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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2월호
동남아 화교, 공산화된 조국에 마을을 세우다 _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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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성의 대표적 경제특구이자 개혁개방의 상징도시인 심천(深圳)에는 화교신촌(華僑新村)이라는 곳이 있다. 2000년에 조성된 심천의 화교신촌은 1,500여 가구가 거주 중인 아파트 단지다. 그리고 심천 외에 복건성과 광동성에도 같은 지명을 가진 마을이 여러 곳 있는데, 각각 광주(廣州), 천주(泉州), 장주(漳州)에 있다. 사실 이 도시들은 동남아 · 미주 화교화인들의 대표적인 교향(僑鄕)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후인 1950년대 후반 ‘화교신촌’이라는 명칭의 귀국화교들을 위한 마을이 건설된 곳이다. 고층의 현대적인 아파트가 지어진 심천의 화교신촌과는 달리 이 ‘교향’들의 화교신촌에는 단층, 2층, 혹은 3층의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들이 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각 주택들은 건축양식이나 색감이 대륙의 일반적인 건축양식이 아닌, 유럽과 동남아적 요소가 혼합된 (소위 남양南洋양식이라 부르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가운데에서도 개별 주택들끼리는 서로 닮은 구석이 없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중국 속 작은 화교들만의 마을을 형성한 듯한 느낌을 주는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다. 1955년 공산화된 고향에서 화교화인들은 어떻게 마을을 이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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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복건성 천주 화교신촌 단지내 주택. 화교화인 특유의 동서융합적인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2010년을 전후하여 천주 화교신촌의 가옥들은 이국적인 풍경과 분위기로 인해 10-20대의 취향에 맞는 레스토랑, 바, 카페 등으로 리모델링되는 경우가 많아 ‘핫’플레이스로 여겨지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이후 발발한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의 계속된 내전은 공산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1949년 중국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였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전과 이후 특히 바빠진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엉뚱하게도 미국의 중앙정보부, 흔히 CIA로 알려진 대외첩보기관이었다. 현재까지 공개된 당시 CIA의 아시아 관련 보고문서들을 검색해 보면 CIA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의 동향정보를 매우 다양하게 수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주요 창구는 당시 홍콩, 마카오, 동남아 등지에 퍼져있던 화교화인 커뮤니티였다. 화교화인들 사이에 정기적으로 간행되던 신문 · 잡지, 그들 사이에 퍼져있던 소문, 혹은 현지 정보원을 활용한 휴민트 등등이 주요 소스였다. 특히 CIA는 1950년대 동남아시아의 공산주의의 열풍에 휩쓸려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던 화교화인 그룹(물론 장개석 국민당 정부의 부정부패에 학을 떼고, 그 반작용으로 공산당을 지지한 화교화인들 역시 상당수였다)과 미국의 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하던 화교화인 그룹 사이의 갈등에 주목했다. 이와 동시에 경제재건에 애를 먹고 있던 중국 공산정부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한 동남아 화교화인의 ‘애국원조’를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영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동남아로부터 중국으로 향하는 각종 자원 및 자본의 흐름이 끊어진 상황에서 중국정부는 자본력 있는 화교화인들의 본국 투자, 더 나아가 영구귀국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1955년 CIA는 한 장의 편지를 입수하게 된다. 광주에 거주 중인 한 여성이 해외 화교(어느 지역 화교인지는 불분명)인 아버지에게 부친 이 편지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얼마 전 광주의 화교사무국에서 귀국화교가족대표자 모임을 열었어요. 저 역시 영광스럽게도 초대받았구요. 모임의 목적은 광주 근교에 화교신촌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소개하기 위함이었어요. 편지에 마을 건설계획의 개요를 함께 동봉했으니 한 번 읽어봐 주세요. 지금 마을을 건설할 사람들을 모집하기 시작했어요. 화교들이 광주 화교신촌 준비위원회(廣州華僑新村籌建委員會)에 관해 사무국에 편지를 엄청 보내고 있대요. (중략) 이 사업에 이득이 많을 것 같아요. 우선, 아버지의 애국심과 조국 건설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기회예요. 둘째, 우리 가족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집을 빌려야 된다는 걱정을 덜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께서 나중에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인 광주로 오셨을 때 살 집이 생기는 것이라구요.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행복하고 행운인 일이겠어요.

아버지가 직접 설계해서 지어도 되고, 준비위원회에 얘기해서 지어달라고 할 수도 있대요. 정부에서 화교들에게 집을 팔기 위해 대규모로 땅을 확보해 놓을 계획이라고도 하구요. 전체 집을 사거나 한 층만 구매할 수도 있다나 봐요. 단지 내에 학교, 주민회관, 편리한 교통수단을 마련해 놓을 것이라고도 하구요. 1955년부터 짓는다고 했어요.

이만 줄일게요. 화교신촌 건설에 참여할 건지 꼭 답해주세요.”


편지를 보낸 딸이 동봉한 화교신촌 건설개요를 보면 중국 정부가 화교화인들을 해당 사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마련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만 해도 장기임대 가능, 정원 공간 제공, 3년간 재산세 면제,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부르기 좋은 위치, 자녀들을 위한 학교시설, 대금지급의 간소화와 빠른 건설, 화교들에 대한 정부의 특별관리 (특히 재산권 보호 및 임대비 수급 보장), 화교신촌에의 참여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기회 등등이다. 맥락을 모르고 보면 2019년 경기도 인근 신도시의 아파트분양 광고문구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매우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재산세 면제나 재산권을 보호해 준다는 등의 항목은 당시 중국정부가 화교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혹은 화교화인들의 가족(僑眷)들을 위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무엇보다 동남아시아나 홍콩, 마카오, 미국 등에서 서구식 생활방식에 익숙해 있을 귀국 화교들을 위한 다양한 부대시설 및 혜택들도 마련되어 있었다. 화교신촌은 광주 중심부에서 2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건설될 예정이라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마을 내에 마트, 문화센터, 운동장, 배드민턴 코트, 테니스 코트, 분수대, 공공광장, 의료시설, 극장, 그리고 다양한 복지시설 등이 설치될 예정이라는 점 등을 ‘광고’하고 있다. 그 외에도 투자자가 주택을 소유함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금융적 장치들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게다가 편지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형태의 주택들이 병렬되어 있는 단지가 아니라 화교들이 원하면 정부는 부지만 제공해 주고 화교들이 직접 설계해서 건축할 수도 있었다. 직접 짓기 어려운 화교들은 설계도만 마련해 주면 정부에서 지정한 시공사에서 그대로 건설해 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현재 광주, 천주, 장주에 위치한 화교신촌의 주택들이 중국대륙의 전통적 건축양식이 아닌, 광동(혹은 복건), 유럽, 열대지역의 요소들이 혼합된 독특한 양식의 건축군을 자랑하고 있는 이유다. 화교신촌 건설은 이념대립이 막 시작된 냉전초기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강화되면서 고립된 중국이 화교화인들의 애향심, 애국심에 기대어 추진한 투자유치사업이었다. 물론 부유한 화상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인 만큼 그 이면에는 어떻게든 유무형의 경제적 혜택을 반대급부로 제공하기 위해 고심한 중국 정부의 ‘자본주의적’ 노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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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1959년 광동성 광주 화교신촌. 광주 화교신촌은 1958년 1차 완공되었고, 1966년에 2차 완공되었다. 사진은 1차 완공 직후 1959년에 찍은 사진이다. 특별한 건축양식을 원하지 않은 화교들의 경우 사진과 같이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건축한 서구식 빌라 형태의 주택을 분양받기도 했다.


【동남아화교화인 관행 11】


김종호 _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1> 복건성 천주 화교신촌 단지내 주택들
謝小舜,「傳統曆史街區“資源化”保護與再利用研究—以泉州華僑新村爲例」,『泉州師範學院學報』 第34卷 第1期, 2016年 2月

<사진 – 2> 1959년 광동성 광주 화교신촌
王敏, 趙美婷, 朱竑, 「鄰裏空間演化的個體化現象研究-以廣州華僑聚居區爲例」, 『世界地理研究』 第25卷 第4期, 2016年 8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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