관음불전은 환자와 의료진에게 그러한 역할을 하는 종교적 공간이었을 것이다. 관세음보살 성상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병원의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태국 화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병원 내에는 작은 묘우인 복덕사(福德祀)가 관음불전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복덕사는 병원과 토지를 지키는 토지신, 치유와 구제의 신인 약왕선사(藥王禪師), 의술의 신으로 숭상받는 화타선사(華佗禪師) 등이 모셔져 있다.
태국에는 화인 단체가 관리하는 병원은 천화자선의원 이외에도 많다. 중국 전통의 선당(善堂)과 민간종교가 결합한 화인 민간자선단체가 조직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보덕선당(報德善堂)과 의덕선당(義徳善堂)은 각각 자체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간자원봉사단체로서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화교·화인의 ‘세계’ 18】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G. William Skinner, Chinese Society in Thailand: An Analytical Historiy, Cornell University Press, 1957.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