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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중국'은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의 웹진입니다. '관행중국'의 전신은 '중국관행웹진'으로 2010년 9월에 창간호를 발행한 이후 2016년 7월까지 총 70회를 발간했습니다. 71회부터는 '관행중국'의 이름으로 개편 발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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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차이나타운의 면모를 가진 방콕의 야오와랏 거리 _ 이정희

Vol.179/2025.08
관행 톡톡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07-3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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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50개 구(區) 가운데 면적이 가장 좁은 삼판타웡(Samphanthawong)이 있다. 인구는 약 45,000명에 불과하지만 주민의 상당수는 화인이다. 방콕차이나타운은 삼판타웡 구 가운데서도 화인의 거주지와 상점이 밀집한 삼펭거리(Sampheng Road), 짜룬꾸룬 거리(Charoen Krung Road), 야오와랏 거리(Yaowarat Road) 일대를 포함한다. 거리 세 곳 가운데 가장 번화한 곳이 야오와랏 거리이며, 이곳을 일반적으로 방콕차이나타운이라 부른다.

 

 

<사진1> 야오와랏 거리와 황금불 사원

 

 

<그림1> 방콕차이나타운 지도

 

 

필자는 약 1.5km에 달하는 야오와랏 거리 가운데에 자리한 싱가포르계 자본이 경영하는 호텔로열방콕차이나타운(Hotel Royal Bangkok@Chinatown)에 머물렀다. 필자가 이 호텔에 도착한 것은 원소절 다음 날인 13일 오전 11시였다. 도로는 노란 바탕의 현수막으로 넘쳐났다. 현수막은 춘절 축하, 상점이나 백화점 광고, 종친회 개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야오와랏 거리를 소개하는 안내 간판은 태국어와 영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 거리는 1892년부터 1900년 사이에 라마 5세의 명령으로 건설되었다. 옹앙 운하에서 황금불 사원까지의 1,532m 거리이다. 야오와랏은 ‘젊은 왕’을 뜻하며 15살의 나이에 즉위한 라마 5세를 가리킨다. 야오와랏 거리는 그 후 거리 양측에 화인 거주와 상점이 밀집한 태국을 대표하는 차이나타운으로 발전했다. 야오라왓 거리 양측에는 7층과 9층 빌딩이 나란히 서 있는 당시 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군이 형성되어 있었다. 거리에는 많은 화인 식당과 가장 현대적인 짤름 부리 영화관Chaloem Buri Cinema), 금방과 100여 개의 상점이 있었다. 야오와랏 거리의 중요성은 지금도 퇴색되지 않고 있으며, 태국의 가장 번화한 거리의 하나이며, 상업과 미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야오와랏 거리는 차이나타운으로서 갖춰야 할 요소를 완벽하게 겸비하고 있다. 먼저 붉은 기둥과 금색 장식, 중국 문양의 정교한 조각들로 장식된 대형 패루가 설치되어 있다. 1999년 12월 세워진 패루에는 ‘圣寿无彊(성수무강)’이라 적혀 있다. 우리로 하면 만수무강과 같은 뜻이다. 만수무강의 대상은 라마 9세인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이다. 그는 1946년에 즉위하여 2016년에 퇴임한 태국 국민으로부터 크게 존경받았던 인물이다. ‘圣寿无彊’의 붓글씨는 라마 9세의 둘째 딸인 시린톤(Sirindhorn, 詩琳通) 공주가 쓴 것. 현재의 국왕인 라마 10세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시린톤은 1981년 첫 중국 방문 이후 중국의 복단대 등지에서 단기유학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태국과 중국 간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는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은 화인 동향회관. 화인 최대의 방인 조주회관은 야오와랏 거리서 6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조주회관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본 바가 있다. 객가방의 화인회관인 객속총회(客屬總會), 짜룬꾸룬 거리에는 광동방의 화인회관인 광조회관(廣肇會館)이 자리해 있다. 광조회관은 1877년, 객속총회는 1909년 각각 설립됐다. 또 다른 주요 방의 하나인 해남방의 회관은 1900년경 설립되었다. 1955년 태국 화인의 방별 추계 화인 인구 비중은 조주방 56%, 객가방 16%, 해남방 12%, 광동방 7%, 복건방 7%, 기타 7%의 분포를 보였다. 방콕은 태국 화인 인구의 5할∼6할 정도를 차지했으며, 1910년대는 방콕 인구의 절반이 화인, 1930∼1940년대는 3분의 1이 화인이었다.

 

 

 

 

 

화인회관과 함께 중국 전통의 도교와 불교 사원도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관우를 모신 관제묘,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고묘, 본두공을 모신 대본두공묘(大本頭公廟). 불교식 사찰인 취안사(翠岸寺)와 회경사(會慶寺)도 큰 규모를 자랑한다. 화교학교로는 1920년에 설립된 배영학교(培英學校)가 대본두공묘 바로 옆에 있었다. 이 학교는 조주회관이 설립하여 운영하는 학교이다. 그리고 황금불 사원 맞은편에 화인 전문 병원인 천화의원(天華醫院)이 운영되고 있었다. 1904∼1906년경 방콕의 각 방이 연합하여 설립되었으며, 화인의 기부금을 통해 운영된다. 천화의원 병원 내에는 800∼900년 전 송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야오와랏 거리는 현재 다른 나라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금방이 많은 특징이 있다. 금방은 한자로 ‘金行’이라 적혀 있고 금을 매매하는 곳이다. 어느 금방이든 손님으로 넘쳐났는데 현지 화인보다는 대만, 중국대륙과 홍콩, 마카오 등지의 중화권에서 온 중국인이 많았다. 성발흥대금행(成發興大金行)에 들어가 봤는데 내부는 금색으로 빛나고 벽에는 당일의 금 시장 가격이 적힌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외에 고급 중국요리인 상어지느러미 요리(魚翅料理)와 제비집 요리(燕窩料理) 전문의 중국요릿집이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두 요리 모두 중화 연회의 상징적 고급 요리이다.

 

야오와랏 거리 옆 광장에 야시장인 ‘人街市场(차이나타운시장)’이 있었다. 매우 규모가 컸으며 밤에는 서양인 관광객이 많았다. 각종 음식점과 잡화상점으로 넘쳐났다. 시장 외곽에 ‘皇恩浩荡, 惠泽万民” 泰中建交50周年庆典展览’(황은호탕, 혜택만민 태국-중국건교50주년경축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올해는 양국이 국교를 수교한 지 50주년을 맞이해 각종 기념사진과 양국 관계의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패널을 전시하고 있었다.

 

 

【화교·화인의 ‘세계’ 17】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G. William Skinner, Chinese Society in Thailand: An Analytical Historiy, Cornell University Press, 1957.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제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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