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가 만들어가는 글로벌 차이나 _ 조영진
2025년 3월, 나는 말레이시아 말라카 (Melaka)에 있는 말레이시아 한학원 (Malaysian Han Studies)을 다시 찾았다. 2022년 11월 나미비아 스텝과 함께 처음 한학원에10일간의 교육과정에 참여한 후 2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두 번 째 방문이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대학에 쿼터제 중간에 일주일 간의 방학이 있다. 마침 한학원에서 그 주말에 영어로 진행되는 단기교육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갑작스럽게 또 조금 무리수를 두어서 여행 일정을 잡았다. 이번에는 단기 주말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부랴부랴 신청서를 내고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말레이시아 한학원에서 꾸준히 해오고 있는 “교육”이라 함은 공자식 생활 도덕 교육인데, 대표적으로는 弟子規 (dizigui) 의 챕터를 번역해서 재편집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세미나와 강연으로 구성된 합숙훈련을 중심으로 한다. 이 dizigui 교육은 연중 내내 중국어반과 영어반을 달리하여 이루어지는데 11월 달에는 6일간의 집중 영어반 교육이 진행된다. 2022년 내가 참석했던 교육도 이 집중 영어 dizigui 반이었다. 주말반이나 일주일 집중반 모두 참가자들은 한학원에서 숙식을 하며 교육에 참가하게 되는데 비용은 무료다. 한학원은 참가자들의 국적도 가리지 않고, 신청의 문턱도 높게 정하지 않았다. 공자선생의 생활 도덕에 관심이 있고 한학원의 스케줄과 생활 수칙을 성실히 따를 의향이 있다면 누구든 환영하는 듯 했다.
2022년 처음 이 한학원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된 이후로,한학원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늘어만 갔다. 비영리 단체로, 공자의 사상과 도덕 교육을 일반인이 실생활에 직접 도입하고 실천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전환한 교육 과정도 그렇고, 무료 교육, 무료 숙식 제공을 가능하게 하는 지속적인 재원조달도 궁금했고, 왜 말레이시아에 이런 기관이 가능했는지 (싱가폴이나 인도네시아가 아닌), 왜 말레이시아의 중국인들은 이러한(혹은 “이까짓”) 도덕 교육과정에 자신의 황금 같은 주말을 바치고 심지어 일주일 휴가를 내면서까지 찾아 오는지 궁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강사팀 스텝으로 봉사를 하고 있는 변호사 Mr. Lee는 매 3개월마다 열리는 주말반 그리고 연말에 있는 6일간의 교육과정 전체에 꼬박꼬박 7년째 참여하고 있었다. 한학원에는 Mr. Lee와 같은 강사가 여러 명 포진해 있다.
이번 방문은 필자가 주로 의지해 오던 인류학 조사방법 (장기간의 참여관찰을 통해 정보를 자연스럽게 모으는)이 아닌 단시간 방문을 통해 필요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적어오는 식의 조사방법을 써야 했다. 이 접근 방법이 낯설고 불편하기까지 했지만, 한학원 스텝의 바쁜 스케줄과 필자 개인의 여건 상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했다. 어찌 되었든 이번 방문을 통해 한학원의 Baolan Song교장선생님과 교육자 한 분을 각각 한 시간정도 인터뷰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은 2022년에 한학원에서 처음 만나 알게 되었던 말레이시아 중국인 자원봉사자 분들과 친목을 도모했고, 교육 과정이 끝난 후로는 말라카의 시내와 쿠알라 룸푸르 등에서 그들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관계를 쌓았다.
말레이시아 한학원은 말레이시아 중화문화교육센터 (2009년 설립)를 전신으로 2016년에 불교스님, Master Jingkong (淨空法師)이 말라카에서 정식으로 설립했다. 중국 고대 선현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의 삶과 지구가 구조 (saved)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공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물론 불교와 도교적 요소가 곳곳에 있지만) 다양한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실행해 왔다. 한학원의 가르침은 철저한 실천에 그 중심이 있어서, 한학원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치원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도 밥 먹는 시간에도 철저하게 줄을 서고, 뛰지 않고, 자기의 뒷자리를 청소하는 등 여느 아이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처신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수업을 듣는 어른들도 발걸음, 말투, 손짓, 몸짓을 조심하고 삼가하는 등 한학원은 그 자체로 “겸손과 하모니”로 점철되는 또다른 우주를 형성한다. 제공되는 음식은 모두 채식이며, 주요 수업과 일정의 진행은 소수의 정규직 직원과 다수의 자원봉사자들의 협업으로 진행된다.
한학원의 수업에 참여하면서 주변을 관찰하다 보면 중국정부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프로젝트, 공자학원 (Confucious Institute)이 떠오른다. 2004년 서울에 최초의 공자학원이 설립된 이후로,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의 대표적 소프트파워 프로젝트로 국제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그 이름과는 달리, 공자학원에서 공자 사상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만난 나미비아대학 공자학원의 중국인 교육자들도 공자사상이나 유가식 도덕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것은 필자가 중국에서 유학을 했던 때 알고 지내던 중국인 학우들과 교수들, 이웃들에게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공자학원은 많은 비판과 논란속에서도 계속 성장해왔는데,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공신력 있는 중국어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공자학원이 중국의 문화력 (Cultural Power)을 전세계로 전파하는데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얼마나 진심으로 비중화권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며 감동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중국문화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보다는 의문이 많아 보인다. 다시 말해, 공자학원이 설립된 나라들에서 이 기관이 현지인들에게 중국어 교육을 비교적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도구적 가치 이상의 다른 어떤, 마치 Joseph S. Nye (1990)1) 가 오래전에 말했던, 중국에 대한 “자발적인 매력감”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중국 소프트 파워증진이라는 전략적 모델로서의 공자학원은 서사와 감동이 거의 없는 반면, 말레이시아의 작은 역사 항구도시 말라카에서 민간의 자본과 후원의 힘으로 시작하고 유지해온 한학원은 서사와 감동 그 자체이다. 한학원은 2016년 정식으로 문을 연 이후, 단단한 지지자 그룹을 조용하게 형성해 오고 있다. 한학원에 교육을 받으러 오거나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주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고, 한학원 자체는 재정과 투자의 규모 면에서 공자학원과 비교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그렇다고 결국 인구의 20%가 조금 넘는 중국계를 위한 로컬기관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다. 자발적 참여만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학원인 만큼, 참여자들의 기관에 대한 충성도와 믿음은 상당하고 지속적이다. 무엇보다도, 한학원에서는 진심으로 공자사상을—중국의 문화 도덕의 가치를—가르치고 전파한다.
무료교육과 강력한 실천중심의 교육은 참여자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인다. 적어도 한학원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다들 한 번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극기 훈련도 아니고, 정신 승리법을 연마하는 것도 아닌데 참여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투자한다. 실천을 워낙 중요시하기 때문에 한 번 참여한 사람들의 재참여 비율은 상당히 높고 (다시 자신을 재점검 한다는 차원에서), 한학원 강의의 메세지는 그래서 놀랄 만큼 간단 명료하다. 복잡한 고도의 유가 사상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일상에서 그 사상의 일부분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지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부의 관계나, 부모 자식간 관계에 대한 강의 시간이면, 강의자들은 수많은 일상생활의 예 (대부분 자신의 삶의 예)를 그대로 공유한다. 나는 한학원의 송교장에게 왜 하필 수많은 공자의 저서 중에 dizigui(아이들을 위한 도덕예절지침)를 선택해서 교육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송교장은 “아이들에게 시키는 가장 간단하고 상식적인 예절/생활 지침도 우리 어른들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 않냐.” 라는 짧고 강력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2025년 3월 한학원에서 열린 dizigui 주말반 수업시간.
참여자들이 수업 시작 전 공자의 초상화 앞에 세 번 예의를 갖추고 있다. (사진 필자)

Dizigui수업시간에 어떻게 각자의 방의 변기를 청소하는지 시범을 보고 있는 참여자들.
한학원의 수업은 이렇게 “실천”에 방점이 찍혀있다. (사진 필자)

Dizigui 참여자들은 아침식사 전 이렇게 함께 걷기를 한다.
한학원의dizigui 는 지식과 함께 몸의 실천을 중요시 한다. (사진 필자)
한학원의 열린 정책 때문인지, 해마다 열리는 영어반 dizigui는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의 나라들에서도 참여자가 온다. 한학원의 수업에서는 모든 참여자들이 공자의 초상화 앞에 수업의 시작과 마지막에 세번씩 고개 숙여 예의를 표해야 한다. 누가 우리의 스승인지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교육이 진행되는 매일매일 정확하게 확인한다. 중국 정부가 민주주의, 인권, 자유주의 등 서구에서 출발한 가치에 대항하기 위해 대안의 프레임으로 내세웠던 유교는 공자학원이 아닌, 사실 이렇게 중국 밖에서 치열하게 실천되고, 자발적으로 받들어지고 있다.2) 한학원에 참여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국가로서의 중국 (People’s Republic of China) 에는 충성도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 역사, 사상으로서의 중국 (China)에는 무한한 신뢰를 보인다. Master Jingkong 의 선언처럼, 공자의 가르침이 병들어가는 인간관계와 지구적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계승하려 애쓴다. 중국인의 지혜 속에 현대의 많은 고질적 문제에 관한 해결점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국가나 정치체제에 충성하는 근대의 민족주의와는 확연히 결이 다른 충성심이다.
중국의 전지구적 영향력에 대한 연구는 많다. 특히 중국 정부가 어떻게 “going out” 정책을 이용해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의 인프라 설비 건설에 참여하는지는 2013년 시작한 BRI (Belt and Road Initiatives) 와 같은 정책을 통해 이미 물적 증거로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소위 “글로벌 차이나”라는 혹은 the rise of China라는 흔한 문구에서 말하듯이, 중국의 세기로 보는 것이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John Keane 과 Bogang He (2024) 는 이러한 중국의 등장을 China’s galaxy empire라 명명 하기도 했다.3) 당연하게도 이러한 글로벌 차이나 담론의 중심에는 늘 중국 정부가 있다. 마치 중국 정부가 모든 힘의 유일한 원천으로 엄청난 재력과 자원을 동원해 일으키는 국제적 소용돌이처럼 중국의 국제 사회 진출과 위엄은 그렇게 한방향에서 시작한 강력한 운동이라 여겨져 왔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 정부가 아닌, 다시 말해 nation-state라는 경계의 밖에서 중국의 글로벌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다른 행위자들, 다른 요소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공자학원은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인 공자를 세계에 알리는 데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는데 (그 많은 자원을 들이면서도), 말레이시아의 한학원은 공자의 가르침을 일상 삶의 실천 영역에서부터 되살려 사람들의 몸에 철학을 심는다.
필자가 하고 있는 연구의 한 갈래는 한학원과 비슷한 예를 주시하고 추적해 보는 데 있다. Shelly Chan (2018)4)이 19세기~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진행된 중국인의 세계이민이 어떻게 중국 근대화를 형성했는지를 묻고 밝혔다면, 필자는 어떻게 폭발적 국제이민으로 형성된 중국이민자 사회가 (다시 말해 PRC 밖의 요소와 담론이) 21세기의 글로벌 차이나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 요소와 담론은 파편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한번에 전체를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 각각의 요소는 또한 놀랍게도 중심과 연결되는 (networked)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한학원의 창시자였던 Master Jingkong 은 한학원을 시작하기 직전 초창기에 소수의 교육자들을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중국 후베이성의 루지앙현에서 일정기간 공자사상의 합숙 훈련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왜 Master Jingkong은 공자 사상 교육을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중국을 찾았을까. 사회주의국가에서 유교는 뒷전일 것 같았던 중국에서 무엇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쉽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번 여행에서는 찾지 못했다.
조영진 _ 시카고대학교 Earl S. Johnson Instru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