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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가 황실 제사를 위해 부설한 서릉철도 _ 김지환

Vol.180/2025.09
관행 톡톡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03-0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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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마지막 왕조인 청조의 황제릉은 두 곳으로 나뉘어 조성되었다. 하나는 하북성 준화현에 위치한 동릉이고, 또 하나는 하북성 역현에 위치한 서릉이다. 동릉에는 강희제와 건륭제의 묘소를 비롯하여 서태후의 남편인 함풍제, 그리고 그 아들 동치제의 능도 여기에 조성되었다. 서태후의 사후 묏자리도 동릉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서릉에는 옹정제와 가경제, 도광제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밖에 9명의 황후와 57명의 비도 잠들어 있었다.

 

서태후는 매년 청명절 전후에 황릉에서 황실 조선의 제사를 봉헌해 왔다. 그러나 1900년 8월에 의화단운동이 발생하자 서태후는 광서제와 함께 서안으로 피신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1901년도에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였다. 1902년 1월 서태후가 서안으로부터 북경으로 귀환한 이후 4월에 준화의 동릉을 참배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서릉을 참배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의화단운동 이후 청조는 철도의 부설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는 개혁방안인 신정의 실시를 선포한 바 있다. 따라서 서릉철도의 부설은 청조의 개혁을 내외에 선포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사진 1. 서릉철도 노선도 

 

 

서릉은 북경 동남쪽 130킬로미터의 하북성 역현(易縣)에 위치하였으며, 동릉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1902년 10월 19일 서태후는 군기대신에게 이듬해 봄 길일을 택하여 서릉에서 황실 제사를 드릴 것을 고지하였다. 당해년도 서태후는 나이가 67세로, 당시의 평균수명으로 보자면 매우 연로한 노인에 속하였다. 북경에서 역현의 서릉까지 먼 길을 가마나 마차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노한철도(盧漢鐵道: 京漢鐵道)가 하북성 정정(正定)까지 운행하였지만, 역현을 경유하지 않았다. 원세개는 수하를 파견하여 즉시 해당 노선에 철도의 부설이 가능한지 여부를 타진하였다. 서태후의 명령에 영합하기 위해 같은 해 가을 청조는 노한철도의 고비점(高碑店)역으로부터 지선을 끌어 역현까지 연장하는 서릉철도 부설 계획을 수립하였다.

 

청조는 광동성 남해현 출신의 첨천우(詹天佑)를 서릉철도 부설을 위한 총공정사로 임명하였다. 첨천우는 미국에 유학하여 철도공정을 전공한 중국인 최초의 철도공정사였다. 서태후는 원세개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비 백은(白銀) 60만 량을 편성하여 동으로는 노한철도 신성고비점역으로부터 서로는 역현 서릉 양각장 행궁에 이르는 황릉 참배 전용철도 노선의 부설에 착수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서릉철도였다.

 

 

사진 2. 서릉철도 완공 후 첨천우가 다시 총 지휘하여 개통된 경장철도

 

 

서릉철도가 지나는 연선 지역은 대체로 지세가 평탄하여 4개월의 단기간 내에 완공할 수 있었다. 1902년 12월에 착공한 후 전투를 치르듯 매일 15시간 이상 부설 공사에 전념하여 4개월 만인 1903년 하순에 측량, 노반 조성, 레일 부설, 열차 개통 등을 모두 완료하였다. 5,000여 명에 이르는 철도 부설 노동자는 민공을 징발하여 충당하였다. 서릉철도는 총연장 43.3킬로미터의 표준궤 단선철도로서, 부설 비용으로 총 88만 원이 소요되었다.

 

서태후가 탑승하는 객차는 내부를 용·봉으로 장식하고 양탄자를 깔았으며, 마치 궁전 내부와 다름없이 호화롭게 조성하였다. 규정에 따라 열차 승무원은 모두 반드시 꿇어앉아 기기를 조작하거나 업무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단, 안전을 위해 기관사만은 서서 열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원세개가 서태후에게 주청하여 특별히 승낙을 받았다.

 

서태후가 탑승한 노선의 총연장은 120킬로미터였으며, 주행시간은 두 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서릉철도가 당초 기한 안에 완성되고, 더욱이 열차 설비와 운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자 서태후는 관계자들에게 각종 하사품을 전달하였다. 기관사에게는 황색 마고자와 화령(花翎)1)을 하사하였다. 서태후는 서양인이 자신에게 선물한 스위스제 시계를 총공정사 첨천우에게 하사하고 노고를 치하하였다.

 

이 스위스제 시계는 2009년 광동 불산(佛山)에서 개최된 경매장에 등장하여 무려 인민폐 2,600만 원(한화 약 45억 원)에 낙찰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서태후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열차에 탑승한 황태후로 기록되었다.

 

 

【중국문화오디세이 21】

 

김지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청대 황제가 황족이나 고위 관원에게 하사하던 모자 뒤에 늘어뜨리는 공작의 꽁지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baijiahao.baidu.com/s?id=1751751558019487264&wfr=spider&for=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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