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계 화인 가족 경영, 태국 최대 상업은행인 방콕은행 _ 이정희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방콕 조주회관의 문물관 방문 시, 현관에 광둥성 산터우시 주최의 ‘교비역사문화전(僑批歷史文化展)’이 개최되고 있었다. 교비는 해외 화교가 근대 시기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할 때 사용한 송금과 편지를 말한다. 교비의 문서인 편지, 송금 영수증, 봉투 등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 기억 문화유산 아시아 태평양 목록에 선정되었다.

<사진1> 방콕 시내 Empire Tower에 있는 방콕은행의 지점
이 전시회는 그것을 기념해 산터우시가 개최하는 행사였다. 그런데 문물관 책임자가 교비 전시 여러 패널 가운데 천비천(陳弼臣, 1910-1988)과 천유칭(陳有慶, 1931-2022)을 소개하는 패널 앞에 서서, 긴 시간 두 명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패널에 기재된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천비천(태국 이름은 Chin Sophonpanich). 태국중화총상회 영원명예회장, 태국 방콩은행 창업자. 천비천 선생은 태국 트랑 부(Trang province)에서 태어났으며, 조적은 차오양(潮陽)이다.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해 5살 때 아버지가 그를 고향으로 보내 차오양류두중학(潮陽六都中學)에서 공부했다, 17살 때 가정의 어려움으로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태국으로 돌아와 요리사, 노점상, 노동자와 경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친구와 합자 회사를 창업하여 경영에 힘쓰기도 했다. 1944년 방콕은행을 설립하여 뛰어난 경영으로 부단히 발전을 이뤄내 태국 국내 굴지의 상업은행이 되었다.”
“천유칭 중화전국귀국화교연합회(中華全國歸國華僑聯合會) 부주석. 홍콩중화총상회 영원명예회장, 아주금융집단(亞洲金融集團) 이사장, 천유칭 선생은 부친의 업적을 기반으로 성신(誠信)을 기본으로 한 경영이념을 전개했다, 천씨 금융가는 동남아 지역에서 놀랍고 확고한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진2> 천비천과 천유칭 관련 패널
상기의 내용과 함께 천비천이 1973년 1월 9일 중국은행 홍콩지점에서 산터우의 궈리샹(郭麗鄕)에게 보낸 송금증서, 천유칭이 1984년 9월 19일 같은 지점에서 산터우의 동일 인물에게 보낸 송금증서가 전시되어 있었다. 교비가 근대 동남아 화교가 교향(僑鄕)의 가족에게 보낸 송금 기록물이라고 한다면 천비천과 천유칭이 은행을 통해 송금한 증서는 그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산터우시와 조주회관은 왜 천비천과 천유칭 관련 패널을 넣어 전시하고 있는 것일까?
천비천이 1944년 설립한 방콕은행은 태국을 대표하는 민간 상업은행이다. 방콕은행의 자산 규모는 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의 상업은행 가운데 6위를 차지한다. 태국 금융시장 점유율은 전체 예금액의 18.4%, 대출액의 17.7%로 상업은행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15개국에 32개 지점망을 보유하고 있다. 제일기획의 태국 현지법인인 Cheil(Thailand) Ltd.의 관리 주재원 송정희 프로(CFO)는 “우리 법인의 주거래 은행도 방콕은행이다. 타 은행 대비 보수적으로 운영해서 젊은이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절차가 까다로운 방콕은행이 내부 통제 관리 등의 측면에서 선호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방콕은행은 태국의 대형 상업은행 가운데서는 드물게 가족 중심의 경영 체체를 이어오고 있다. 천비천에 이어 1971년 제2대 방콕은행의 회장에 오른 것은 그의 아들 천위차이(陳裕財, 태국 이름은 Chote Sophonpanich), 1994년 제3대 회장에 취임한 천위런(陳裕仁, 태국 이름은 Chartsiri Sophonpanich)은 그의 손자로 하버드 경영대학원(MBA) 출신이다.
천비천의 방콕은행 설립은 화교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먼저 은행 설립 자체가 방콕차이나타운에서 시작했다. 1944년 11월 야오와랏(Yaowarat) 거리 인근 사판루엉(Saphan Luang)의 차이나타운 지역 내에서 두 채의 상가 건물(숍하우스)에서 방콕은행을 개업했다. 이 지역은 화교 상업활동의 중심지로 화교 무역상 및 중소 상공인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이들 상인 대부분은 조주계 화교들이어서 천비천의 동향인이 많았다.
그 이전 화교 상인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기관은 영국과 프랑스계 은행이었다. 그런데 1941년 12월 일본이 동남아 침략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태국을 압박, 양국은 12월 21일 일태동맹조약(日泰同盟條約)을 체결했다. 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하자 영국과 프랑스계 금융기관의 활동이 위축되어 화교 상인의 유동성 공급에 문제가 발생했다. 천비천은 이런 위기적 상황을 기회로 판단하고 조주계 화교네트워크를 활용해 자본을 모집하여 방콕은행을 설립했다. 방콕은행은 이들에게 신속한 대출, 신용장 발급, 환전 등을 제공하면서 화교 경제의 발전을 이끌어 냈으며, 그것이 방콕은행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천유칭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1931년 부친의 고향인 차오양에서 태어났다. 전쟁으로 어린 시절 광둥에서 보내다가 1946년 모친과 홍콩으로 이주하고 홍콩에서 초중고를 다닌 후 미국에서 금융학을 전공했다. 그는 방콕은행이 1950년대 홍콩에 진출해 설립한 홍콩상업은행(Hong Kong Commercial Bank, HKCB)에 들어가 1965년 총지배인, 1985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1990년 홍콩상업은행과 아시아보험을 합병하여 금융지주회사인 아시아금융그룹(Asia Financial Group)을 설립하여 회장이 되었다. 그는 2001년 중국의 중국은행(홍콩)이 홍콩상업은행(HKCB)을 흡수합병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을 평가받아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 산하의 관변단체인 중화전국귀국화교연합회(中華全國歸國華僑聯合會)의 부주석을 역임하기도 했다.

<사진3> 태국중화총상회 건물
천비천은 조주회관의 집행위원회에서 집행위원, 명예주석, 영원명예주석을 역임하면서 회관의 운영에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으며, 고향인 조주 지역의 교육기관 및 문화시설 설립에 기부했다. 또한 태국 내 최대 규모의 화교 경제단체인 태국중화총상회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하고 영원명예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태국중화총상회는 1991년 싱가포르중화총상회, 홍콩중화총상회와 함께 세계화상대회를 공동으로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에서 2005년 개최된 제8회 세계화상대회 때도 태국중화총상회는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화교·화인의 ‘세계’ 16】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사진1은 Cheil(Thailand) Ltd.의 관리 주재원 송정희 프로(CFO)가 제공한 것임
사진2와 사진3은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